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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붕어가 가르쳐준 <생명 자본>

이산저산구름 2014. 3. 21. 10:18

금붕어가 가르쳐준 <생명 자본>
 
40년쯤 전 처음 그를 만났던 순간은 문화충격 그 자체였다. 읽을거리가 변변치 않던 시절에 칼날 같은 문체로 우리 문화를 깊이 있게 통찰하던 <흑 속에 저 바람 속에>는 잠자던 나의 비판의식을 일깨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팔순의 나이에도 젊은이들을 제치고 창조의 최전선을 누비는 이 시대 문화의 아이콘, 그는 이어령이다.
 
천재라는 단어를 빼곤 그를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만 스물두 살의 나이에 일간지 전면에 당대의 일류 문인들을 통렬히 비판하는 <우상의 파괴>를 실어 자신의 존재를 알린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편견들과 ‘불’ 같은 싸움을 하던 그가 인생을 마무리하는 말년에 접어들면서 고요한 ‘물’로 돌아왔다.
 
최근의 신작 <생명이 자본이다>는 2008년의 세계 금융위기 이후 탐욕스런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적 대안으로 그가 오랫동안 다듬어왔던 ‘생명자본주의’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나 자본주의에 대해 쓴 글이라도 철학자나 경제학자가 쓰는 난해한 방식과는 전혀 다른 문학적 향기가 풍겨 나와 여러 번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주인공은 한 마리 금붕어다. 50여 년 전 전쟁과 피난살이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무렵, 필자가 단칸셋방에서 신혼생활을 하던 시절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고 이따금 아궁이의 연탄불이 꺼져 잉크병이 어는 일도 있었는데, 그날 밤 썰렁한 방안의 유일한 사치품인 어항 속의 금붕어마저 얼어버렸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어떻게 해서든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며 아내가 끓여온 주전자의 물을 조심스럽게 어항에 붓기 시작했다. 그때 살얼음 사이에서 금붕어의 지느러미가 조금 움직이는 것 같더니 정말로 꿈틀거리며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유레카!’ 이 순간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그의 생명에 관한 사유는 동서고금과 우주를 관통한다.
 
생명자본에 관한 그의 이야기는 모두 여덟 가지 갈래로 진행된다. 먼저 금붕어의 부활을 통해 사소한 것 같지만, 생명의 소중함을 말한다. 20세기는 수많은 전쟁을 거치면서 대량 살육이 자행되어 생명에 대한 감각이 무뎌진 시대였다. 그러니 이런 시대에 발달한 자본주의가 인간성을 상실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날의 추위를 통해서는 ‘공감’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타인의 생각을 모르듯이 타자의 감각이나 정서도 쉽게 알 수 없으며 거기에서 오해와 갈등이 싹튼다. 그러나 추위는 누구나 동시에 함께 느낀다. 금융자본주의가 효율만을 강조하며 경쟁 끝에 자멸했다면 생명자본주의는 모두 함께 느끼는 ‘공감’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말이다.
 
생명자본주의는 ‘불 같은’ 경쟁이 아닌 생명이 흐르는 ‘물 같은’ 사랑을, ‘먹음’이 아니라 ‘먹힘’으로써 부활하는 희생의 사랑을 강조한다. 금은 많은 약탈과 살육의 역사를 만들었지만, 진정한 금은 사랑하는 딸마저 금으로 만들어버린 마이더스의 탐욕이 아니라 우화에 나오는 ‘포도밭의 보물’처럼 마음속의 정금이라고 설파한다.
 
임종을 앞둔 노인이 아들들을 불러, 노인이 경작하던 포도밭에 큰 보물(금)이 묻혀 있으니 그것을 파내서 나누어 가지라고 유언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들들은 열심히 포도밭을 파보지만, 끝내 금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가을에 많은 포도가 열리게 되자 아들들은 비로소 금의 실체가 ‘성실’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마지막으로 얼마 못 가 죽은 금붕어를 땅에 묻었던 추억을 이야기하며 생명자본의 본질이 사랑에 있음을 말한다. 경제적 가치로 봐도 죽은 금붕어의 고기는 아무 쓸데가 없지만, 살아서 애완 금붕어가 되는 순간 막대한 부가가치를 발휘하게 된다.
 
생명자본주의와 금융자본주의의 차이는 바로 사랑하는 것(love)과 좋아하는 것(like)과의 차이와 같다. 고양이가 쥐를 좋아하는 것이 라이크다. 잡아먹으면 맛있고 배가 부르니 탐내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속성이다. 그러나 러브라고 한다면 펫(pet)이 된다. 먹지 않고 키우며 아껴줌으로써 더 큰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나간다.
 
언뜻 자본주의라는 살벌한 전쟁터에서 너무 낭만적인 태도가 아닌지 이해가 어려울 수도 있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바뀐 기업 환경을 보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20세기가 한정된 자원을 개발하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제조업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소프트웨어가 중시되고 이미지가 생사를 좌우하는 서비스업의 시대가 아닌가.
 
이 책은 필자가 이미 밝혔듯이 생명자본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앞두고 먼저 펴낸 일종의 프롤로그에 해당한다. 앞으로 학술적인 연구와 토론을 통해 생명자본주의를 심화시켜 나갈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이 책은 하나의 인문 교양서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 그의 다양한 지식과 발랄한 표현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넘치게 행복하다.
 
언제나 시대를 앞서나갔던 ‘문화 크리에이터’ 이어령도 자신을 늙은 해녀로 비유하며 앞으로 남은 날이 많지 않음을 고백할 때는 쓸쓸함마저 감돈다. 그래서 자신만이 아는 바닷속 큼직한 전복을 다음 세대에 남겨주려 한다. 싱싱한 이 시대의 바닷속에서 자라고 있는 ‘생명의 전복’으로 가는 보물지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