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여인과 함께한 경주 남산, '우리가 몰랐던 서라벌'
[UNDER 700] 경주 남산①
용장사터 절벽에 우뚝 솟은 삼층석탑,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홀로 이 땅을 지키고 있다. (사진=신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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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협조 - (사)경주남산 연구소, (사)신라문화원]
천년고도 신라의 옛 도읍지 경주로 가는 길, 아무리 고속도로가 잘 뚫렸다고는 하나 서울에서 차로 족히 네 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먼 거리다. 몇 시간을 가만히 앉아있자니 무료함에 몸이 뒤틀리기 시작한다. ‘천년의 숨결이 흐르는 신라여행’이라고 소박하게 적힌 경주관광안내서마저 모두 다 읽어 버린 뒤에는 이따금 보이는 창밖의 나무를 세는 일에 집중했다. 그렇게 하나씩 세워본 나무가 숲이 됐을 무렵, ‘경주’라고 쓰인 이정표의 숫자가 점점 작아지더니 시간여행을 하듯 우리를 아주 오래된 도시로 이끌었다.
골 따라 흐르는 신라의 흔적
화사한 등산복 차림의 일행과는 다르게 경주의 날씨는 우중충했다. 전날부터 비가 온다고 예보되었지만, 며칠째 비를 뿌리지 않고 머금고만 있는 구름 탓에 습하고 흐리멍덩할 뿐이다. 덥고 찝찝한 날씨였지만 네 여인의 에너지를 꺾을 순 없다. 경주 남산을 함께 오를 주인공은 이가예, 임미자, 소혜서, 김연희씨. 이들은 고려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만난 인연으로 인생의 제2막을 함께 만들어가는 언니 동생사이다. 배낭을 메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혔지만 일행 모두 낯선 도시에서의 산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어 올라있었다. 이번 산행할 코스는 삼릉에서 출발해 남산의 주봉인 금오봉까지 올라 용장리 방면으로 하산하는 길이다. 이 코스는 남산의 가장 대표적인 산길로 삼릉을 비롯해 신라시대의 석불을 시대적으로 만날 수 있다.
순백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부처상 등 뒤의 산산조각난 광배를 2008년 복원했지만, 시멘트를 덧칠한 것이 티가 나 안타깝다. (사진=신희수 기자) |
'어머나, 저 소나무들 좀 봐!' 등산로 초입의 삼릉에 들어서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세 무덤의 주인은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이라 전해진다. 삼릉 주변은 남산의 대표적인 송림지대로 둥근 분을 배경으로 울창하게 들어선 묘한 기운의 소나무 숲 덕분에 마치 다른 세상 속에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능을 지나서 나오는 등산로 입구를 따라 약 300m 정도 올라가면 길옆 바위에 머리와 손이 없는 석불좌상이 앉아있다. 높이 1.6m 무릎너비가 약 1.56m라는 제법 커다란 좌불과 마주하게 되면 ‘어찌 저렇게 되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머리와 손이 없는 석불좌상은 풍화작용으로 인해 가장 약한 부분이 먼저 떨어져 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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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불상이 더욱 흥미로운 이유는 이를 대하는 신라인들의 자세에 있다. 그들은 불상을 만들 바위를 다른 곳에서 공수하거나 옮기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바위를 이용해 조각하고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탄생한 불상의 얼굴에는 바위주름이 그대로 느껴져 실제로 살아있는 부처를 만난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천천히 걸었음에도 더운 날씨 탓에 일행들의 얼굴은 온통 땀으로 뒤덮였다. 그러나 푹푹 찌는 무더위 앞에서도 힘든 기색 없이 올라가는 그들이다. 때마침 산줄기를 타고 더위를 식힐만한 바람이 살포시 불어온다. ‘혹시 자비로운 부처의 입김일까?’, 시시콜콜한 상상을 하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임미자씨가 불상의 제단에 돌을 올려놓으며 소원을 빈다. (사진=신희수 기자) |
부처님의 땅을 오르다
몇 개의 불상을 지나치고 냉골 계곡을 따라 계속해서 올라가면 7부 능선쯤 되는 곳에 작은 암자 하나가 나온다. 암자의 이름은 상선암으로 약수도 나오고 여러 명이 앉을만할 쉴 자리도 있어 잠시 쉬어가기 좋다. 하지만 조용한 암자에서 시끌벅적 식사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니 도시락 그릇은 잠시 넣어두자. 더욱이 부처의 눈이 가득한 이곳 남산에서는 말이다.
