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것으로 뿜어 올리는 삶의 향기를 느끼며 -양동 관가정 박혜균 | ||||||||
아파트는 사람을 정형화시키는 반갑지 않은 마력을 갖고 있다. 우리 집과 옆집, 아래층과 위층을 동일하게 만들어주는 아파트에서는 ‘내 집 만의 매력’을 찾아볼 수 없다. 반면 우리의 전통가옥인 한옥은 ‘내 집 만의 매력’을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어, 한옥 여행은 세상을 살아가는 새로운 맛을 항상 느끼게 해 준다. 거기에다가 아파트에서만 나고 자란 딸아이에게 ‘집’에 대한 또 다른 공간의 미학을 심어주기에도 좋은 곳이다. 옛 여인들의 삶을 더듬으며 추억 쌓기를 할 수 있기에 나는 딸과 함께 한옥 여행을 즐겨하는 편이다 11월의 초입에 찾아갔던 관가정은 작고 소박한 한옥이었다. 관광객을 위해 경주 양동마을은 옛 것을 표방한 새 건물이 많이 들어왔다. 기와집, 초가집, 흙과 돌로 이루어진 담벼락까지 양동마을은 전체적으로 새옷을 입었다. 새옷을 입은 양동마을에서 원래의 모습대로 고목을 보유한 채 서있는 관가정은 오히려 색다른 맛으로 다가왔다. 관가정의 현판에는 觀稼亭이라고 씌어 있었다. 관가정이라면 ‘觀嘉亭-아름다운 전경을 볼 수 있는 정자’이라는 이름이 아닐까 하는 선입견이 작용해서인지 처음에는 현판의 한자표기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관가정에서 마을 아래를 굽어보니 현판이 절묘하게 씌어졌음을 깨닫게 되었다. 관가정은 전경을 볼 수 있는 정자가 아니라, 기분 좋은 전경에 한몫을 하는 정자로 화룡점정의 건축물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관가정은 양동마을의 언덕 즈음에 자리를 잡고 있다. 뒤로는 야트막한 산을 끼고 아래로는 마을 전체를 아우르는 형태이면서도 위압감을 주지 않은 규모라 친근감이 든다. 관가정의 사랑채는 누마루의 형태를 띠면서도 절반만이 누마루였다.
아마도 건축물의 안전성을 위한 조치 겸, 사랑방에 군불을 때야 하는 관계로 이렇게 만들어진 듯 했다. 마루의 팔걸이는 세월의 무게 때문인지 조각의 유려한 맛은 사그라져가고 있었다. 아마도 풍파에 시달리며 지탱해오느라 닳아버린 것이리라. 그래도 손상을 입은 곳 하나 없이 버티는 것을 보면 단단하게 지어진 건축물이기도 하거니와, 관리하는 후손의 경건한 마음가짐도 한몫을 한 듯 하여 감사하다는 생각을 갖고 볼 수 있었다. 화려한 단청도 없고, 기기묘묘한 건축기술이 발휘된 부분도 없는 사랑채인 관가정은 그래서 ‘유행’이라는 것과는 관련이 없어보였다. 그럼에도 앞뜰에 굳건히 버티고 서있는 고목이 된 향나무의 향기보다 더 짙은 삶의 향기를 품고 있어 딸아이와 나눌 말이 많이 있었다. 인근에 있는 건축물인 [향단]과 비교하여 서로의 의견을 나누기도 하고, 마루에 얌전히 올라앉아 마을을 바라보며 다른 집들에 대한 품평을 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딸은 우리의 전통 가옥인 한옥에 대한 애정을 여지없이 드러내주었다. 아마도 지난여름에 안동의 고택에서 하룻밤을 잔 이후에 ‘너무 편안했다’는 느낌을 내내 잊지 않고 있는 듯 했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른 한옥과는 달리 이 집의 대문은 사랑채와 연결되어 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사랑채와 연결되어 있는 대문을 지나 안채로 들어가보는 색다른 경험을 해 보았다. 나는 딸아이와 함께 한옥을 탐방할 때면 항상 부엌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내가 주부이기도 하거니와, 딸아이와 함께 예전의 삶을 돌아보며 현재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관가정의 안채는 ‘좁다’는 느낌이 절로 드는 좁은 마당을 ㅁ자로 하여 형성되어 있었다. 다른 한옥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크기이다. 안방에서도 부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앉아서도 볼 수 있는 근거리였다. 동선이 짧게 연결되는 이점을 누리고 싶어서였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딸아이는 ‘집 지을 땅이 부족해서 그럴 거예요’하면서 앞장서서 걸어가는 딸의 뒤에서 나는 내 의견을 말했다. ‘아마도 이 집의 안주인은 아랫사람에게 부엌일을 전적으로 맡기기보다는 자신도 부엌일을 했을거야. 한마디로 마음씨 좋은 주인이라 이렇게 짓지 않았을까?’ 