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달력의 맨 마지막장이 찾아왔습니다. 숨가쁘게 달려온 일 년입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거저 먹을 것이라곤 하늬바람밖에 없다”는 옛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옵니다. 한 해 동안 지나온 일들 가운데 내 고단함을 대가로 바라지 않은 일들이 하나도 없네요. 살아가는 일엔 정말 공짜가 없습니다.
한 해의 일들을 하나하나 돌이키다 보면 누구나 보람보다는 반성과 미련의 감정에 휩싸이기 마련입니다. ‘그때 왜 그렇게 처신했을까, 다른 선택을 할 수는 없었을까, 내 의도와 달리 상대방을 서운하게 한 건 아닐까, 그 순간에 내 입장을 더 명확하게 밝혀야 했던 건 아닐까’ 하는 등의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후회되는 일 중에는 내가 남에게 잘못한 일들도 있지만 남들이 내게 잘못했을 때 제대로 응대하지 못한 일들도 있습니다. 또 ‘고의 가랑이 뜯어 적삼 꿰매 듯’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다 크게 봉변을 당할 뻔한 일들도 있겠지요.
하나하나 떠올리다 보면 정말 한 해를 어떻게 살아온 것인지,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는 토끼 잡으려다 잡은 토끼를 놓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지나간 일들에 얽매여 다가올 일들을 제대로 맞을 수 없어서는 안 되니까요.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 어떤 사람들은 잃어버린 것을 어떻게 보완해서 앞으로의 일에 대비할까 고민하는 반면 또 다른 사람들은 ‘왜 잃어버렸을까, 누구 때문에 잃어버렸을까, 어디서 언제 잃어버렸을까’ 생각하는 데 신경을 집중한다고 합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도 부질없는 짓이지만 과거에 붙들려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의 사소한 일들에 매달려 새해의 엄청난 즐거움을 제대로 맛보지 못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것이야말로 “기왓장 아끼다 대들보 썩는” 일이 아닐는지요?
새해 할 일의 목록을 정리하다 보면 올해 해결하지 못해 다음 해까지 미루게 된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누구라도 마음이 조급해지곤 하지요. 그러나 “바늘 허리 매어 못 쓴다”고 서둘러서 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급한 마음에 해치울 일이었으면 다음 해로 넘길 일도 없겠지요. 이런 때 “나중에 난 뿔이 우뚝하고”, “개구리도 움츠려야 뛴다”는 속담이 위안이 되지는 않을까요?
올해 다하지 못해 새해로 넘기는 일 중에는 계획이 너무 크고 거창해서 시도조차 해 보지 못한 일들도 많을 겁니다. 일의 규모와 마음의 욕심을 줄여 소박한 걸음으로 하나둘 밟아 가다 보면 어느덧 내년 이맘때쯤 제법 튼실한 결실을 맺을 수도 있을 겁니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고 하지 않습니까? 생각과 욕심만으로는 어떤 일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작고 여문 계획, 그리고 그에 걸맞는 다부진 실천의 의지가 “가랑잎에 불 붙듯” 새해 새날 우리의 삶을 활활 일으켜 주리라 기대합니다.
글_김영희
경기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구비 문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비극적 구전 서사의 연행과 '여성의 죄'>, <한국 구전 서사 속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신경증 탐색>, <한국 구전 서사 속 '부친살해' 모티프의 역방향 변용 탐색> 등의 논문과 <구전 이야기의 현장>, <숲골마을의 구전 문화>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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