상선암을 지나서 가장 먼저 만나는 명승지는 바둑바위다. 이 바위는 옛날에 하늘에서 신선들이 내려와 바둑을 두며 놀았다는 장소로 너른 바위에서는 서라벌 벌판과 북남산이 시원하게 보인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경주의 역사지리지 <동경잡기>에는 신라의 연주가 옥보고가 거문고를 켰다고도 기록되었는데, 굳이 이름난 음악가가 아니더라도 이곳에서는 어떤 연주도 훌륭하게 들릴 것 같다.
높이 약 6m로 남산에서 두 번째로 커다란 불상인 마애석가여래좌상. 현재는 낙석위험으로 길을 막아놓아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사진=신희수 기자) |
여기서 금오봉 방향으로 더 올라가면 상사바위가 나온다. 이 바위는 민간신앙 터로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바위를 섬겼던 선조들의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곳 바위 위에서는 남산에서 두 번째로 커다란 불상인 마애석가여래좌상을 내다볼 수 있다. 자연 암반에 약 6m 높이로 양각된 불상의 몸 부분은 거칠고 억세게 선각되었고, 좌대 부분은 부드러워지다 희미하게 사라져 버린 모습이다. 이러한 기교는 불교가 바위신앙과 합해져 바위 속에서 부처님이 나오시는 순간을 표현한 것으로 추측된다. 불상 앞에 서서 고개를 치켜 올리고 가까이서 보고 싶지만, 아쉽게도 낙석 위험으로 길을 막아두어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상사바위에서 금오산 정상까지는 지척이다. 이 구간에서는 제법 경사진 길이 나온다. '아이고 무릎이야', '언니 조금만 더 힘내요.' 낭랑한 목소리가 산 전체에 메아리로 울려 퍼진다. 조금 더 힘을 내 오르면 둥근 정상비가 보이는 금오봉이다. 네 여인은 서로를 자축하며 정상의 즐거움을 함께 맛본다.
'이 더운 날씨에 남산에 올라왔다니, 우리가 해냈어.', '다음 취재는 히말라야인거 알지? 다들 더 열심히 준비해야 돼!'
네 여인이 처음으로 함께 오른 남산, 금오봉 정상비 앞에서 사이좋게 기념촬영을 한다. (사진=신희수 기자) |
천년의 왕국, 남산에 잠들다
다음 목적지인 용장사터까지는 높낮이가 거의 없는 능선이다. 능선 초반에는 이 산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넓은 임도가 나온다. 이 남산순환도로는 서쪽의 포석정부터 동쪽 서출지와 통일전까지 남산을 가로 지르는 길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산악바이크와 MTB를 타는 사람들이 마음껏 드나들었다고 한다. 다행히 지금은 비상시를 제외하고는 모든 차량 출입을 통제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걸었던 흙길과는 다른 뻥 뚫린 임도를 따라 내려가는 길이 신라의 몰락을 재현하는 것만 같아 왠지 모르게 씁쓸했다.
용장사터 부근의 로프구간, 반대편에는 초급자를 위한 우회로도 나 있다. (사진=신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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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여인은 이 광경을 놓칠세라 휴대폰 카메라로 서로의 사진을 남긴다. 수백 장의 사진을 찍는다 한들 이 땅에 서린 푸른 기상을 미처 담아낼 수 없어 아쉬울 뿐이다.
음지에는 이따금 대나무가 자라있었다. (사진=신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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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남산의 풍경에 한껏 매료된 그들은 시시때때로 멈춰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봄날의 소풍 즐기듯 내려오다 보니 하산지점인 용장리 마을은 생각보다 가까웠다. 산 전체를 구석구석 살펴보며 산행했기에 많은 시간을 걸었지만 여전히 무언가 놓고 온 듯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더운 여름산행의 오아시스 같은 계곡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 하산 중 만난 시원한 계곡에 발을 담가물장구를 쳐본다. (사진=신희수 기자) |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저녁 식사 후, 차를 타고 경주 월성지구로 향했다. 밝게 불을 켜놓은 월지(안압지)와 첨성대, 대릉원은 늦은 밤까지 관람객들로 가득했다. 꺼지지 않는 불빛이 옛 신라의 영광을 재현하는 듯하다. 신라인들은 커다란 땅을 두고도 남산으로 향했다. 서라벌의 숨겨진 비밀은 정말로 그 산에 잠들어있을까.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역사의 도시 경주와 어울릴만한 한옥으로 지은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렸다. 얼음 가득한 냉커피를 들고 카페 건너편에서 첨성대를 바라보았다. 기울어져 언젠가 쓰러질 것이라는 첨성대가 은은한 달빛과 조명아래 아랑곳하지 않고 서 있었다. 어둠이 찾아오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침내 유적지구를 벗어나자 구름 뒤로 숨은 달빛만이 우리를 비추었다.