안채의 대청에 앉아 부엌쪽을 바라보던 딸은 ‘엄마 말씀이 맞을 수도 있어요’하며 내 옆에 앉았다. 안채의 대청에서 보이는 정경은 계절을 따라 한폭의 그림처럼 변해주는 것 같았다. 지금이야 나뭇잎이 모두 떨어진 겨울의 초입이라 조금은 황량하지만, 봄 여름 가을이면 수시로 변하는 나뭇잎의 색상에 따라 색다른 느낌으로 집안에서 자연을 느끼지 않았을까. 굳이 액자를 걸어놓지 않더라고 눈을 창으로 돌리면 보이는 자연이 주는 절묘한 아름다움. 목조건축물이 아니면 느낄 수 있는 묘미이다. 소박한 관가정에서는 더욱 더 실감되게 느낄 수 있는 묘미를 느끼며 우리 모녀는 방들을 둘러보았다. 방들은 그리 크지 않았다. 대신 일렬로 죽 배치가 되어 있어 손님이 많이 오더라도 한 공간에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큰 행사를 치르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체면을 중시하는 조선 전기에 지어진 고택이었지만, 청렴하기 이를대 없었다던 집주인의 실용성이 많이 가미된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실용성은 처마를 받치고 있는 나무들을 보면서도 알 수 있었다.
관가정의 대들보와 천장의 나무들은 그 크기가 들쭉날쭉하면서도 나름대로의 조화를 이루며 집을 지탱하고 있었다. 획일화된 굵기로 다듬지 않은 자연스러움은 자연 속에 자연스럽게 앉은 관가정의 의미를 나타냈다. 매사에 물이 흘러가듯 순응하는, 충절로 기억되는 우재 손중돈의 충절만큼이나 다소곳하고 검소한 모양새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면서도 규범을 중시하는 대칭의 묘를 살린 집이라 내 집같은 편안한 느낌도 들었다. 대청에서 대문을 바라보면 좌우의 대칭이 한 눈에 쏙 들어오는 집이라 대청에 한참동안 앉아 낯선 사람들과도 일상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실용을 추구하는 집의 개념에 딱 들어맞는 집. 편안하고 밝고 어지럽지 않은 배치와 구조는 ‘크고 화려한 집’을 꿈꾸는 현대인들에게는 분명 맞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이 집을 찾아오는 것을 보면 이 집이 주는 ‘집의 본래적 의미’를 잊지 않고 싶어서는 아닐까 싶었다. 이제 여자들의 전유물인 후원을 보기 위해 부엌 뒷문으로 나왔다. 부엌문은 나무를 덧대어 색상이 각각이었다. 좋게 보면 조합의 미를 볼 수 있는 문이었지만, 삐딱한 시선으로 본다면 누더기같은 문을 보며 우리 모녀는 한참동안 웃었다. 그러나 이것도 목재를 아끼기 위한 집 주인의 근검함이었으리라 생각하니 우리가 배워야 할 물자 절약의 표본으로 보여 소중한 마음으로 부엌문의 질감을 직접 음미해보았다. 이런 것을 보면서 딸은 ‘절약’을 배우는지 꼭 한마디를 덧붙였다. “엄마! 이것도 유행이 된다면 좋겠어요. 그러면 너도 나도 절약이 몸에 밸 텐데.” 후원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저 안채의 답답함에서 잠시 벗어나 바깥 공기를 쐴 수 있을 정도의 적당한 면적이 이 집의 건축적 의미에서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은 채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래도 여성을 배려한 집 구조를 잊지 않은 선조들의 배려는 감사할 따름이었다. 산에서 내려온 시원한 공기를 한껏 마시니 속이 탁 트이며, 또 다시 한옥 한 채를 마음속에 지을 수 있었다. 우리 모녀가 손을 잡고 관가정을 떠나올 때, 관가정의 짙은 향기가 우리의 후각을 자극했다. 세월의 무게를 안은 향나무와 백일홍, 그리고 뒷산에서 풍겨오는 만리송의 향기와 어우러진 관가정의 소박한 목재들이 옛것의 향기를 한껏 뿜어내고 있었다. ----------------------------------------------------------------------------------- 관가정 보물 442호 소재지 :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150 시대 : 조선시대 조선 전기에 활동했던 관리로서 중종 때 청백리로 널리 알려진 우재 손중돈(1463∼1529)의 옛집이다. 언덕에 자리잡은 건물들의 배치는 사랑채와 안채가 ㅁ자형을 이루는데, 가운데의 마당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사랑채, 나머지는 안채로 구성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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