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노 젓고 활 쏘고..느림은 정말 편한 것이네

이산저산구름 2016. 6. 16. 14:27

 

 

노 젓고 활 쏘고..느림은 정말 편한 것이네

슬로시티 제천 수산면..청풍호 물길따라 느린 여행 느린 체험

한국일보 | 최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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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느림을 자랑으로 삼는 곳이 있다. 1999년 이탈리아에서 시작한 슬로시티(치타슬로, Cittaslow)운동은 전세계로 확산돼 한국에도 11개 지역이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자연과의 공존, 지역공동체와 조화, 지역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바로 슬로시티의 정신이다. 충북에서는 제천 수산면이 2012년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제천은 1985년 완공한 충주댐 건설로 지자체 중 가장 넓은 면적이 수몰된 지역이다. 그래서 충주호라는 공식명칭 대신 제천의 옛 지명에서 이름을 딴 ‘청풍호’를 고집한다. 대규모 인공호수에 갇힌 땅, 구불구불한 물길 따라 이어진 길은 슬로시티가 아니어도 느릴 수밖에 없다. 수산면과 맞닿은 청풍·한수면도 다르지 않다. 내륙의 바다 청풍호를 둘러싼 제천으로 느린 여행을 떠났다.

슬로시티 제천 수산면의 카약 체험. 옥순대교 인근에서 출발해 2~3시간 노를 저으며 청풍호의 절경을 감상한다. 제천=최흥수기자
슬로시티 제천 수산면의 카약 체험. 옥순대교 인근에서 출발해 2~3시간 노를 저으며 청풍호의 절경을 감상한다. 제천=최흥수기자

▦슬로시티 수산면 느린 체험

옥순봉은 청풍호반에서 최고 절경으로 꼽힌다. 떡시루처럼 층층을 이룬 바위 봉우리가 비 온 뒤 죽순처럼 우뚝 솟아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조선 선조 때 단양군수 퇴계 이황이 기생 두향의 청으로 청풍군수 이지번에게 옥순봉을 단양에 달라고 부탁했다는 이야기는 지역에서는 유명하다. 인근 연풍(지금의 괴산군 연풍면) 현감으로 부임한 단원 김홍도도 옥순봉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남겼다.

청풍호에서 옥순봉을 감상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제천 청풍나루에서 단양 장회나루 사이를 운행하는 충주호 유람선을 타는 것이지만, 최근엔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이 생겼다. 바로 직접 노를 저어 청풍호를 누비는 것. 옥순대교 남단에 위치한 ‘청풍호 카약·카누 체험장’을 출발해 천천히 마음 가는 대로 산과 호수가 빚은 절경을 즐길 수 있다. 수산면의 나드리 영농조합에서 운영하는 체험 프로그램으로, 초보자도 전진과 후진 등 간단하게 노 젓는 방법만 익히면 쉽게 즐길 수 있다. 안전을 위해 동행하는 모터보트가 가끔씩 속도를 높여 시원하게 물세례를 선물하기도 한다. 2~3시간 코스로 가격은 8,000원~1만원이다. 043-646-8311.

옥순정 생태공원에 설치된 슬로시티 상징물. 제천 수산면을 비롯해 한국의 11개 지역이 슬로시티로 인증 받았다.
옥순정 생태공원에 설치된 슬로시티 상징물. 제천 수산면을 비롯해 한국의 11개 지역이 슬로시티로 인증 받았다.
그림 3 옥순봉은 청풍호에서도 최고 절경으로 꼽힌다.
그림 3 옥순봉은 청풍호에서도 최고 절경으로 꼽힌다.
초보자도 간단하게 노 젓는 방법만 배우면 카약을 즐길 수 있다.
초보자도 간단하게 노 젓는 방법만 배우면 카약을 즐길 수 있다.
두무산 측백나무 숲 정상에서 본 수산면 풍경이 고향마을처럼 정겹다.
두무산 측백나무 숲 정상에서 본 수산면 풍경이 고향마을처럼 정겹다.

옥순봉 생태공원에 설치한 국궁장에서는 활 쏘기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전통 무예인 국궁은 조준하고 당기는 순간까지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심신단련운동. 대부분 국궁장이 동호인 위주로 운영되는 것에 비해 ‘옥순정 국궁장’은 일반에 개방해 초보자도 즐길 수 있게 했다. 이곳 역시 마을에서 운영하는 시설로 간단한 활 쏘기 방법을 익힌 후 30m 과녁을 향해 시위를 당긴다. 활과 국궁에 대한 상세한 해설도 들을 수 있다. 가격은 3,000원~5,000원. 043-642-8311.

체험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수산면에서 슬로시티에 가장 어울리는 곳은 두무산 측백나무 숲이다. 측백나무는 학교 울타리로 많이 심어 친숙하지만 자생적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은 흔하지 않다. 대구의 도동 측백나무 숲이 천연기념물 1호로 지정된 것도 그 때문이다. 수산리 산 25번지 두무산 중턱엔 수령 60년 가량의 측백나무 4,000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측백은 주로 석회암 지대에 자라기 때문에 나무의 크기는 편백에 미치지 못한다. 이곳 측백나무 숲은 울창하다 할 수는 없지만 조림을 한 것처럼 가지런하고, 숲에 들어서면 특유의 짙은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수산면이 슬로시티로 지정된 이후 산책로를 내고 이제 막 알리기 시작한 곳이다. 입구에서 숲이 끝나는 중턱까지 지그재그로 길을 내 경사에 비해 힘들지 않고 느리게 산책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위 아래 층 산책로의 간격이 너무 촘촘해 자꾸만 가로지르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몇 군데 통나무 의자를 놓은 것을 빼면 이렇다 할 편의시설이 없어 자연에 더 가깝고 호젓하다. 숲 꼭대기 전망대에 오르면 맞은편 비탈밭과 마을 풍경이 고향처럼 정겹다.

