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시간이 빚어낸 기암가경 ‘석문’
소백산맥의 기세와 남한강의 유연함이 어우러져 완성도 높은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이 고장 저 고장 제각각 8경 혹은 10경이란 이름으로 천혜 자연을 자랑한다지만 단양은 진짜배기이다. 단풍으로 붉게 물든 남한강 상류의 하선암을 시작으로 중선암, 상선암, 사인암, 구담봉, 옥순봉, 도담삼봉, 석문까지를 단양 8경이라 한다. 그 중에서도 자연의 솜씨가 아니고서는 그 모양새가 납득이 가지 않는 곳이 바로 ‘석문’이다.
단양 8경 중 가장 유명한 도담상봉에서 조금 거슬러 오르면 강가에 너비 15~20m, 높이 25m에 이르는 천연 석문이 산 위에 걸쳐져 있다. 크기가 수십 척에 달하는 무지개 모양의 거대한 돌기둥에 저절로 눈을 비비게 된다. 나란히 서 있는 두 개의 커다란 바위기둥 위에 가로로 바위가 얹어져 있는 형상이라 문처럼 보인다. 그야말로 기암가경이다. 2008년 명승 제45호로 지정된 석문은 석회동굴이 붕괴되고 동굴 천장의 일부가 남아 오랜 세월 풍화를 거치면서 구름다리 모양을 하게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규모가 동양에서 제일 큰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석문 주변으로 무성하게 자라있는 나무들은 유구한 세월을 또 한 번 실감하게 만든다. 도담삼봉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남한강을 따라올라 가면 먼발치에서 석문을 바라볼 수 있다. 마치 푸른 눈을 가진 거대한 코끼리와 마주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지며 이곳이 현실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약 200m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석문을 통해 남한강과 건너편 마을의 모습을 관망할 수 있다. 마치 액자에 담긴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것 같아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한동안 그 비경에 넋을 놓고 서있게 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단양군 산천 조에서도 석문이 가진 독특한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있다.
실제 석문 주변에는 천연기념물인 측백나무가 아찔한 절벽 위에 자라고 있다. 때문에 위로는 뻗어나갈 수 없어 강을 향해 기울어져 있다.
석문의 왼쪽 아랫부분에는 작은 동굴이 있는데 이곳에는 마고할멈의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마고할멈이 하늘나라에서 물을 길어 이곳에 내려왔다가 비녀를 잃어버려, 그것을 찾기 위해 긴 손톱으로 흙을 판 것이 아흔아홉 마지기의 논이 되었고 비녀를 찾을 때까지 기다리며 농사를 지은 이 논을 ‘선인옥전(仙人沃田)’ 혹은 ‘옥전’이라 불렀다고 한다.
평소 술과 담배를 좋아했던 마고할멈은 하늘나라에 돌아가지 못해, 담뱃대를 물고 술병을 들고 있는 할멈의 형상이 바위에 남아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석문에서 상류로 조금 더 올라가면 정교하게 조각해 놓은 듯한 자라바위가 그것이다. 숨은그림찾기 수준이라 눈을 크게 뜨고 찾아야 봐야 한다.
강 한가운데 자리한 아름다운 자태 ‘도담삼봉’
예부터 단양의 아름다움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여러 문인들은 글로써 감흥을 남기고자 했다. 그 중에서도 허목이 지은 『단양산수기』에는 당시의 풍경이 산수화처럼 생생하게 펼쳐진다.
그뿐만 아니라 요즘 사람들도 단양을 찾으면 맑고 깨끗한 풍경에 마음을 쉽게 빼앗긴다. 그중에서도 도담삼봉은 한번 보게 되면 오랫동안 마음에 머물게 되는 풍광이다. 정도전은 이곳을 사랑해 자신의 호를 삼봉으로 짓기도 했다. 삼봉 중 가장 큰 장군봉에는 삼도정이라는 육각정자가 있는데, 이곳에서 퇴계 선생은 “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 석양의 도담삼봉에는 저녁노을 드리웠네. 별빛 달빛 아래 금빛 파도 어우러지더라”는 시 한 수를 남기기도 했다.
그 자체로도 으뜸인 도담삼봉에 1998년 음악분수대가 설치되어 야간에는 춤을 추는 듯한 물줄기가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새벽부터 해가 지기 전까지 바라봤던 도담삼봉을 늦은 저녁에도 색다른 모습으로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강 위에 솟은 바위는 세 개의 봉우리는 장군봉, 첩봉, 처봉이란 이름으로 전설을 품고 있다. 남편과 아내의 사이가 좋지 않아 아이가 생기지 않았고, 이에 남편은 첩을 얻어 아이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장군봉은 첩봉 쪽을 향해 있고 아내는 그것이 마음 아파 등을 돌리고 앉은 것이다. 전설을 알고 보면 첩봉이 괜스레 교태를 부리는 것 같은 상상이 들기도 한다.
석문을 찾아 걷던 길 위에서 만나는 반가운 소나무와 10분 남짓 타게 되는 유람선에 올라 자연을 만끽해본 단양행. 화려할 것도 없는 자연의 본 모습 그대로는 감동과 위안이 되어 남는다. 마음이 많은 생각들로 어지러울 때, 단양을 거닐었던 이 길을 기억하며 꼭 다시 찾을 것이다.
글‧최은서 사진‧안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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