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문화유산과 종교건축
인류가 가지고 있는 문화유산은 건축물, 특히 종교에 관련된 건축물이 대부분이며, 과학과 산업이 발달된 근대이후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종교건축은 종교의 의식의례 행위를 담는 그릇(기능)일 뿐만 아니라 건축 그 자체가 ‘선교’로서 강한 상징과 신앙체계를 반영한다. 따라서 종교건축은 각 종파와 시대에 따른 뚜렷한 양식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근대문화유산의 보호제도인 등록문화재는 근·현대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개화기’를 기점으로 하여 50년 이전까지의 기간에 만들어진 것이 주 대상이 된다. 여기에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근대건축’ 뿐만 아니라 서양 중세양식, 고전양식, 절충식 등 다양한 건축양식이 다 포함된다. 오히려 ‘근대성’을 지닌 건물은 많지 않다. 몇몇 근대적인 건축물 가운데 종교 건축물로는 시기적으로 제일 앞서는 것이 춘천 소양로 성당이다.
소양로 성당의 건축사연
1955년 춘천 시내 봉의산(301.5m) 자락, 춘천 시내와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던 빼어난 전망을 가진 소양로 성당의 건축현장.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전쟁 직후라 신자들은 노력봉사로 건축기금 봉헌을 대신했다. 소매를 걷고 일손을 거들던 신자들은 성당이 형태를 갖춰갈수록 고개를 갸웃거렸다.
“널찍한 터 놔두고 왜 성당을 반쪽만 짓는데….”
“뾰족 종탑은 왜 안 세워. 종탑 없는 성당이 세상에 어디 있어.”
신자들이 수군거릴 만도 했다. 본당 설립 6년 만에 성당을 짓는다기에 예배당처럼 뾰족탑 높이 솟은 멋진 하느님 집을 기대했는데 형태가 이상야릇하니 말이다. 성당 건축을 진두지휘한 성콜롬바노 외방선교회 제임스 버클리(James Buckley) 신부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반원형 평면 양식을 택했다. 밖에서 보면 원을 반 뚝 잘라 놓은 반달형이다. 내부는 제대를 중심으로 회중석이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 있다. 한국 전쟁 직전에 완공된 죽림동성당을 비롯해 시내에서 봐온 교회 건물이 모두 직사각형에 종탑을 얹은 전통 고딕양식이니 ‘이상하게’ 생긴 성당으로 비춰질 수 밖에 없었다.
콜룸바노회와 한국전쟁 민족분단의 아픔
당시 춘천교구장 퀸란 몬시뇰과 버클리 신부가 흔치 않은 반원형 평면 양식을 택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한국 전쟁 중에 소양로·묵호·삼척 성내동에서 선교하던 신부들이 공산군에게 죽음을 당하자 그들의 순교 혼이 서려 있는 터에 기념성당을 짓기로 한 것이다. 묵호와 성내동성당은 성 콜롬반 외방선교회 건축의 특징인 긴 장방형에 좌우날개가 2중으로 붙은 고딕식 건물이었으나 소양로는 당시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부채꼴형태를 택한 것이다.
극동지역의 선교를 목적으로 1918년 아일랜드에서 창설된 성 콜롬반 외방선교회는 1933년 한국에 진출하여 전라남도와 제주도 일원 및 강원도지역을 담당하였다. 이들 콜롬반 외방선교회 신부들은 한국에서의 선교활동에 많은 시련을 겪었다. 2차대전 중에는 적성국이라는 이유로 일제의 혹독한 탄압을 받았으며, 한국 전쟁시에는 공산당에 체포되어 학살당하기까지 하였다.
특히 소양로 본당 초대주임 콜리어 앤서니(Collier Anthony) 신부는 피신하라는 교구장 권유에도 불구하고 남아서 신자와 부상자들을 돌보다 전쟁 발발 이틀 만인 1950년 6월 27일 인민군의 손에 끌려가 37세의 나이에 사살되었다. 콜롬반회 선교사로서는 한국전쟁의 첫 희생자가 되었다. 집사 겸 복사인 김 가브리엘과 함께 밧줄에 묶여 끌려가던 앤서니 신부는 “가브리엘, 자네는 처자식이 있으니 꼭 살아야 하네. 저들이 총을 쏘기 시작하면 재빨리 쓰러지게. 내가 쓰러지면서 자네를 덮치겠네.”라고 말했다. 예상대로 인민군 병사는 경고 한마디 없이 총을 난사했다. 그때 김 가브리엘은 목과 어깨에 총상을 입었지만 자신을 끌어안고 쓰러진 앤서니 신부 덕분에 목숨을 건져 훗날 그 상황을 생생히 증언했다.
순수한 근대건축 양식
성당의 평면은 반원형을 기본으로 하여 중앙 제단을 중심으로 300석의 신자석을 부채꼴로 배열하고 원주면 중앙에 출입구 현관과 고백소, 좌우 끝단에 제의실과 유아실을 덧붙인 형태이다. 구조는 시멘트벽돌 조적벽체가 목조지붕틀을 지지하고 있는데 지붕틀은 지름의 중심을 최고점으로 하여 트러스가 방사상 부채꼴로 배열되어 있다. 아치창, 버팀벽 등은 교회건축에서 흔히 사용되는 고전적 기법이나 일체의 장식을 배제한 단순한 형태와 밝고 기능적인 내부공간은 근대적인 건축개념이다. 가톨릭 성당의 평면은 오랫동안 긴 장방형 형태를 고수하여 왔는데 이를 탈피하려는 시도는 유럽의 경우 1940년대, 한국에서는 1960년대 후반부터이다. 소양로 성당은 한 로마의 원형성당에 크게 감명 받은 버클리신부가 서양의 초기그리스도교시대의 성묘聖墓와 같이 무덤형태의 원형성당을 계획하였으나, 바로 뒤에 언덕이 있는 좁은 대지조건 때문에 반원형이 되었다 한다. 결과적으로 국내 최초의 부채꼴 성당이 되었는데 당시 사목을 담당했던 콜롬반 외방선교회 소속 선교사들의 선교의지를 엿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에서는 1960년대 전후하여 중세풍의 양식적 교회건축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노력이 전개되었는데 그 선구적인 사례가 먼 이국땅 춘천에서 실현된 것이다.
부채꼴 좌석 배열은 모든 신자들이 제대와 보다 더 가깝고 시·청각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갖게 함으로써 예배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20세기 초 독일과 벨기에에서 전개된 ‘전례운동’과 ‘근대건축운동’의 영향으로부터 시작되어 가톨릭교회의 쇄신과 현대에의 적응을 위해 소집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 이후에 공식화되고 보편화 된 현대성당건축의 한 유형인데 그보다 앞서 건축되었다는데 교회사 및 건축사적 의미를 갖는다. 소양로 성당은 이러한 건축적 가치뿐 아니라 양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은 ‘벽안碧眼의 선교사’의 순교혼이 서려 있어 민족 분단의 아픔과 궁핍했던 시절의 신앙을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교육장소로서의 가치도 함께 지니고 있다.
글·사진 | 김정신 단국대 교수, 문화재위원
사진제공·엔싸이버 포토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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