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황진이 시조모음

이산저산구름 2016. 11. 24. 10:24


 

 

황진이 시조모음

 

 

 

 

相思相見只憑夢 (상사상견지빙몽)   

그리워라, 만날 길은 꿈길밖에 없는데 

?訪歡時歡訪? (농방환시환방농)  

내가 님 찾아 떠났을 때, 님은 나를 찾아왔네 

願使遙遙他夜夢 (원사요요타야몽)  

바라거니, 언제일까 다음날 밤 꿈에는 

一時同作路中逢 (일시동작로중봉)  

같이 떠나, 오가는 길에서 만나기를..

 

<  황진이 作 '相思夢 (상사몽)' ㅡ 꿈  >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가서 남편과 마루끝에 걸터앉아 

달빛아래

조촐한 술상 하나 봐놓고 

황진이의 시조들이나 읊조려야 할까보다.

 

세상은 어지럽고 유혹도 많으며 마음이 하수상하니

이런 날은 그저 일찍 집에 들어가는 길만이

불의의 교통사고를 줄이는 길.

내가 이 나이에 다시 접촉사고를 일으킴은

우리집을 마저 알뜰히 박살냄이니..

 

자중해야 하느니..

절제해야 하느니라.

어차피 사랑도 청춘도 지나고 보면

한낮 꿈같은 일장춘몽이니

아서라, 아서.. 조용히 집에 일찍 퇴근해,

나를 황진이 삼아..

남편을 서경덕 삼아..

술잔 주거니 받거니 하며 밤이 깊도록 취해보자꾸나.

 

 

 

● 청산은 내 뜻이요…  <황진이> 

 

 

청산(靑山)은 내 뜻이요 녹수(綠水)는 님의 정이
녹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손가
녹수도 청산을 못 잊어 울어예어 가는고

 

* 황진이 자신을 청산에 비유하여 변치 않는 정을 노래하고 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 외로운 밤을 한 허리 잘라내어 님 오신 밤에

길게 풀어 놓고 싶다는

 연모의 정을 황진이만의 맛깔난 어휘로 노래하고 있다.

 

 

  

 

 

마음이 어린 후이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 운산(萬重雲山)에 어느 님 오리마는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 
- 화담 서경덕

 

 

내 언제 무신(無信)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데 
월침 삼경(月沈三更)에 올 뜻이 전혀 없네 
추풍(秋風)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오 
- 황진이

 

 

* 그리운 정에 떨어지는 잎 소리마저도

님이 아닌가 한다는 화담의 시조에

 지는 잎 소리를 난들 어찌하겠느냐는

황진이의 안타까움을 전한다.

 

 

평생을 가도록 잊지 못한 황진이의 사랑, 서경덕..

허나 황진이의 성격은 의외로 남자같이 터프하고

속이 탁 트인 기질이었다고

< 성옹지소록 > 에 기록되어 있다.  흐미.. 반가워라.

< 성옹지소록 > 에 의하면 그녀 거문고도 곧잘 즐기곤 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황진이는 성품이 소탈하여 남자와 같았으며

거문고를 잘 타고 노래를 잘 불렀다. 
-평생에 화담 선생을 사모하여 반드시 거문고를 메고

술을 걸러 선생의 거처에 가서 한껏 즐기다가 돌아가곤 했다.


 

흔히 알고있는 벽계수와의 일화도 사실은 두가지가 전해 내려온다.

서유영(徐有英,1801~1874)의 <금계필담(錦溪筆談)>에 나온 기록을 살펴보면,

 

-황진이는 송도의 명기이다.

미모와 기예가 뛰어나서 그 명성이 한 나라에 널리 퍼졌다.

종실(宗室) 벽계수가 황진이를 만나기를 원하였으나

‘풍류명사(風流名士)'가 아니면 어렵다기에

손곡(蓀谷) 이달(李達)에게 방법을 물었다. 
이달이 “그대가 황진이를 만나려면 내 말대로 해야 하는데 따를 수 있겠소?”라고

물으니

벽계수는 “당연히 그대의 말을 따르리다”라고 답했다.

 

이달이 말하기를

“그대가 소동(小童)으로 하여금 거문고를 가지고 뒤를 따르게 하여

황진이의 집 근처 루(樓)에 올라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타고 있으면

황진이가 나와서 그대 곁에 앉을 것이오.

