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사내 오스카 와일드는 시인이다. 아일랜드는 800년 가까이 잉글랜드에 지배당했다. 19세기 중반에는 감자 전염병이 번져서 대기근으로 이어졌다. 소고기와 양고기가 흘러넘쳤지만, 모조리 잉글랜드 지주들이 수탈해갔다. 800만 인구 가운데 150만 명이 굶어죽고 100만 명이 신대륙으로 떠났다. 그때 한 영국 신문은 "한 명도 빠짐없이 전 국민이 거지인 나라는 아일랜드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지금 인구는 400만 명이다.
이 슬픈 나라 수도 더블린에서 오스카 와일드는 동화 '행복한 왕자'를 썼다. 와일드는 동성애 혐의로 감옥에 갇힌 뒤 파리로 쫓겨나 곤궁하게 병사했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 있지. 하지만 누군가는 별들을 보고 있다네(We are all in the gutter, but some of us are looking at the stars)."
여자들을 무장해제시키는 나라, 아일랜드
천지가 개벽해서, 지난주 아일랜드 대통령이 불구대천의 원수 영국을 공식 방문했다. 두 나라는 아일랜드 혁명군 전사 애창곡 '말리 멀론'을 들으며 식사를 했다. 일본 왕실 만찬장에 '독립군가'가 울려 퍼지는 식이니, 시궁창 위로 별들이 빛나는, 온통 바뀐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중세 고성 번라티에서는 그 민요를 들으며 귀족 만찬을 즐긴다. /
(아래) 여자들이 모여서 워터퍼드 해안 초원에서 수다도 떨어본다.
아일랜드인은 자기네 역사를 '슬프다'고 한다. 관광객에게는 즐길거리가 많다는 말이다. 초원을 한참 지나면 식민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역사 유적이 뒤섞인 도시들이 나온다. 도시마다 수탈의 흔적이 있고 기념비가 있다. 골목길 모퉁이마다 있는 술집에서는 가수들이 민요를 라이브로 연주한다. 바이올린과 셀틱피리(Celtic whistle)로 연주하는 민요는 아리랑처럼 서럽다. 한국인만큼이나 음주가무를 즐긴다. 동쪽 끝 더블린에서 서쪽 끝 휴양도시 킬라니(Killarney)까지, 밤 아홉시쯤 되면 월화수목금토일 어김없다. 한(恨)의 정서와 닮았다. 문득, 한국인들은 기시감(旣視感)을 느낀다.
그래서 아일랜드는 여자들이 여행하기 딱 좋은 나라다. 아기자기한 고성(古城)과 예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조지안 스타일의 원색 문들, 벽돌담, 커다란 하늘과 수선화가 노랗게 피어난 너른 초원, 느리게 흐르는 시간 끝에 시작되는 아이리시 민요, 그 민요를 부르는 순박한 아일랜드 청년 등등. 아일랜드는 나라 자체가 여자들을 무장해제시켜 버리는 요주의 국가다. 눈짓 한 번, 노래 한 소절만으로 전 세계 여자 배낭족을 무장해제시키는 이탈리아 남자들보다 더 위험하다. 그러니 되도록 애인을 따돌리고 여자들끼리 뭉쳐서 떠나면 좋겠다. 남자와 함께 갔다면 남자는 술집에 가둬놓고 아일랜드 흑맥주 기네스를 먹이도록 한다. 그리고 마음껏 무장해제당해서 영화 주인공처럼 아일랜드와 애정 행각을 벌여보자.
수도 더블린에서 해안도로를 타고 남서쪽 킬라니까지 이르는 4박 5일 여행 코스는 훌륭한 드라이브 코스이면서 훌륭한 역사 기행, 훌륭한 미각 여행 코스다. '케리의 반지(Ring of Kerry)'라 불리는 서쪽 해안 순환코스는 특히 예쁘다.
신대륙으로 이민선이 출발한 뉴로스(New Ross), 아일랜드 국기를 만든 민족 영웅
토머스 미어가 살았고 크리스털로 유명한 워터퍼드(Waterford), 식민시대 빅토리아 여왕이 찾아와 일약 관광도시가 된 킬라니와 그 국립공원,
영화 모비딕을 찍은 유갈,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찾아 마지막으로 출항한 갈웨이(Galway·동화 같은 예쁜 쇼핑 스트리트도 있다), 대서양으로
솟구친 장대한 절벽 클리프 모허(Cliffs of Moher), 찰리 채플린이 말년을 보낸 워터빌(Waterville), 중세 고성에서 중세
귀족 그대로 만찬을 즐기며 가수들의 민요를 듣는 번라티성(Bunratty Castle)….
도시마다 주머니를 텅 비게 만들 예쁜
쇼핑거리는 어김없다. 보고 듣고 먹는 여행 삼락(三樂)이 완벽하다. 한국으로 돌아와 그 삼락을 남자들에게 자랑할 일만 남았으니 여자들에게는
더더욱 완벽하다.
운전 미숙한 사람을 위한 아일랜드 현지 버스 투어
그런데 이 명소들을 어찌 다 찾아갈 것인가. 여행 정보 풍부하고 부지런한 드라이버가 아니라면 렌터카나 대중교통 여행으로는 난해한 코스다. 그렇다고 딱히 아일랜드에 특화된 패키지 상품도 없다. 돈도 있고 시간도 있는데 즐길 수 없다면 억울하다.
현지 여행상품을 이용하면 된다. 미리 인터넷으로 현지 여행사와 계약하면 현지에서 버스를 타고 상세한 설명을 들으며 골목골목을 다 구경하고 들여다볼 수 있다. 기초적인 의사소통만 가능하면 된다. 지난달 영국의 버스투어 여행사인 트라팔가투어(Trafalgar Tour)가 한국에 상륙했다. 국내 여행 시장의 이 같은 틈새를 뚫겠다는 의도다. 아일랜드 6박 7일 상품이 1600달러 정도로, 싸지는 않다. 하지만 그 값을 한다. 반복되는 쇼핑, 반복되는 한국식당, 팁 강요 같은 저가 상품 특유의 불만 요소는 없다.
아일랜드만 아니라 유럽, 남미 상품도 있다. 운전이 미숙하거나 이것저것 정보 찾기 귀찮은 사람이라면 이용할 만하다. 특히 평소 대접 못
받고 살다가 여왕처럼 여행하고 싶은 여자들이라면. 트라팔가 한국사무소 (02)777-6879, www.trafalgar.com.
아일랜드
여행정보는 www.discoverireland.ie 를 참조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