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 서울 백악산 일원 ■, ■ 양양 하조대 ■

이산저산구름 2016. 5. 24. 08:54

 

■ 서울 백악산 일원 ■

 

 

 

 

지정번호 명승 제67호
소 재 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 산2-27, 성북구 성북동 산87-1 외
지정면적 3,598,127㎡
지 정 일 2009년 12월 9일(사적 및 명승 제10호 서울 백악산 일원/사적 및 명승 재분류)


백악산白岳山은 북악산으로 불리고 있으며, 해발 342m의 높이를 가지고 있다. 기반암은 중생대 쥐라기에 관입한 대보관입암류에 속하는 화강암으로 조성되어 있고, 인왕산·낙산·남산(목멱산) 등과 더불어 서울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이다. 이들 산지 능선을 연결한 옛 서울의 성곽은 이 산을 기점으로 축조되었다. 산 능선에는 옛 성벽이 원형대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고, 서쪽 산기슭과 인왕산 사이의 고개에는 서울 사소문四小門의 하나인 창의문(일명 자하문)이 남아 있다. 북악산은 노송이 울창한 경승지를 이루고 그 남쪽 기슭에 청와대가 있다.

서울 백악산 일원은 백악산의 서울 성곽 주변 지역에 지정되어 있다. 이 지역은 서울이라는 도성의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잘 보존되어 있을 뿐 아니라, 정궁인 경복궁의 후원으로서의 역할 때문에 귀중한 식생경관을 유지하고 있어 보존가치가 매우 큰 문화유산이다. 창의문에서 정릉 입구에 이르는 북악스카이웨이가 북악산 주봉 북쪽 사면을 끼고 돌면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개설되어 있다.


백악산은 조선시대 때의 도성인 한양의 현무에 해당하는 북쪽 주산이다. 조선시대 도성 축성에 있어서 풍수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북악산은 낙산·인왕산·남산과 더불어 서울의 내사산內四山중 하나로, 각종 고문헌에서‘백악’으로 불리고 있으며, 조선왕조가 도성을 정하였던 정치적 사상과 지형적 기본원리를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는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서울 성곽(사적 제10호)과 인근에 서울 부암동 백석동천(명승 제36호), 그리고 대은암과 부아암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 지역에는 국방·정치유적으로서의 역사적·문화적 가치와 아울러 서울이라는 고도古都의 체계적인 도성조형원리, 풍수로 상징되는 사상적 체계를 구체화한 역사적 유적으로서의 가치가 잘 보존되어 있으며 수려한 자연과 문화적 요소가 잘 결합되어 있어 문화재적 보존가치가 매우 큰 문화유산이다.

 

 

 

■ 양양 하조대 ■

 

 

지정번호 명승 제68호
소 재 지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하광정리 산3 외
지정면적 134,825㎡
지 정 일 2009년 12월 9일


양양 하조대는 양양군 선양면 하광정리의 돌출해안 정상부에 건립된 정자주변을 지칭한다. 하조대는 온갖 기암괴석과 바위섬들로 이루어져 있는 암석해안으로, 동해바다의 절경을 바라볼 수 있는 조망지점이자 빼어난 조망대상이 되고 있다. 또한 하조대는 주위의 울창한 송림이 정자와 잘 어울려 아름다운 해변풍경을 나타내고 있으며, 정자의 주변 지역은 참나무류 등 활엽수림이 수림대를 형성하고 있다. 하조대의 지질은 중생대 쥐라기에 관입된 화강암(대보화강암)이 노출되어 있으며, 이 화강암이 동해바다의 해식작용을 받아 해식애 등 우수한 해안경관을 이루었다. 이 해식애 위에 소나무가 자라고 있어 운치를 더하고 있으며, 앞바다에서 배를 타고 하조대를 관망하면 기암괴석이 솟아 있는 묘경이 해금강을 방불케 한다. 하조대의 풍경을 더해 주는 주변 경관 요소로는 하조대 해수욕장의 모래사장과 등대가 있다. 하조대 해수욕장은 수려한 경치를 배경으로 약 4㎞에 걸쳐 백사장이 펼쳐져 있으며, 하조대 앞에는 정자 맞은 편에 무인등대가 파도와 어우러져 또 다른 절경을 이뤄내고 있다. 하조대 언덕 위에 오르면 바닷물에 여기저기 잠겨 있는 바위들과 해수욕장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동해안의 일출이 장관을 이룬다.

 

 

하조대는 조선의 개국공신인 하륜河崙과 조준趙浚이 이곳에서 만년을 보내며 유람하면서 명칭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고려 말 하륜과 조준이 이곳에서 새로운 왕조를 세우려는 혁명을 꾀했고, 그것이 이루어져 후일에 그들의 성을 따서‘하조대’라고 명명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유래로는 하씨 집안 총각과 조씨 집안 처녀 사이에 이루어 질 수 없는 애절한 사연으로 인해 이름 지어졌다는 설도 있다. 하륜과 조준이 은거한 곳이라는 전설에 의해 하조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 유래가 지배적인 견해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정확히 증명할 수는 없다. 다만, 바위 위에 각자된‘하조대河趙臺’라는 글자를 통해 볼 때, 역사적 의미를 어느 정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조대는 조선 정종 때 처음으로 세운 정자인데 훼철된 것을 대신하여 1939년 6월 현북면에서 기념사업으로 육각정을 건립하였으나, 해방 후 북한치하에서 다시 파괴되었으며, 근래에 육각정이 다시 건립되었다. 현재의 정자는 1998년 해체 복원된 건물로 초익공 굴도리 양식의 육각정으로 지붕에 절병통을 얹어 소나무와 함께 주위의 자연경관과 잘 어울리고 있으며, 정자각 앞 바위에는 조선 숙종 때 참판을 지낸 이세근이 쓴‘하조대河趙臺’라는 글자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