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궁,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조선의 숨결 | ||||||
예전에 나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거울삼아 관련서적과 타인의 답사기를 꼼꼼히 읽어보고 답사를 떠났다. 책에 나와 있는 상세한 사진과 친절한 설명은 효율적인 답사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무의식중에 타인의 시각으로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버릇이 생겨 나만의 감상들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구체적인 계획 없이 경복궁(사적 제117호)으로 떠나보리라 마음먹었다. 답사 후 나의 관찰과 타인의 시선을 비교하고 내가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알아감으로써 좀 더 답사적 감성이 풍성해지길 기대했다.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으로 가려고 양의문을 들어서던 중, 강녕전의 굴뚝이 행각의 좌우에 각각 세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굴뚝을 독립된 장소에 따로 올리지 않고 행각과 함께 한 구조로 설계함으로써 공간의 낭비를 줄이려 했던 의도가 엿보였다. 한편으로는 왕과 왕비의 침전을 한층 가깝게 배치하려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유였건 간에 그로인해 양의문의 모습에서는 궁을 지키는 수문장과 같은 굳건함이 묻어났다. 자연의 일부가 되고자 왕궁을 건축하다 이번에는 아미산 기슭에 세워진 굴뚝(보물 제811호 경복궁 아미산의 굴뚝)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흙을 구워 만든 전돌로 축조된 굴뚝들이 아미산에 있는 것이 신기했다. 교태전의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연기가 뒷마당 땅 밑에 만들어진 연도를 따라 자연스럽게 아미산 굴뚝위로 피어오른다. 이 같은 구조는 연기가 좀 더 멀리 효과적으로 빠져나가게 만들어 생활의 불편을 줄여 주었다. 나는 굴뚝에서 피어났을 연기들로 인해 안개에 둘러싸인 듯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아미산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아미산 굴뚝의 벽면에는 각양각색의 길상무늬와 십장생들이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눈에 띄게 화려하지 않지만 현대의 아트월과 견주어도 뒤쳐지지 않을 만큼 절제된 장식으로 채워져 있었다. 언젠가 한 국내 가전업체가 아트월 디자인을 채용하여 가전제품의 외관을 꽃문양과 기하학적 도안으로 꾸며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다소 엉뚱할 수도 있지만, 그 원류는 아미산굴뚝이 아니었을까? 장식건축과는 거리가 있었던 굴뚝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왕궁장인들의 솜씨에 감탄과 놀라움을 동시에 받았다. 자연과의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더 나아가 자연의 일부가 되길 지향했던 우리 선조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취향과 미학이 맞물려 완성된 아미산 후원. 아마도 그곳은 선조들이 꿈꿨을 이상세계의 축소판은 아니었을까? 주인이었던 왕비가 떠나간 쓸쓸한 후원에서 눈을 감고 청명하게 들리는 빗소리에 귀 기울여 본다. 그리고 아미산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머리에 그려보면서, 오늘의 기억이 가슴 속에 오래도록 아름답게 남길 바라본다. ▶글·사진_유순엽 ▶사진_이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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