아, 신라의 달밤이여.
경주를 대표하는 문화재인 첨성대. 늦은 시간까지 조명을 켜져 있어 많은 관람객이 찾는다. (사진=신희수 기자) |
산행정보
남산에 오르지 않은 자, 경주를 말하지 말라
경주 남산은 금오봉(468m)과 고위봉(494m)으로 솟아 남북 8km 동서 4km로 뻗어있다. 이중 서남산 코스는 배동 석조여래삼존불입상에서 시작하여 산기슭을 따라 삼릉을 답사하고, 냉골(삼릉계곡)을 따라 금오산 정상을 거쳐 용장계곡으로 하산하는 과정이다. 이 길은 경주 남산의 가장 대표적인 산행코스로 산을 오르면서 문화유적 답사도 겸할 수 있다. 산행은 편의상 서남산주차장에 주차하고 삼릉에서부터 출발하면 좋다.
이 코스는 신라시대의 석불을 시대적으로 모두 만날 수 있는 신라 석불의 보고이다. 먼저 삼국시대의 대표적 걸작인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통일신라의 문화적 성숙기에 조성된 풍만하면서도 늠름한 기상이 보이는 냉곡 석조여래좌상, 하늘에서 하강하는 모습의 마애관음보살상, 힘 있는 붓으로 한 번에 그린 듯한 선각육존불, 미완성으로 추정되는 신라 말의 선각여래좌상, 8세기 중엽 문화적 성숙기의 기세를 반영하고 최근에 얼굴이 복원된 석조여래좌상, 산길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 살며시 그림자를 보여주는 선각마애여래상, 남산에서 두 번째로 크며 바위 속에서 나오는 듯한 순간을 새긴 마애석가여래좌상,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석탑이면서도 거대한 바위산을 하층기단으로 삼고 우뚝 선 용장사곡 삼층석탑, 남산에서 가장 씩씩하고 아름다운 청년기의 마애여래좌상, 대현스님이 기도하면서 돌면 불상 또한 고개를 돌렸다는 용장사지 삼륜대좌불, 김시습이 머물면서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집필한 용장사지, 9세기에 조성된 방형대좌에 앉은 약사여래좌상 등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말기까지의 불상을 두루 만날 수 있다.
교통
경주 톨게이트에서 나와 직진을 하다 나정교를 건너서 두 번의 삼거리를 지난 뒤 나오는 오릉 네거리에서 우회전한다. 포석정을 지나 약 2.5km 이동하면 삼릉(서남산)주차장에 도착한다. 주차비는 1일 소형 2,000원, 대형 4,000원이다.
경주 시내에서는 내남행 버스(500, 501, 503번)를 타고 삼릉에서 하차하면 된다. 하산 뒤, 돌아올 때는 용장리에서 시내 방향으로 올라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소요시간은 약 15분 정도.
맛집
경주 남산의 별미는 칼국수다. 언제 적부터 남산 자락에 칼국수 식당이 성행했는지 정확하지는 않으나 주변 상인들 말로는 해방 이후부터 하나둘씩 생겼던 것이 남산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한다. 칼국수 식당은 특히 삼릉 유적지 입구 주변에 많이 분포하고 있다. 메뉴는 해물칼국수, 냉콩칼국수 등이 대표적이며 여기에 파전이나 만두를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식당에 따라 다르지만 칼국수 한 그릇의 가격은 6,000~7,000원 선이다. 경주 남산을 찾는다면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산행 후의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칼국수를 꼭 먹어보기를 추천한다.
경주 남산의 별미 칼국수. (사진=신희수 기자) |
조윤식 기자, 사진 신희수 기자 / marchisiyun@emount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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