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샐틈없는 방어체계, 제주는 군사요새 군사 훈련과 점검은 순력(조선시대 감사가 도내의 각 고을을 순찰하던 제도)의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 『탐라순력도』에는 이와 관련된 그림 12장이 있다. 당시 제주목(濟州牧)을 다스리던 목사(牧使) 이형상의 행렬에는 수많은 병사가 대동하고 있으며 그들은 조총과 활 등의 무기를 갖췄다. 목사는 성안의 제반 시설과 방어 태세를 살피면서 관아 마당에 군사를 도열시켜 제식훈련을 행했다. 성벽 위에는 군사들이 정렬해 있는데 이는 목사의 행차를 맞이하기 위함이다. <화북성조>는 1702년(숙종 28) 10월 29일 목사 이형상은 화북진에서 성정군(성곽 방어 부대) 172명을 집결시켜 군사훈련을 단행한 그림이다. 당시 화북진의 조방장(주장(主將)을 도와 적의 침입을 방어하는 장수)은 이희지였다. 군대의 점검과 아울러 군기(軍旗)의 수효도 일일이 확인했으며, 화북진성의 지형, 성의 위치, 성 내의 건물배치, 별도포(화북동에 있었던 포구) 민가의 위치 등을 자세히 파악하였다. 화북진성의 좌측에는 화북진에 소속된 별도연대(別刀煙臺)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고, 별도포 안에는 몇 척의 배가 그려져 있어 당시 배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화북과 조천은 제주인들이 배를 이용하여 육지로 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선박이 정박되어 있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제주의 방어시설은 3성 9진 25봉수 38연대(煙臺)로 집약된다. 이를 지도에 다 표시하면 제주도 해안을 빽빽하게 메운다. 물샐틈없는 방어체계가 구축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제주는 왜구 침입을 막기 위한 군사요새였기 때문이다. 왜구의 침입로는 바다였다. 이를 막기 위해 해안가를 따라 만들어진 진성(鎭城)들은 제주에 흔한 현무암을 깎아서 축조한 성곽들이다. 꽤 정교하고 튼튼하게 만들어졌음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성문은 옹성으로 둘러싸여 철저히 보호되고 있다. 정기적인 군사훈련과 견고하게 쌓은 성, 해안을 빙 둘러 싼 9개의 진성과 멀리서 오는 적의 침입을 관망하기 위한 오름 위의 봉수, 적의 선박이 정박하는 것을 관찰하는 38곳의 연대 등은 모두 왜구 침입으로부터 제주를 철저히 방어하기 위함이다. ‘활을 쏘는 것은 높은 덕을 보는 것’이라는 데서 붙여진 제주목 관아의 관덕정(觀德亭) 앞에 있는 광장에서는 기예가 뛰어난 군사들이 집결해 가장 큰 활쏘기 시합을 벌이기도 했다. 제주방어는 오로지 제주인들의 몫이었기 때문에 남자만으로 방어를 감당할 수 없어 제주에는 유일하게 여자 군인인 ‘여정(女丁)’이 존재했다. 말과 귤의 고장, 제주 『탐라순력도』에는 말과 귤을 진상하기 위해 작업하는 그림이 눈에 자주 띈다. <공마봉진>은 진상에 필요한 말을 각 목장에서 징발한 후 제주목사가 최종적으로 말을 확인하는 광경을 그린 그림이다. 마부들이 말 2필씩 나누어 고삐를 붙잡고 있다가 호명하면 관덕정에 앉아 있는 목사 앞으로 나가 점검에 응했다. 그림 속 말의 생김새가 제각각이다. 말의 키, 연령, 털 색깔 등을 우마적(말이나 소 관리용 기록부)과 일일이 대조하여 선택된 말은 한양으로 보내졌다. 진상되는 말은 어승마, 연례마, 차비마, 탄일마, 동지마, 정조마, 세공마, 흉구마, 노태마 등 그 쓰임에 따라 다양하게 구성됐다. 또한, 제주 흑우는 제사용으로 빠질 수 없는 귀한 음식이기 때문에 매년 20마리를 진상했다. 지금은 흔하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귤은 매우 귀한 과일이었다. <감귤봉진>은 각 종류의 감귤과 한약재로 사용되는 귤껍질을 밀봉하여 올리는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동헌 앞뜰에서 귤을 상자에 담기 위해 땀 흘리는 노동의 장면이 눈에 선하게 다가온다. 감귤이 담긴 상자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으나, 목사는 동헌인 연희각에 앉아 마당에서 기생들과 흥겹게 풍악을 즐기고 있다. 당시 진상된 감귤 수량이 그림 하단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당금귤 678개, 감자 25,842개, 금귤 900개, 유감 2,644개, 동정귤 2,804개, 산귤 828개, 청귤 876개, 유자 1,460개, 당유자 4,010개, 치자 112근, 진피 48근, 청피 30근 등이다. 귤의 진상은 9월부터 시작하여 10일 간격으로 20회나 이루어졌다. 귤 진상을 위해 제주 곳곳에 과수원을 설치했다. 그러나 과수원에서 생산되는 감귤만으로는 수량을 충당하기 역부족이라 관아에서는 일반 민가에서 재배하는 귤나무를 일일이 조사해 감귤의 부족을 대비했다. 이런 상황에 이르자 귤이 오히려 고통을 주었다는 생각에 귤나무에 더운물을 끼얹어 말려 죽이는 경우가 허다했다. 제주 귤과 관련된 과거시험도 있었다. 진상된 귤이 조정에 도착하면 임금은 성균관 유생들에게 귤을 나누어 주며 과거를 시행했다. 이른바 황감제(黃柑製)라는 과거시험이다. 오래 사는 것이 풍속인 섬 제주는 장수의 섬으로 여겨졌다. <제주양로>는 제주목관아에서 치른 양로연(養老宴)을 그린 것으로, 노인들이 빙 둘러앉아 소반한 상을 대접받고 있다. 목사도 동헌 마당에 나와 있다.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주며, 주안상도 마련되어 있다. 이들이 흥을 즐기고 있는 동헌 마당 뒤로 목사들이 임금을 연모하는 망경루가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고, 동헌·귤림당·애매헌·마방 등 제주목관아 건물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이 경로잔치에는 정의현감, 전 대정현감 문영후, 전찰방 정희랑, 군관 15원 등이 함께 참여했다. 노인은 80세 이상 183인, 90세 이상 23인, 100세 이상이 3인이다. 당시 제주에는 장수하는 사람이 비교적 많았음을 알수 있다. 제주는 인다수고(人多壽考)라고 하여 장수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각종 읍지류에는 장수의 원인으로 ‘제주 가운데 한라산이 있어 남쪽 큰 바다의 독기는 산에 막히고,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 기운이 더운 습기와 열기를 몰아내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제주내에서도 한라산 남쪽에 비해 북쪽이 더욱 장수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봄·가을 동쪽 하늘에 나타나는 별자리 ‘노인성’을 보면 장수한다는 속설이 전해져 오는데, 한라산에서는 이 노인성을 흔히 볼 수 있어 제주인들이 장수한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글‧김동전(제주대 사학과 교수) 이미지‧국립제주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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