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여행길 2 - 선승의 맑은 기품 깃든승탑을 찾아서!

이산저산구름 2014. 2. 10. 21:41

 

 

 

통일신라시대 말 9세기 당나라로 건너간 유학승들을 통해 이 땅에 들어온 선종(禪宗)은 새로운 시대정신이었다. 백성들의 호응을 받으며 그렇게 들불처럼 세워진 것이 9개의 선종 산문(山門)이었다.
특히 전라도는 변화의 열망이 더했다. 남원 실상사(實相寺) 실상산문(實相山門)을 시작으로 장흥 보림사(寶林寺)·곡성 태안사(泰安寺)·화순 쌍봉사(雙峰寺) 등이 이곳에 들어서고 더불어 강진 무위사(無爲寺)·광양 옥룡사(玉龍寺) 등도 선풍(禪風)을 드날리기 시작했다. 이런 탓에 이곳 남도에는 스님들의 사리를 봉안한 뛰어난 승탑이 조성돼 오늘에 전한다. '깨달음을 얻은 이는 누구나 부처'라 했으니 부처를 모신 집을 어찌 허투루 할 수 있었겠는가. 아름답고 조형적인 승탑(부도·浮屠)들이 이곳에 전해지고 있는 의미 역시 더욱 각별하다.

 


- 곡성 태안사 적인 혜철선사와 광자 윤다스님의 승탑
정취 있는 옛길 걸어 만나는 고요

 

곡성 태안사의 승탑을 찾아간다. 물안개를 피워내며 굽이치듯 돌아들고, 나아가듯 감기다가 멈춘 듯 잔잔히 흐르는 보성강을 따라 걷는다. 보성강은 이웃한 섬진강처럼 큰 강은 아니지만 작아서 더욱 정겨운 강이다. 곡성 죽곡면 원달리 동리산 초입에 이르면 아름다운 산길을 만난다. 대개 산사로가는 길들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포장에 덮여가는 요즘의 세태에서 비껴난 이 길은 흙먼지 일고 자갈들 밟히는 옛길의 정취를 지니고 있다.
조붓한 산길을 따라 오르노라면 새소리, 물소리 낭랑하다. 847년에 이곳에 산문을 연 적인(寂忍) 혜철(慧哲,惠哲, 785~861)선사의 비문에 새겨진 대로 <수많은 봉우리, 맑은 물줄기가 그윽하고 깊으며, 길은 멀리 아득하여 세속의 무리들이 오는 경우가 드물어 승려들이 머물기에 고요해 심성을 닦고 기르는 데 마땅한 곳>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태안사의 오솔길에서 만나는 많은 다리들 중 유독 눈길이 가는 것은 능파각(凌波閣,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82호)이다. 산사를 찾는 이들에게 기꺼이 제 몸 내줘 계곡물을 건네주며 '월천(越川)'의 공덕을 쌓아 온 나무다리이다. 다리에 지붕을 얹어 정자도 겸하니, 이곳에서 다리쉼을 하며 계곡을 바라보노라면 정녕 이곳이 세외(世外)의 땅임을 느끼게 된다.

 

 

고려전기의 문신 임보(任溥)는 능파각에 들러 <개울 위에 다락을 세웠으니 누각(樓閣)이요/ 개울 위에 다리를 놓았으니 교량(橋梁)이요/ 개울 위에 절문을 얹었으니 산문(山門)이다/ 동리산 계곡 물 위에 뜬 봉황의 집>이라는 짧은 시로 이 다리의 아름다움과 묘미를 적어 놓았다. 미련도 욕심도 없이 가볍고 우아한 신선의 걸음걸이를 일러 '능파'라 했으니 이곳을 건너며 세속의 것을 놓아두는 순간은 모두 신선인 셈이다.

절 초입 '桐裡山 泰安寺(동리산 태안사)'라는 현판을 내건 일주문(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83호)을 지나 오른편으로 부도밭이 있고, 그곳에서 절 마당을 지나 북쪽으로 오르면 터를 깎고 주변에 담장을 둘러놓은 곳에 다다른다. 머리 숙여 둥근 배알문(拜謁門)을 지나면 높다란 단 위에 자리한 승탑을 만난다. 적인선사조륜청정탑(보물 제273호)이다. 단정함이 돋보이는 승탑이다. 이 승탑의 주인공인 혜철선사는 중국의 서당지장(西堂智藏)의 법을 얻어 문성왕 원년(839년) 3월에 귀국했다. 선사가 귀국한 당시의 정황을 비문은 이렇게 적고 있다. <산중에 사람이 없더니 오늘에야 돌아오도다! 나라가 보물을 얻음이라. 이제야 부처의 지혜와 달마스님의 선법을 모두 갖추게 되었다.>
선사는 도선(道詵, 827~898) 등 많은 제자를 길러내며 선지를 닦다 경문왕 원년(861년) 2월에 77세로 입적하였는데, 사지와 몸이 흩어지지 않고 얼굴빛이 평상시와 같았다한다. 이후 경문왕은 868년에 시호를 내려 ‘적인(寂忍)’이라 하고, 탑의 이름을 '조륜청정(照輪淸淨)'이라 하였다.

