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법정스님이 위대한 이유...

이산저산구름 2010. 3. 24. 13:42

 
법정스님이 위대한 이유...
                                                                김호종 
 

 

                    성철스님과 법정스님을 비교말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 '무소유' 

 

道 통한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드러난 분들은 알려지지만 은둔하는 분들은 알 수가 없지요.

 

불가(佛家)에서는 주로 산 속에서 홀로 道를 득하지요.

'위대한 침묵'이라는 영화에서는 道 닦는 카톨릭 수도원을 카메라에 담았었지요.

이렇게 모든 종교에서 道를 지향하지요.

道란 우주만물에 대한 '최상위 진리'를 깨닫는 겁니다.

반만 믿거나 때로는 의심이 일거나 논증을 위해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냥 깨달은 진리를 완전히 믿는 거지요.

한순간 그 상태에 이를 순 있지만 지속시키는 건 어렵습니다.

그래서 집착을 버리고 속세를 떠나게 됩니다.

속세가 두려운거지요.

 

성철스님과 법정스님,

두 분 중에서 어느 분이 더 위대할까요?

 

불자들은 말합니다.

당연히 성철스님이라고...

대중들은 말하지요. 성철스님 같다고...

승려들은 쉬쉬하지요.

(속으론 성철스님을 가리키며) 비교할 수 있는게 아니라고 내숭 떨지요.

불교와 다른 종교인들도 성철스님을 중히 다루지요.

 

그러나, 법정스님이 훨씬 위대하답니다.

이유는....

두 분 모두 방법과 길이 다르지만 동일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번 생에서 만난 道를 풀어내는 방식이...

한 분은 신앙 속에서 영적의식을 올려 놓았고

한 분은 대중 속으로 돌아와 本心을 내려 놓았지요.

 

사람을 떠나 연민과 집착을 버리는 삶은 어렵습니다.

사실...자신을 위한 삶이지요.

사람들 사이에서 연민과 집착을 부둥켜 안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자신을 버리는 삶이지요.

 

산으로 들어가면 대중들의 고통과 모순, 집착이 보이지 않습니다.

인연을 끊어야 道를 깨우치고 깨달음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지요. 

선승의 계보를 잇는 스님들은 속세를 끊고 원초적인 우주진리를 봅니다.

이번 삶에서 뒤돌아 앉아 벽만 바라보지요.

現生을 외면하는게 道인가요?

그럴바엔 왜 現生을 택했는지요?

 

무소유.jpg

'무소유'를 논할 땐 이미 '소유'가 존재하지요...

 

사람 속으로 나오면 고통과 상처, 갈등과 다툼에 집착하는 불편을 감내해야 합니다.

법정스님은 집착했었지요.

소유로 고통받는 대중들을 무소유 진리로 인도하고자 했지요.

마지막 순간까지 '무소유'에 집착했습니다.

'아름다운 마무리'에 많이 집착한 것 같습니다. 

마치 범인(凡人)처럼.... 

 

道가 무너지는 세상에서 함께하는 삶은 어렵습니다.

법정스님은 편한 길을 버리고 힘겨운 길을 걸었습니다.

눈 딱 감고 道 안에 머물면 이미 무소유이거늘...

사람에 집착하여 道를 내려 놓은 분이지요.

道 대신 무소유를 부둥켜 안은 모습이 힘들어 보였지요.

 

저는 감히 말합니다.

은둔하는 세상의 모든 聖者보다

무소유에 집착하는 법정스님이 위대하다고...

 

무릇 사람이 사는 일상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이 반복됩니다.

신앙을 경계삼아 일상을 피하는 삶은 평화롭지요.

道 통한 선승은 일감 찾아 새벽길 나서는 일용꾼보다 편한 삶을 살지요.

道 통한 선지자는 자식 딸린 복잡한 중년의 삶에서 해방되어 있지요.

道 찾아 나선 구도자는 고단한 삶을 내려 놓은지 오래지요.

하여 道 통한 자보다 공사판 인부의 삶이 위대하지요.

 

깨달음을 놓치기 싫어 삶과 경계를 긋는 고승의 기상보다

흐드러진 일상 속에서 유일무이한 존재를 알아가는 반성이

진리로 다가가는 위대함이라면 어떠한지요? 

 

깨달음을 얻은 분들이 도처에 있지요, 우리가 모를뿐...

道 통하여 사람 곁에 머무는 삶이 가장 어려운 겁니다.

무소유를 깨달아 무소유에 집착하는 역설은

최고의 철학입니다.

 

(여기서 道란 '道중의 道' 우주만물의 최상위 진리를 일컫지요. 그게 무언지는 본인 몫이지요.

 그냥 인지(앎)한다고 아는게 아니지요. 혼연히 깨닫게 될 때 진리는 자신 곁에 있습니다.

 완전한 깨달음은 선승, 수도자, 명상가... 회사원, 백수...직업과는 무관하지요.

 오직 '깨달은 자'가 깨달은 겁니다.)

 

법정스님.jpg

 육신은 허상입니다. 사진도 허상이지요.

허상이 사라지고 아무도 법정을 모를 때 무소유가 존재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