그때 본체만체하고 일어나 재빨리 말을 타고 가면 황진이가 따라올 것이오.

취적교(吹笛橋)를 지날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일은 성공일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할 것이오” 했다.


벽계수가 그 말을 따라서

작은 나귀를 타고 소동으로 하여금 거문고를 들게 하여

루에 올라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한 곡 탄 후 일어나 나귀를 타고 가니

황진이가 과연 뒤를 쫒았다.

취적교에 이르렀을 때 황진이가 동자에게

그가 벽계수임을 묻고 "청산리 벽계수야..." 시조를 읊으니,

벽계수가 그냥 갈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리다 나귀에서 떨어졌다. 
황진이가 웃으며

“이 사람은 명사가 아니라 단지 풍류랑일 뿐이다”라며 가버렸다.

벽계수는 매우 부끄럽고 한스러워했다.

 

한편 구수훈(具樹勳, 영조 때 무신)의 <이순록(二旬錄)>에는 조금 달리 나와 있다. 

-종실 벽계수는 평소

결코 황진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말해왔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황진이가 사람을 시켜 그를 개성으로 유인해왔다. 
어느 달이 뜬 저녁,

나귀를 탄 벽계수가 경치에 취해 있을 때 황진이가 나타나

“청산리 벽계수야...” 시조를 읊으니

벽계수는 밝은 달빛 아래 나타난 고운 음성과 아름다운 자태에 놀라

나귀에서 떨어졌다고 전해진다.

 

 

 

어느 기록이 맞든 간에  우린 그저 그녀의 시조들 속에서

요즘시대 여자들의 민감한 정서와 별로 다를 것이 없는 그녀만의 친근한 감성을

마루 끝에 걸터 앉아  함께 읊조리고 공유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오늘같은  마음이 어지러운 주말의 달빛이 교교한 한밤중에는...

 

 

 

 

 

● 어져 내 일이야… <황진이>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던가 
이시랴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어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 이별의 회한을 노래한 것으로 황진이가

 시조의 형식을 완전히 소화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 시조이다.

 

  

 

 

 

月下梧桐盡(월하오동진)  

달빛 아래 오동잎 모두 지고 


霜中野菊黃(설중야국황)  

서리 맞은 들국화는 노랗게 피었구나. 


樓高天一尺(누고천일척)  

누각은 높아 하늘에 닿고 


人醉酒千觴(인취주천상)  

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 없네. 


流水和琴冷(유수화금랭)  

흐르는 물은 거문고와 같이 차고

 
梅花入笛香(매화입적향)  

매화는 피리에 서려 향기로워라 


明朝相別後(명조상별후)  

내일 아침 님 보내고 나면 
情與碧波長(정여벽파장)  

사무치는 정 물결처럼 끝이 없으리.

 

 

* 소세양이 소싯적에 이르기를,

 “여색에 미혹되면 남자가 아니다”라고 했다.

 황진이의 재주와 얼굴이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는

 친구들에게 약조하기를 “내가 황진이와 한 달을 지낸다 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자신이 있네.

 하루라도 더 묵는다면 사람이 아니네”라고

 호언장담을 하였다. 
그러나 막상 송도로 가서

 황진이를 만나보니 과연 뛰어난 사람이었다.

 30일을 살고 어쩔 수 없이 떠나려 하니,

 황진이가 누(樓)에 올라 시를 읊었다.

 이 시를 듣고 소세양은 결국 탄식을 하면서

 “나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더 머물렀다. 
이 때 황진이가 읊은 시가 바로

 <봉별소양곡세양(奉別蘇陽谷世讓)>이다.

 

  

 

 

三世金緣成燕尾 (삼세금연성연미)  

삼세의 굳은 인연 좋은 짝이니 


此中生死兩心知 (차중생사양심지)  

이 중에서 생사는 두 마음만 알리로다

 
楊州芳約吾無負 (양주방약오무부)  

양주의 꽃다운 언약 내 아니 저버렸는데 


恐子還如杜牧之 (공자환여두목지)  

도리어 그대가 두목(杜牧)처럼 한량이라 두려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