슬로푸드는 슬로시티와 뗄 수 없는 사이인데, 수산면은 이 부분에서 아쉬움이 크다. 대개 산골마을이 그렇듯 이곳도 잡곡과 약초를 주로 재배해 왔고, 요즘은 일교차가 큰 산골 기후에 적합한 서양 채소를 많이 기르는데, 이를 활용한 마땅한 음식(점)을 찾기 어렵다. 면사무소 부근 가람식당(043-651-2264)이 ‘뽕잎돌솥밥’을 하는 정도다. ‘수수한 밥상’이라는 이름으로 건강 먹거리를 개발하는 중이라니 그때나 돼야 다양한 슬로푸드를 맛 볼 수 있을 듯하다. 대신 제천에서는 시에서 인증한 ‘약채락’이라는 로고가 붙은 식당을 찾으면 실패를 줄일 수 있다.

▦편안한 산행, 두 개의 모노레일

땀도 흘리고, 다리 근육도 어느 정도 뻐근해야 산행의 참 맛을 논할 수 있다. 그러나 무더운 날씨에 노약자와 함께하는 여행이라면 아무리 경치가 좋아도 산행은 무리다. ‘월악산 모노레일’과 ‘청풍호 관광모노레일’은 이러한 가족여행객에게 꼭 맞는 시설이다.

탄지리 월악산 모노레일은 천천히 숲길을 걷는 느낌이다.
탄지리 월악산 모노레일은 천천히 숲길을 걷는 느낌이다.
그림 7 정상에서는 월악산 영봉 능선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그림 7 정상에서는 월악산 영봉 능선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한수면 탄지리 3개 마을 주민이 영농조합법인을 결성해 운영하는 월악산 모노레일은 2.3km 길이로 마을 뒷산을 천천히 오른다. 해발 500m가 넘는 산이지만 월악산 자락이라는 것 빼고 아직까지 이름이 없다. 아래쪽은 참나무 군락이고 정상 부근은 소나무가 많아 겉보기엔 특별할 것 없지만, 군데군데 망을 둘러놓은 곳에는 장뇌삼과 온갖 약초가 자라 약 기운이 가득한 산이다. 5명을 태우고 70도 가까운 경사를 오르는 동안 묵직한 긴장감과 천천히 산길을 걷는 듯한 편안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롤러코스터 같은 아찔함보다는 숲이 주는 평온함을 선호하는 이들에게 어울린다. 정상의 팔각정에 오르면 누워있는 여인의 얼굴 윤곽을 닮은 월악산 능선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마을에선 황토방 펜션도 함께 운영한다. 오르내리는데 각각 30분, 정상에서 30분 휴식을 포함해 1시간 30분 가량 소요된다. 요금은 1만원. 043-653-0880.

청풍호 관광모노레일 궤도 차량이 달팽이처럼 느리게 비봉산 정상으로 오르고 있다.
청풍호 관광모노레일 궤도 차량이 달팽이처럼 느리게 비봉산 정상으로 오르고 있다.

비봉산 정상에서는 월악산(가운데) 아래로 들쭉날쭉한 산길과 물길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비봉산 정상에서는 월악산(가운데) 아래로 들쭉날쭉한 산길과 물길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단양에서 제천으로 이어지는 남한강 물길이 노르웨이의 피오르를 연상시킨다.
단양에서 제천으로 이어지는 남한강 물길이 노르웨이의 피오르를 연상시킨다.

청풍호 관광모노레일은 이미 널리 알려져 미리 예약하는 편이 낫다. 인터넷(tour.jecheon.go.kr)으로 60%, 현장에서 40% 발매한다. 6명이 탑승하는 12대의 궤도차량이 4분 간격으로 비봉산(해발 531m) 정상을 오르내린다. 걸어서는 약 1시간인데, 모노레일로는 25분 가량 걸린다. 느린 속도에도 수직에 가까운 경사를 오를 때면 몸이 뒤로 쏠려 아찔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모노레일이 인기를 끈 것은 자체의 재미도 있지만 비봉산의 특이한 위치 때문이다. 봉황이 알을 품다가 비상하는 모양새라고 이름 붙은 비봉산은 삼면이 청풍호에 둘러싸여 내륙 속 반도를 연상시킨다. 삿갓처럼 볼록 솟은 정상에 서면 거북 발가락처럼 들쭉날쭉한 지형이며, 높은 산줄기 사이로 도도하게 이어지는 강줄기가 리아스식 해안이나 북국의 피오르를 보듯 이국적이다. 내려올 때도 모노레일 궤도차량의 속도는 오를 때와 별 차이가 없다. 슬로시티의 상징인 달팽이처럼 소나무와 낙엽송이 울창한 숲을 기어가듯 천천히 움직인다.

제천=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