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천 년의 시간 속, 순수한 불심을 틔우는 산사 - 보림사

이산저산구름 2011. 2. 17. 23:49

 

 

 

아름다운 남도의 길에서 만난 산사

 

매서운 강추위가 12월의 절반을 채웠다. 하지만 아름다운 남도, 전라남도 장흥을 찾았던 날은 마치 봄이 다가오는 계절의 길목인 듯 쨍한 햇빛과 더불어 과히 차지 않은 바람이 우리를 맞았다. 소설가 한승원은 주말이라 마침 본가에 들렀다는 아들, 함께 한 시간의 깊이가 느껴지는 부인과 동행했다. 우리는 모두 한 식구처럼 차에 타, 장흥의 명산을 훑으며 보림사를 찾았다.

1968년 대한일보에 『목선』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장한 한승원은, 고향인 장흥을 근원으로 한 문학세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대학교 때부터 공부한 불교 사상은, 『아제아제바라아제』를 탄생하게 했으며, 『원효』와 『초의』, 그리고 『피플 붓다』까지 이어지는 문학 속 불교적 모티프의 여정을 만들어냈다.

“장흥의 보림사는 인도 가지산의 보림사, 중국 가지산의 보림사와 함께 삼보림이라 일컬어지는 곳입니다. 세 나라의 세 산이 비슷한 지형을 가지고 있다는 군요.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보조선사 체징이 창건했고, 선종을 처음으로 도입한 곳이기도 하지요.” 일주문을 들어서면서부터 한승원은 전문가 못지않은 설명으로 운을 뗐다. 보림사를 둘러보는 눈이 설지 않은 것을 보니, 수도 없이 이 산사의 일주문을 지나다녔을 그의 옛 시간이 눈앞에 절로 그려졌다.

“이 목조사천왕상을 보세요. 참 고맙게도 6•25동란의 불길을 유일하게 피했어요. 후에 이 사천왕상 팔과 다리에서 수많은 불서(보물 제745-9호 월인석보 권25)들이 나왔지요. 그러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 혼란한 와중에 이 땅에서 재로 사라진 것들이 무수히 많은데. 이곳도 일부 전각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실되었지요. 이것은 현존하는 천왕문 목조사천왕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현판에 1515년에 조성되었다고 쓰여있어요. 여러 가지로 귀중한 유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일주문을 지나 웅장한 사천왕상을 제 안에 품고 있는 사천왕문을 지나니, 널찍하게 자리 잡은 가지산 자락 아래의 보림사가 한눈에 들어왔다. 한승원은 이곳의 역사를 간결하게 전하며, 국보 제44호로 지정된 삼층석탑 및 석등으로 발걸음을 이끌었다.

“이 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의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구조와 크기가 같은 이것은 남북으로 세워져 있고 2단으로 쌓은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놓고 머리 장식을 얹었지요.” 

 

  

비로자나불 앞에서의 삼배

 

삼층석탑과 석등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 대적광전에는, 보림사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있다. 이것은 통일신라시대 후기, 곳곳에서 일어났던 지방 호족들과 큰 연관관계가 있다. 왕권강화와 중앙집권을 가능케 했던 불교 화엄종이라는 보수 세력을 향해 지방 호족들이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조성한 50여 개의 불상 중 하나가 바로 이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다. 

“선종은 ‘문자를 내세우지 않고 마음을 깨우친다’라는 기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성은 온 우주에, 온 사물에 있는 것이지요. 석가모니 불상이 불성의 가시적 형상이라면,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불성의 비가시적 형상을 모아놓은 것이에요.”

그래서인지 비로자나불좌상은 지금까지 흔히 보아왔던 불상과는 그 모습이 사뭇 다르다. 대개의 경우 도금이 되어 황금빛을 내뿜기 마련인데, 이것은 그을린 듯 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철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인데, 보조선사 체징의 제자인 김언경이 철 2,500근을 들여 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한승원은 비로자나불좌상을 지긋이 바라보다가 그 고유한 기품에 이끌리듯 몇 걸음 걸어 나가 천천히 삼배를 올렸다. 두 손을 간절하게 모으고 정성스레 고개와 허리를 숙여 절하는 그의 모습에서, 밝게 빛나고 있는 오롯한 불성을 보았다. 

 

 

지지 않는 꽃, 가지산 자락에서의 대화 

 

걸음이 한없이 느긋해진 나이. 그러나 한승원의 문학은 여전히 활기차게 달리고 있다. 보조선사 창성탑비, 창성탑, 동부도와 서부도를 차례로 만나며 그의 문학 이야기를 들었다. 새해 1월 즈음, 『항항포포』라는 제목의 신간이 나올 예정이다. 뜻밖에도 함께 보림사를 거닐던 그날 아침, 탈고를 했다는 이야기에 그의 가슴속에서 지긋이 타오르는 문학에의 열정이 함께 보이는 듯했다.

 

그의 활자는 뜨겁고 자유분방하며 매 순간 생동하는 활력을 지니고 있다. 얼굴을 마주대고 이야기를 나눈 실재의 그는 친근하고 고요했다. 문득문득 네 발이 밟는 자갈돌 부딪는 소리가 유난히도 맑게 귓가에 들려오던, 보림사에서의 오후였다.

들어온 자리를 고스란히 밟아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면서, 한승원은 문화재가 우리 삶과 정신세계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 이야기했다. 더불어 우리가 온 힘을 다해 그것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도. 무형의 삶이든 유형의 삶이든, 이 세상의 모든 삶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구한 역사의 흐름을 지켜낸다는 것은 그 안에서 창조될 수 있는 모든 가치를 지키는 것이다.  “우리가 품게 되는 삶의 모티브는 이러한 옛 선조들의 숨결 속에서 더욱 활발하게 생성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문화재들은 되도록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는 게 좋지요. 최근, 이러한 우리 문화재가 실수 혹은 고의로 전소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어떤 방법을 강구해서라도 이것들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것이 필요합니다.” 

글 / 박세란           사진 / 최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