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와 백제 사이에는 금강이 있다.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다른 강과 달리, 금강은 전주 무악산에서 발원해 북쪽으로 흐르다 조치원에 와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고, 공주를 지나 남쪽으로 향한다. 공주가 백제의 두 번째 수도로 찬란한 유산을 간직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금강에 있다.
지금 서울 지역이었던 백제의 첫 번째 수도 한성은 475년, 고구려 군대의 강습으로 그 기능을 다하였다. 그리고 백제가 선택한 두 번째 수도가 바로 지금 공주 땅이다. 당시 이름으로는 웅진(熊津)이다. 금강 아래쪽 터를 닦아 북의 침입을 막고 자신들의 세계를 구축하기에 공주는 그야말로 적격이었다. 금강을 따라 굽이굽이 흐르던 옛 백제의 이야기. 지금은 문화유산과 금강이 이루는 경관으로 남아 계속된다.
- 공주 공산성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백제 왕성
공주 시가지와 금강 풍경이 이렇게 잘 내려다보이는 곳이 또 있을까. 공산성(사적 제12호)은 금강 아래쪽의 높이110m, 둘레 2660m인 백제 시대 왕성이다.
공주시민에게 공산성은 하나의 친근한 공원이다. 공산성 매표소를 지키는 송주호 씨는 공주에서 나고 자랐다. 공산성과 인연이 깊다. 어렸을 적 소풍 때마다 왔던 곳이 바로 이곳 공산성이다. 산성을 따라 제대로 걸으려면 한 시간 정도가 걸리고 가파른 구간도 있어 어린아이들이 걷기 쉽지 않아, 소풍은 쉽게 갈 수 있는 공산성 쌍수정(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49호)으로만 갔다. 쌍수정 앞 넓은 공간에서 장기자랑도 하고 도시락도 먹었다.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침공으로 개로왕이 죽자 문주왕이 한성에서 웅진으로 천도한 후, 538년 성왕 때 사비(부여)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 64년간 5대에 걸쳐 백제왕이 공산성 안 왕궁에서 살았을 거라 추정된다. 공산성의 백제 시대 때 이름은 웅진성이고, 고려 시대에는 공주산성, 조선 시대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렸다. 백제 시대에 토성으로 축조한 이후 여러 차례 고쳐 지금은 일부만이 토성이고, 대부분이 석성이다.
4방에 문터가 확인되는데, 남문인 공산성 진남루(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8호)와 북문인 공북루(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7호)는 남았고, 동문과 서문은 터만 남았다. 그러던 것을 1993년에 동문 터에 영동루를, 서문 터에 금서루를 복원했다.
공산성은 금서루부터 둘러볼 수 있다. 금서루 쪽으로 입장해, 다시 금서루 쪽으로 빠져나온다. 대체로 금서루에서 진남루를 거치는 코스로 공산성을 둘러본다.
공산성 길에 오르자마자 깃발을 볼 수 있는데, 깃발은 성벽의 동서남북에 배치했다. 공주 송산리 고분군(사적 제13호)6호분 벽화에 있는 사신도를 재현했다.
산성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펄럭이는 깃발을 바라보면 백제인의 기상을 느낄 수 있다. 쫓겨 내려왔지만, 산성으로 북침에 대비하고, 남으로 새로운 세력을 만들어나가고자 했던 당시 백제인의 마음을 말이다.
조금 걷다보면 왕궁으로 추정되는 곳을 마주한다. 왕궁을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주춧돌뿐이다. 왕궁과 함께 연못이 자리했었는지, 연지가 남아 있다. 대접 모양으로 돌을 쌓아 만든 이곳 연지에 어떠한 생명이 살았을까.
편평한 곳에 자리한 쌍수정은, 조선 영조 10년(1734)에 세운 정자이다. 1970년에 해체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인조가 이괄이 일으킨 반란(1624)을 피해 공주로 잠시 피난 왔을 때 이곳에 머문 일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전한다.
영동루를 지나면서 금강 줄기가 보인다. 금강의 모습은 그대로이지만, 내 위치에 따라 다른 느낌을 낸다. 나무에 가린 금강, 바람이 더 많이 불 때의 금강, 더 높은 곳에서 바라본 금강, 옆으로 흘겨본 금강…. 다른 분위기의 금강이 훤히 내다보인다.
기분이 좋아지는 공산성 산책길, 만하루 옆의 공산성 연지(충청남도 기념물 제42호)에서는 백제의 분위기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다. 계단식으로 돌을 쌓아 올린 모양이 눈길을 끈다.
공북루를 지나 공산정에 다다르면 또 색다른 금강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금강철교와 백제교를 굽어보며 공산성에서의 마지막 금강 정취를 느낀다.
- 공주 금강철교
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곳
공주 금강철교(등록문화재 제232호)는 우리 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곳으로, 1956년에 복구했다. 1933년에 준공한 공주 금강철교는 한강 이남에서 가장 긴 다리였고, 교통상 중요한 지역인 공주읍과 장지면을 연결하기 위해 만든 다리다. 1950년 7월 12일, 미군은 내려오는 북한군을 막기 위해 금강철교를 폭파했다. 백제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6·25전쟁 당시에도 금강은 북한군의 남하를 막을 수 있는 요새 역할을 했다. 결국 내려오는 북한군을 막지 못했고, 이 자리에는 비극의 흔적만이 남았다.
