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푸름의 철썩임마다 전설이 일렁인다 - 명승 제 79호 제주 서귀포 외돌개

이산저산구름 2016. 5. 24. 08:59

그리움에 사무쳐, 망부석이 되다

쉽게 만날 수 없어 더 애달프다. 제주 공항에서 차로도 1시간 남짓 달려야 외돌개와의 조우가 가능하다. 혹 느림을 즐기겠다며 버스에 오른 과객은 서귀포행 버스를 타고 다시 외돌개행으로 갈아타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서귀포 칠십 리 해안가를 둘러싼 기암절벽 중에서도 외돌개는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아슬아슬한 듯하면서도 장엄한 기운이 맴돈다.

바다 한복판에 홀로 솟아 있는 외돌개. 150만 년 전 화산 폭발로 생긴 20m의 바위섬의 꼭대기에는 작은 소나무와 풀들이 자생하고 있다. 마치 사람의 머리카락 마냥 자라고 있어, 사람의 형상인 듯 착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실제로 할망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니 그저 한두 사람만의 착각은 아닌 모양이다. 화려하고, 이국적인 제주의 수많은 천혜의 자연 중에서도 외돌개의 매력은 원시적인 미와 그 안에 흐르는 전설들이 아닐까.

한라산 자락에서 고기를 잡으며 살아가던 노부부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고기잡이에 나간 할아버지가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못하자 바다에 나가 할아버지를 기다리던 할머니는 바다를 향해 ‘하르방’을 외치며 통곡하다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할망바위’에 얽힌 이야기다. 바위 위에 나무와 풀들이 자라고 있고, 옆모습으로 보면 이마와 눈망울, 콧등, 하르방을 외치는 입모양이 애절한 할망의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

이야기가 이야기를 낳듯, 외돌개 주변의 크고 작은 바위들도 제각각 할망바위 전설의 조연 역할을 해준다. 외돌개 바로 아래에는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작은 바위가 하나 있는데 이를 두고 죽음을 맞은 할아버지의 육신이 떠 내려와 그 곁에 머무른 것이란 얘기도 함께 전해진다. 노심초사 남편을 기다리며, 사무쳤을 아내의 슬픔을 곱씹다 보면 누군가를 깊이 그리워했던 순수한 마음, 그 자체가 그리워진다.

최영 장군의 기지가 담긴 유래, 장군석

살아온 세월만큼 외돌개는 할망바위 말고도 또 다른 이름을 하나 더 가지고 있다. 바로 ‘장군석’이다. 고려말 최영 장군은 목호의 난을 해결하기 위한 전략을 세웠다.

1273년(원종 14) 원나라는 탐라의 삼별초 난을 진압하고, 목마장을 설치해 말을 기르는 목호를 보냈으며 이는 고려 말까지 지속됐다. 1295년 탐라가 고려에 귀속돼 제주(濟州)로 이름을 고쳤고, 목마장은 원나라가 직접 경영하기도 했다. 공민왕 집권에 들어 명나라와 고려의 국교가 굳어지면서 제주의 말을 명나라에 보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 때 목호들은 원나라의 말을 보낼 수 없다며 소란을 일으켰고, 이것이 ‘목호의 난’으로 불린다.

최영 장군과 고려 군사 2만 5천은 목호 토벌을 위해 범섬으로 향했고 이 때 최후의 격전을 벌이면서 최영 장군은 외돌개를 활용했다. 장군의 형상으로 외돌개를 치장하자, 그 모습이 대장군인줄 알고 놀라 목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전설이다. 외돌개를 장수로 만들어 원나라의 세력을 물리쳤다고 한 이야기로부터 ‘장군석’이란 이름이 유래된 것이다. 이 전설에 등장하는 범섬은 외돌개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데, 석양이 어리는 일몰의 풍경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자연이 만든 천연 풀장 ‘황우지 해안’

외돌개에서 5분만 걸으면 제주의 숨겨진 명소 ‘황우지 해안’을 만나볼 수 있다. 황우지(黃牛地)란 해안 일대가 황우도강(黃牛渡江: 황소가 강을 건너는 형상의 명당 자리)의 모습을 띄고 있다는데서 유래했다. 두 개의 웅덩이와 깨끗한 물빛 때문에 선녀탕으로 명명하기도 한다고. 지금은 SNS를 통해 세간에 많이 알려져 있지만 40여 년 전만 해도 아는 사람만 간다는 외진 곳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형적인 은밀함도 있지만 황우지 해안이 갖고 있는 아픈 역사 때문이다.

03 황우지 해안에서는 스노우 쿨링과 같은 수중 레포츠를 즐기기도 한다. 04 1968년 무장 간첩선이 침투해 벌어진 교전에 대한 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황우지 해안에는 1945년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이 미군의 공격을 대비하기 위한 어뢰정을 숨기기 위해 12개의 진지동굴을 뚫어놓은 흔적이 남아 있다. 그 외에도 국립경찰 창설 69주년을 맞아 세운 전적비 안에는 1968년 8월 무장 간첩선이 침투해 교전을 벌였던 이야기가 적혀 있다. 분단의 아픔과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음에도 그 천혜의 아름다움은 감춰지지 않는다. 천연 풀장답게 황우지 해안의 물빛은 투명하다 못해 푸르다. 가족 및 연인들이 물놀이를 즐기기 위해 많이 찾고 있는데, 주변이 모두 현무암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안전장비를 철저히 준비해갈 필요가 있다.

Tip. 외돌개에서 시작하는 올레길 7 코스

· 난이도 - 중
· 거리(시간) - 14.7km (4~5시간)
· 수봉로는 언덕이고, 일강정 바당올레에서 서건도 사이 바윗길이 험한 편

Tip. 외돌개에서 시작하는 올레길 7 코스

글‧최용미 사진‧안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