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읍 김동수 가옥
겸손으로 지어낸 꽃담
정읍 산외면 오공리 공동마을에는 소박해서 더욱 빛나는 꽃담이 있다. 이 마을에는 1784년에 지어진 99칸 부잣집의 대명사로 불리는 김동수 가옥(중요민속자료 제26호)이 자리하고 있다. 처음 이곳에 자리를 잡은 이는 김명관(1755~1822). '지네[蜈蚣]'의 형상을 닮아 명당으로 꼽히는 이 터에 10년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정성을 다해 집을 지었다.
평평하고 너른 공간에 자리한 집에 제각각 작은 벽과 건물을 배치해 칸살이의 쓰임에 따라 오밀조밀하게 나눠놓은 공간의 실용성에 눈길이간다. 그래서 여느 집과 달리 'ㄷ'자 모양의 안채에도 각기 독립된 부엌을 나란히 끝자리에 배치해 접근성과 독립성을 살렸다. 이는 여성들의 노동을 줄이고 고부간의 역할에 따른 영역을 나누고자 한 것이다.
사랑채와 안채, 사당 사이에는 낮은 벽을 두고 불필요한 외부의 시선을 막아 독립된 공간을 만든 점 등도 눈에 띈다. 또 이 간벽에 문양을 베풀어 검박한 치장을 함으로써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함께 담아냈다. 또한 여느 집들이 권위를 높이고자 사랑채나 안채의 기단을 높여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것과 달리 이 집에는 별도의 기단이 없다. 경계돌만을 놓아 겸손의 아름다움을 전한다. 겉으로 보이는 허식보다는 실용성과 소박함을 담아내고자 한 뜻이다. 김동수 가옥과 나란히 이웃한 고택의 돌죽담에도 균형과 절제의 아름다움을 담아낸 꽃담이 있다.
안팎에 각기 다른 모양의 꽃들을 새겨 놓았다.
- 정읍 영모재
기쁨이 두 배 되는 '쌍희(囍)'자 새겨
정읍시 외곽 진산동에 자리한 영모재(등록문화재 제213호) 솟을대문의 화방벽에도 3개씩의 '쌍희(囍)'자를 양옆으로 쌓아 솜씨를 부려 놓았다. 예로부터 '희(囍)'자는 실제 문장에는 사용되지않지만, 기쁨이 두 배가 된다는 의미로 읽혀 의복, 각종 그릇과 가구 소품 등의 공예품이나 생활용구, 건축의 문양과 도안에 적극 활용되었다. 일상에서 늘 '기쁨과 복'이 함께 하길 바랐던 간절한 염원이 깃든 셈이다. 1915년에 세워진 솟을대문 안쪽의 양벽에는 민화풍의 벽화가 가득하다.
산수화를 비롯해 소나무 아래 까치와 호랑이, 까치와 표범, 연꽃이 활짝 핀 물가풍경, 대나무와 봉황, 해태와 사자, 거북과 현무, 소나무와 토끼, 청룡과 황룡, 사군자, 포도와 참새 등 그 종류와 표현이 다양하다. 그림들은 저마다 의미를 담고 있다. 사악한 기운을 물리쳐 상서로운 기운이 깃들길 기원하고 늘 기쁨과 풍요로움이 가득하길 바랐다. 더불어 자손들의 대와 번영이 끊기질 않기를 그림 속에 담아냈다.
- 고창 송양사
이 꽃 보고 늘 기쁜 일 가득하길
송양사(松陽祠) 입구 풍욕루(風浴樓), 그 누각에 오르면 '바람'에 욕심도 근심도 잠시 씻을 수 있다. 고창 해리면 송산리 너른 들을 굽어보고 있는 송양사(전북문화재자료 제163호)는 고려시대 문신인 성사달(成士達, ?∼1380) 등이 배향된 창녕성씨 문중의 사당이다. 풍욕루 양 옆으로 펼쳐진 담장엔 '쌍희(囍)' 글자와 꽃봉오리들이 대칭을 이루며 피어나 꽃담을 이루고 있다.
송양사의 중심건물인 경현당(景賢堂)은 '선현들의 바른 뜻을 우러러 잇고자 한 뜻'을 담은 곳으로, 문중의 자제들을 모아 공부를 시키는 학당(學堂)이었다. 이곳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사당의 단정한 맞배건물 화반에 조각된 학과 사슴도 살펴보시길.
- 고창 김성수 별장
화분에 심어진 꽃 담은 독특한 문양
울울한 숲길 사이로 물길은 끊이질 않았다. 고창 선운사(禪雲寺). 그곳에도 어김없이 동백숲길따라 꽃담이 펼쳐져 있었다. 선운사 후원 바로 옆 차밭 사이로 난 좁은 산길을 따라 10여 분 정도 오르니 커다란 솟을대문이 서 있다. 건물은 오래전 화재로 소실되고 문간채만 남은 이곳은 인촌(仁村) 김성수(1891~1955) 집안의 별장이 있었던 곳이다.
솟을대문을 중앙에 두고 '기쁠 희(囍)'자와 '버금 아(亞)'자를 투박하게 새겨 두었다. 집안으로 들어가면 그 어느 꽃담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문양의 꽃담이 있다. 커다란 화분에 심어진 꽃은 가지를 넓게 벌린 채 꽃봉오리를 형형하게 달고 있다. 담 앞에 심어진 목련꽃 모습인 양눈길이 머물게 된다. 바깥의 투박한 꽃담과 비교되는 화려함으로 색다른 정취를 느끼게 한다. 시간은 덧없이 흐르지만, 저 꽃담들엔 꽃이 여전히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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