현재 1톤 트럭 이하 화물 차량과 승용차만 공주 시내로 들어가는 방향으로 일방통행할 수 있고, 한 차선은 보도로 만들었다. 혼자 걷기에는 제법 넓은 금강철교 보도로 걸음을 옮긴다. 옆으로 지나는 자동차가 한 대도 없을 때, 나 혼자만이 이다리를 차지했을 때, 잠깐 멈추어 본다. 아주 먼 옛날부터 금강을 따라 흘러온 이야기들이 피부에 와 닿는다.
- 무령왕릉
무령왕이 죽음으로 남긴 이야기
공주 공산성에서 걸어 10분 정도 거리, 송산 언저리에 무령왕릉이 있다. 무령왕은 백제 제25대왕으로, 무령왕릉은 무령왕과 왕비의 무덤이다. 공산성이 백제 역사의 발자취 이외에 풍광, 정취 등 시각적으로 끌리는 것이 많은 데 비해, 무령왕릉에는 거대하게 솟은 왕의 무덤도, 휘황찬란한 왕실의 유적도 없다. 봉긋하니, 둥그렇고 그다지 높지 않게 솟아오른 송산리 언덕에 무령왕릉을 비롯해 7기의 고분이 있을 뿐이다.
안타깝게도 1호분에서 4호분까지는 조사하기 전에 도굴당했다. 1호분에서 6호분은 일제강점기에 조사해 고분의 구조와 형식을 밝혔고, 무령왕릉은 1971년 5, 6호분 보수공사 때 발견했다. 발굴 당시 무령왕릉은 도굴되지 않은 상태, 옛날그대로의 것이었다. 그리고 무령왕릉은 삼국시대 고분 중 누가 묻혔는지 확실하게 아는 첫 번째 왕릉이 되었다.
1~5호분은 굴식 돌방무덤으로, 무덤 입구에서 시신이 안치된 널방에 이르는 널길이 널방 동쪽 벽에 붙어 있다. 6호분과 무령왕릉은 벽돌무덤이다. 6호분은 활모양 천장으로 된 이중 널길과 긴 네모형의 널방으로 되어 있는데, 오수전(五銖錢)이 새겨진 벽돌로 쌓았다. 무령왕릉도 연꽃무늬 벽돌로 가로쌓기와 세로쌓기를 반복해 벽을 쌓았다.
6호분과 무령왕릉은 터널형 널방 앞에 짧은 터널형 널길이 있으며 긴 배수로까지 갖추었다. 이런 형식의 벽돌무덤은 중국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며, 벽화는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당시 백제의 사회 문화상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무령왕릉 통로 중앙에서 밖을 향해 놓여 있던 무령왕릉 석수(石獸)(국보 제162호)는 무덤을 수호하는 의미로 만든 것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발견된 것이다.
무령왕릉과 함께 묻힌 이야기들은 발굴과 함께 세상에 나왔다. 공주 송산리 고분군(사적 제13호)은 단순한 언덕이 아니다. 역사적 사실과 전하는 이야기를 알고 나면 옛사람과의 대화에 취해 묘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현재 무령왕릉을 비롯한 송산리 고분군은 내부 관람을 중지했다. 대신 무령왕릉 모습으로 꾸민 모형전시관이 있다. 무령왕릉 출토품은 국립공주박물관에 전시됐다.
- 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릉 자취를 찾아
국립공주박물관은 무령왕릉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걸어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공산성에서부터 무령왕릉, 국립공주박물관을 넉넉잡고 하루에 둘러보면 알맞다. 아침 무렵 공산성에 천천히 올라 여유를 만끽한 다음, 점심을 먹고 송산리고분군, 무령왕릉을 보고 국립공주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무령왕릉을 먼저 보고,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출토품을 보는 것도 좋고, 순서를 바꾸어 출토품을 먼저 보는 것도 좋다.
국립공주박물관은 1940년 공주시 중동에 개관했고, 1945년에 국립박물관이 되었다. 그 후 2004년 지금 있는 웅진동으로 신축이전했다.
1층 무령왕릉실에서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문화재를 전시한다.
무령왕릉 내부와 목관을 복원해 생생한 느낌을 준다. 무령왕과 왕비가 사용했을 금·은제 장식품을 비롯해 석수, 지석과 금속제품, 중국도자기, 옥·유리구슬 등 출토품을 볼 수 있다.
2층은 충청남도의 고대문화실로, 구석기 시대부터 충청남도의 역사와 문화를 볼 수 있다. 국립공주박물관에서는 매년 다양한 주제의 특별전을 연다. 또, 다양한 문화행사와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니 평소에 관심을 두는 것이 좋다.
- 공주의 색다른 풍경을 만나는 곳
공주한옥마을
공주한옥마을은 사람이 사는 진짜 마을이 아니고, 숙박할 수 있는 곳이다. 새로 지은 곳이라 지난 시간이 절로 묻어나는 한옥의 고즈넉함은 덜하지만, 공주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전통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전통혼례도 올릴 수 있다.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 337
문의 041) 840-8900
홈페이지 http://hanok.gongju.go.kr
연미산 자연미술공원
2006년에 연미산에서 열린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가 끝난 후에 시민을 위한 자연미술공원을 만들기로 하고 보완 공사해 만든 공원이다. 국내외 작가의 작품 51점이 설치돼 있다. 설치된 작품들은 여러 식물 속에 조화롭게 자리했다. 작품들은 제자리에 영구적으로 있는것이 아니라, 계속 교체된다. 다양한 조경수를 보는 것도 재미다. 자귀나무, 소나무, 단풍나무 등을 심었다.
연미산 자연미술공원은 산책하듯 쉽게 둘러볼 수 있는곳이 아니다. 난코스라고 할 만한 곳은 없지만, 편한 신발을 신는 것이 좋다.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신웅리 산26-3
문의 041) 840-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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