시인이 남긴 아름다운 여백 _ 고정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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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된 고정희 시인의 책상에 놓여있었다는독신자는 평생을 시대와 다투고 시로 사랑하며 열렬히 살아온 시인의 마지막을 그리고 있다. 마치 자 신의 죽음을 예감한 사람처럼……. 생생한 말투의 시를 입말로 소리 내어 읽다보면 어느새 죽음의 한가운데 서있는 듯 처참한 울림이 만들어진다. 그렇다. 고정희 시인은 1991년 생전에 그토록 좋아하던 지리산의 뱀사골에서 실족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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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에는 그 빈도가 덜하지만 여류작가 혹은 여류시인이라는 단어는 당대에 여성성에 대한 편협한 남성중심 사회의 시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섬세하고 고아한 문체와 감수성으로 우아한 글을 쓰는 이미지를 풍기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정희 시인 이후로여류라는 말은 쉽게 통용될 수 없는 단어가 되었다. 고정희 시인이 보여준 새로운 여성성, 남도의 가락과 씻김의식, 치열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한 힘있는 서정성은 그 어떤 남성 시인의 시 보다 더 강렬한 에너지가 있었다. 고정희 시인은 여성에 대한 세간의 편견이 틈입할 수 없는 대(大)시인이었던 것이다. 시대의 파고를 피하지 않았으며 온몸 파르르 떨리도록 분노하고, 그것을 시로 쏟아낼 줄 알았다. 이러한 시인의 면모는 초기 시의 호방한 언어에서 그 빛을 발하고 있으며 시가 아닌 생활의 영역에서도 도드라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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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감한 활동가로서의 역량이 있기에 가능했다. 특히 시인은 페미니즘운동에 선구자적 역할을 자임했다. 또하나의 문화의 동인지인 <여성해방의 문학>발행을 주도했고, 또 하나의 문화는 오늘날까지 한국 여성운동의 대들보가 되고 있다. 시인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끝내 희망을 보고자 하였다. 희망에 대한 의지는 실천과 더불어 위로의 정신을 보여준다. 고향 해남을 떠나 서울에 정착한 시인에게 서울이라는 도시는 불화의 공간이었으며 동시에 희망의 공간이기도 했다. 멀리서 빛나는 등불과내 오랜 갈망을 시인은 펜으로 그리고 몸으로 실천한다. 그것은 섬세한 서정이기도 하고 호방한 문체이기도 하다. 늘 동트기 전에 일어나 묵상을 하거나 시를 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 날씨가 좋지 않던 어느 날, 지리산으로 훌쩍, 그야말로 훌쩍 시인은 떠난다. 시인의 고향인 해남군 삼산면에는 고정희의 생가가 시인의 살아생전 모습 그대로 보존 되어 있다. 정갈하게 꽂혀 있는 책들과, 가지런한 책상이 마치 잠시 자리를 비운 시인이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만 같은 곳이다. 하지만 시 이럴 때 시인의 죽음이 서럽다. 고정희 시인은 너무나 일찍 지리산 자락에 안겨버린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라지는 것은 뒤에 여백을 남기기 마련이고, 시인이 남긴 여백은 시대에 남아있는 우리가 채워야 할 몫임을 잘 알고 있다. 고요한 여백으로 떠난 시인 고정희. 시인이 남긴시가 있기에 우리는 조금은 쓸쓸한 영혼으로, 아직은 성한 영혼으로 불콰한 시대를 결국에는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것이 시인이 믿는 바와 일치할 것이다. |
글 서효인 | 시인, 2006년 계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지침』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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