 

 

혜철스님의 부도는 이른바 목조건축의 팔각당(八角堂) 모양을 그대로 돌에 옮겨놓은 형식으로, 팔각면이 곧고 치밀하게 다듬어져 있는데 특히 기단부 사다리꼴 모양의 8면에는 사자(獅子)들의 다양한 모습을 돋을새김하였다. 하늘을 바라보며 포효하는 사자를 시작으로 바람에 날리는 갈기의 표현에서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 마치 용맹한 사자들이 스님의 승탑을 가운데 놓고 주위를 돌며 지키는 모양새다. 탑신에도 제석과 범천상을 새로이 새겨놓았다. 이는 탑 안에 봉안된 스님의 위상을 높이고, 사리를 수호하겠다는 적극적인 의미일 것이다.

다시 일주문으로 향하면 일주문 곁에 스님들의 부도밭이 대숲을 두르고 널찍하게 자리하고 있다. 일주문 부도밭 끝자락에 950년 고려 광종때 세워진 광자대사(廣慈大師) 윤다(允多, 864~945)스님의 승탑(보물 제274호)과 탑비(보물 제275호)가 서 있다. 윤다스님은 이곳 동리산문의 3대 조사(祖師)로 태안사의 사세(寺勢)를 크게 일으켰다. 광자대사탑은 높이 2.8m의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 승탑으로 적인선사의 승탑을 닮아 있다. 팔각의 지대석 각 변의 중심에 팔각모서리가 오게 해 마치 마름모 모양으로 서로 엇갈리게 배치한 점이 독특하며, 얕게 조각된 용무늬가 신비로움을 더한다.

 

 

 

- 구례 연곡사 동승탑과 북승탑
절제와 균형의 아름다움

 

 

 

 

곡성 태안사를 나서 강변을 한참 걷다 보면 섬진강과 보성강이 두물머리를 이루는 압록에 이른다. 이윽고 구례 토지를 지나 섬진강을 따라가면 피아골에 다다른다.
이곳 피아골은 가을 단풍이 아름답기로 이름높으며 무엇보다 우리네 조상들의 고단한 노동과 생의 의지를 보여주는 계단식 다랑논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 연곡사(燕谷寺)가 자리해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이 절은 정유재란 당시 왜구에 의해 잿더미로 변했다.
이곳을 다시 일으킨 이는 조선시대 소요당(逍遙堂) 태능(太能, 1562~1649)스님이었다. 한 때 밤나무로 만든 왕가의 신주목(神主木)을 봉납하기도 했으며, 일제에 맞서 담양출신 의병장 고광순을 비롯한 수많은 의병들이 1907년 일본군의 총칼 아래 쓰러진 비운의 공간이기도 하다.
연곡사 동백나무 그늘 아래에 '고광순 순절비'가 그날의 기억을 일깨워주고 있다.

연곡사 북동쪽에 우리나라 '승탑 중의 승탑'이라 알려져 있는 연곡사 동승탑(국보 제53호)과 탑비(보물 제153호)가 자리하고 있다. 돌의 따뜻한 질감과 함께 적절한 비례와 '딱 그만큼'의 군더더기 없는 모양은 저절로 탄성을 일게한다. 화려하지만 격을 잃지 않는 그 절제와 균형의 감각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탑의 주인공은 알려져 있지 않다. 도선국사의 것이라는 의견도 있으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전체적인 형태는 팔각당형으로 사각지대석 위의 구름 사이에 용[雲龍文]을 새긴 2단의 하대석을 놓았다. 상단에는 8면에 생동감 넘치는 사자를 새겨 놓았다. 중대석에는 팔부중(八部衆)을, 상대석에는 활짝 핀 연꽃을 새기고 그 위로 몸돌받침을 두었다. 이 몸돌받침에 조각된 가릉빈가의 서로 다른 악기와 표정을 살피는 것도 또 다른 재미일 것이다. 몸돌에는 사리를 보호하기 위해 자물쇠를 표현한 문비와 사천왕을, 공양의 의미로 향완(香玩)을 새겨 놓았다. 쌍봉사 철감선사의 승탑에서는 향완을 대신해 천인상(天人像)을 새겨 놓았는데 모두 같은 의미이다.
지붕돌에는 기왓골과 서까래, 추녀 끝의 풍탁구멍, 연꽃모양의 막새까지 새겨놓아 조각 수법의 정교함과 섬세함 앞에서 다시금 이름모를 옛 석공의 솜씨에 감사할 따름이다. 상륜부의 앙화 위에 가슴을 펼치고 하늘로 이제 날아오르려는 봉황의 생동감은 장엄의 극치를 보여주며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고 있다.

연곡사에서는 동승탑 외에도 고려 전기의 승려인 현각선사(玄覺禪師)의 승탑으로 추정되는 북승탑(국보 제54호)과 조선시대 소요당 태능스님의 승탑(보물 제154호) 등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북승탑 역시 팔각당형으로 동승탑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조형감각을 잃지않고 있으며 상륜부 등의 봉황의 표현 등에서도 뛰어난 조각솜씨를 엿볼 수 있다.
연곡사 서승탑이라 불리는 소요태능의 승탑은 1650년에 건립된 것으로 탑신을 받치도록 두툼한 괴임을 둔 점이 독특하다. 탑신의 몸돌은 한 면에만 문짝 모양을 새기고, 다른 곳에는 부신중상(八部神衆像)을 돋을새김해 두었다. 새겨진 팔부중의 퉁방울눈에 이르면 그 모습이 위압적이기보다는 웃음을 자아낸다. 지붕돌은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큼지막하게 꽃장식을 얹어 두었으며,지붕 꼭대기의 상륜부의 봉황과 연잎의 표현이 조선시대 민화 속 봉황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연곡사에는 이외에도 조선시대 승탑 2기가 더 있다. 앞에서 소개한 승탑들에 비해 조형성은 떨어지지만 각 부분의 비례가 아름다운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