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우리 속담

개구리, 부활을 선언하다! - 우수 경칩에 대동강물 풀린다

이산저산구름 2014. 3. 12. 14:03

재미있는 우리 속담 25  우수 경칩에 대동강물 풀린다
 3월 6일은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어 보셨는지요?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는 참 세차게도 울어 대지요. 추운 겨울 동안 얼음장 밑에서 숨죽여 있던 모든 생물들이 따뜻한 봄을 맞아 기지개를 켜듯이 모두 생명의 활동을 시작합니다. ‘우수 경칩에 대동강물 풀린다’는 속담처럼 이 무렵의 햇살은 겨울날의 그것과 확연하게 다른 기운을 보여 줍니다.

 

예전에 어떤 선생님이 이 무렵 해남 대흥사에 갔다가 요란한 기계 소리를 듣고 절에서 무슨 공사를 하길래 이렇게 소란스러운가 하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이 개구리의 떼울음 소리였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개구리 울음이 하도 거세고 요란하여 기계 소리처럼 들렸다는 겁니다.

 

선덕여왕이 세 가지 징후로 나라의 큰일을 내다본 이야기를 아시는지요? 〈선덕왕 지기삼사善德王 知幾三事〉로 알려진 이 이야기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려 전하는 것으로, 선덕여왕이 알아차린 두 번째 일이 이 개구리 울음과 연관이 있습니다. 선덕여왕이 나라를 다스리던 시절 영묘사靈廟寺 옥문지玉門池에 겨울인데도 개구리들이 떼로 모여들어 3, 4일을 울어 대자 이를 괴이하게 여긴 신하들이 왕에게 사실을 알렸다고 합니다. 그러자 선덕여왕이 곧바로 신하들에게 명해 군사들을 여근곡女根谷에 보냈다고 하지요. 개구리 울음소리로 적병의 침입을 알아차린 선덕왕의 지혜가 돋보이는 이야기입니다. 떼로 울어 대는 개구리의 성난 모양이 곧 병사兵士의 형상이라는 선덕여왕의 말로 미루어 짐작컨대, 개구리 울음은 예부터 세차고 굳센 사내의 기상을 상징하는 대상으로 인식되곤 했던 모양입니다.

 

문화적인 맥락에서 보면, 개구리나 두꺼비, 곰이나 뱀 같은 동물들은 모두 신화적인 상징성을 지닙니다. 일본의 어느 마을에서 마을 전통 제의 때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나와 개구리춤을 추는 광경을 보신 적이 있는지요? 또 중국이나 일본, 베트남이나 한국 등의 박물관에서 고대 유물 가운데 개구리가 그려진 북이나 그릇 등을 본 적은 없는지요? 우리나라에서도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에 개구리 알을 먹으면 건강해진다고 믿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이 신화나 제의의 맥락에서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은 겨울잠을 자고 깨어나는 이들의 생태가 ‘죽었다 되살아나는 재생 혹은 부활’을 연상케 하기 때문입니다. 대지의 어머니 자궁 깊숙이 파고 들어가 깊은 잠에 빠졌다가 다시 생명의 기운을 되찾아 팔팔하게 깨어나는 이들 생물은, 모두 죽음을 경험하고 죽음에서 되살아난 존재들로 여겨지곤 했습니다. 부활과 재생, 곧 ‘되살아남’의 존재들인 셈입니다. 겨울을 지나 봄의 기운을 예고하는 개구리의 울음은 생명이 움트는 ‘살아남’의 시간이 되었음을 선언하는 나팔 소리 같은 것이지요. 그래서 ‘개구리 소리도 들을 탓’이라는 옛말이 있지 않겠습니까?

시끄럽게 들리는 이 울음소리도 듣기에 따라서는 생명의 소리, 부활의 선언인 셈이니까요.

 

날이 풀리면 개구리만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 움츠렸던 청춘의 마음도 활짝 꽃피는 모양입니다. 우주 삼라만상이 모두 ‘깨어나고’, ‘살아나는’ 것이지요. 산속 깊은 마을에서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기 시작하는 것도 이 무렵이고, 남녀가 은행을 주고받아 은밀히 나누어 먹거나 은행나무를 돌면서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염원하던 날도 경칩입니다.

 

 개골개골 청개골아 니 새끼를 찾을라먼
 두 팔뚝을 훨씬 걷고 미나리깡을 다듬어라
 개골개골 청개고리 여가 모도 개고릴래
 가는구나 가는구나 개고리한태로 내가 나간다
 개골개골 청개골아 너와 나와 둘이만 노자
 개골개골 청개고리 개고리타령 여기로다
  <한국구비문학대계 6-2, 전남 함평군 신광면 개구리타령>

 

 -전략-어헝어헝 어허랑 어헝어라 뒤야
 오란다네 오란다네 산골처녀가 오란다네
 앵기 잡어 죽 쒀 놓고 혼자 먹기가 아까워서
 둘이 먹자고 오란다네
 개~골 개~골 개고리개고리 개~골
 개골을 잡을라먼 양식 먹고 대돈 받고
 양팔을 뚝뚝 걷고 미나리 방죽을 다듬어라 –후략-
  <한국구비문학대계 6-1, 전남 진도군 지산면 개고리타령>

 

봄날 불리는 민요 ‘개구리타령’에서도 사랑의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겨울잠을 자고 일어나 생명 기운 넘치는 개구리가 한껏 뛰어오르듯 청춘 남녀의 사랑 기운도 세상 밖으로 뻗쳐 나오는 때가 바로 봄날인가 봅니다. 미나리밭을 더듬으며 찾아가는 것은 개구리가 아니라 사랑할 수 있는 우리의 마음, 그 생명의 에너지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젊거나 늙거나 간에 사랑할 수 있는 능력, 그 마음의 힘이야말로 묵은 피로와 온갖 염려 속에서도 우리를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 여러분에게는 세차게 울어 대는 개구리의 기운, 힘껏 미나리밭을 뛰어오르는 개구리의 활력이 있는지요? 사랑하고 살아내며 하루하루 이어갈 생명의 기운, 그 부활의 기력이 봄날을 맞아 샘솟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죽은 듯이 땅속에 파묻혔던 개구리도 삶의 열기로 충만한 때가 바로 이 봄날입니다. ‘개구리는 옴쳐야 뛴다’는 거나 ‘개구리가 주저앉는 것은 멀리 뛰기 위해서다’는 라는 옛말도 있지요. 지금의 움츠림이, 지금의 주저앉음이 준비하는 도약은 어떤 미래일지 그려보면서 봄날의 하루를 그저 만끽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토록 오래 움츠리고 이토록 힘들게 주저앉아 기다렸으니 다가올 미래의 도약이 얼마나 멋지고 화려할지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글_김영희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구비 문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비극적 구전 서사의 연행과 '여성의 죄'>, <한국 구전 서사 속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신경증 탐색>, <한국 구전 서사 속 '부친살해' 모티프의 역방향 변용 탐색> 등의 논문과 <구전 이야기의 현장>, <숲골마을의 구전 문화>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