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거칠 것 없이 펼쳐지는 새하얀 평원 - 한라산의 겨울 풍경, 명승 제 91호 선작지왓

이산저산구름 2016. 12. 13. 09:49


누구나 사랑하는 겨울의 한라산
‘은하수를 잡아끌 수 있을 만큼 높은 산’이라는 뜻을 가진 한라산. 산이 좋아 오르는 등산객들에게 겨울의 한라산은 꼭 오르고픈 꿈의 산과 같다. 눈꽃산행은 감탄의 연속이다. 12월부터 시작해 이듬해 3월까지 내리기 때문에 2m가 넘는 눈이 쌓이기도 한다. 산등성이와 오름, 겨울나무가 한데 어우러져 만드는 풍경은 숨이 막힐 정도로 극적이다. 차원이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듯한 설경은 등반 코스를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각각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한라산의 등산로는 관음사 탐방로, 성판악 탐방로, 돈내코 탐방로, 어리목 탐방로, 영실 탐방로, 어승생악 탐방로 등 총 6개이다. 산 정상에 위치한 백록담을 보기 위해서 대부분은 성판악으로 올라 관음사 쪽으로 내려온다. 관음사 탐방로의 경우 경사가 가파르고 길이 험하기 때문에 등산로 중 최고의 난이도를 갖고 있다.
굳이 정상을 목표로 오르는 산행이 아니라면 돈내코 탐방로로 올라가 영실 탐방로로 내려오는 것도 좋겠다. 독특한 ‘돈내코’란 이름은 ‘멧돼지가 내려와서 물을 마신 곳’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제주 현지인들이 가장 많이 추천하는 영실 탐방로는 길도 어렵지않고 주변 풍경도 아름다워 많은 사람이 찾으며, 실제 등산 거리도 짧은 편이라 초보자에게 적합하다. 또한, 제주의 오름과 한라산을 동시에 품고 있는 풍경을 볼 수 있어 사랑받고 있다.
한라산을 찾으면 반가운 노루를 만나게 된다. 겨울이 되면 먹이를 찾기 위해 산 아래로 내려오는데, 새하얀 눈밭 위에 폭폭 새겨진 노루의 발자국이 작고 귀엽기만 하다. 탐방로 중 어승생악 들머리는 경사진 잔디밭을 하얀 눈이 덮고 있어 천연 눈썰매장이 따로 없다. 곳곳에 숨어 있는 한라산의 묘미는 다양하기도 하다.


한라산 고지대의 들판, 선작지왓
영실기암 상부의 병풍바위를 거쳐 구상나무숲에 다다르면 절로 걸음이 멎는다. 우리나라 특산종인 구상나무는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 등의 높은 산에서 살아가는 상록교목으로, 20m까지 자라고 잎의 뒷면이 하얀색이다. 전나무 속의 나무들은 모두가 솔방울이 하늘을 쳐다보며 위로 서는데 구상나무 솔방울도 그렇다. 태양을 보고 전진하는 기상과 안정된 모습은 누가 보아도 아름다운 자태가 흠잡을 데 없는 나무다. 눈꽃 옷을 입고 살아난 자연의 웅장함 앞에서 인간의 백년지계가 작게만 느껴진다.
구상나무숲을 지나면 완만하게 펼쳐진 또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정면으로는 백록담의 화구벽이, 좌우로는 윗세오름과 방아오름이 나란히 서 있다. 이들 가운데 완만하게 경사진 채로 펼쳐진 고산 평원의 초원 지대가 자리 잡고 있다. 낮은 관목류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1,600고지에 위치한 ‘선작지왓’이다. ‘선’은 ‘세우다’를 ‘작지’는 ‘조금 작은 돌’을, ‘왓’은 ‘벌판’을 뜻하는 제주 방언으로, 선작지왓은 ‘작은 돌들이 서 있는 드넓은 벌판’을 의미한다.
한라산 폭발로 형성된 용암 덩어리가 초원 군데군데 박혀있어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으로 물들어 분홍 빛깔로, 여름에는 녹음의 푸름으로 뒤덮여 산상 화원으로서 경이로운 장관을 선보이는 선작지왓. 화려했던 빛깔의 계절을 지나다 비워낸 풍경 위에 오롯이 눈을 받아들인 설원은 선경(仙境)을 이룬다.
명승 제91호 선작지왓을 포함하는 한라산 천연보호구역은 천연기념물 제182호이자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 지역,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선작지왓은 명승 지정 기준 가운데 산악·구릉·화산 등에 해당하며 식물의 군락지로도 가치가 높다.
글‧최은서 사진‧신창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