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역사의 숨결을 따라 성곽길을 걷다 서울 성곽길, 혜화문에서 창의문까지

이산저산구름 2013. 10. 21. 21:15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며 걷는 북악산 성곽길

걷다보니 꽤 높아졌는지 서울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마침 파란 가을 하늘이 펼쳐진 하루, 경치가 그야말로 예술이다. 안내판이 보여 달려가 봤더니 서울시 선정 우수 조망명소란다. 불어오는 가을 바람을 온 몸으로 느끼며 노송이 즐비한 성곽길을 걸으니 그야말로 몸이 가벼워진다. 천천히 타박타박 성곽길을 걷다 보니 이곳에 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 말바위 안내소가 나온다. 북악산길을 걷고 싶은 사람은 성곽길 입장 신청서를 써야 한다. 신분증을 보여주고 신청서에 간단히 개인 신상을 쓰자 목걸이 하나를 턱 내준다. 군 시설이 있기 때문이란다. 여기서는 아무 곳에나 아무 방향으로나 사진을 찍을 수도 없다. 아직 분단 상황이라는 것이 피부에 와닿게 느껴진다.

 

 

숙정문肅靖門을 지나 촛대바위, 청운대를 찍고

멀리서 도성의 북쪽 대문인 숙정문이 보인다. 음양오행 가운데 음에 해당하는 까닭에 쉽게 열어두지 않았다지? 여기를 열어두면 한양 여인네들 다 바람난다는 우스갯소리에 실없이 웃고는 발길을 서둘러 촛대바위를 지난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의 맥을 끊겠다고 철심을 박아두었다는 장소, 직접 보니 마음이 아프다. 촛대바위의 형상은 청운대에 가야 더 잘 보인다는 말을 듣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제 길은 계속 오르막이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좀 지친다 싶을 때 시야가 더욱 시원해진다. 청운대다. 해발 293m의 봉우리. 내려다보면 서울의 광화문, 경복궁이 한 눈에 보인다. 과거와 현재의 공존이다. 지금 이 성곽길도 그렇다. 처음 태조가 축성했을 때의 돌과 세종, 숙종이 각각 개보수 했을 때 성곽의 돌모양이 다르다. 하나의 문화재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온 흔적을 모두 볼 수 있다니 그 또한 의미가 있다 싶다.

 

아직도 아픈 상처, 1,21사태 소나무

저 밑에 평범해 보이지 않는 소나무 하나가 보인다. 총탄 구멍이 아직도 선명한 1,21 사태 소나무. 1968년 김신조 등 31명의 무장공비가 청와대 습격을 목적으로 침투했을 때 입은 상처다. 15발의 총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소나무, 아직도 통일은 멀고 그래서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다시 높은 오르막이 계속 된다. 땀 닦을 틈도 없이 오른다. 한발씩 천천히, 조금씩 묵묵히...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 백악마루. 여기가 바로 정상이다. 돌 하나 서있을 뿐이지만 이곳까지 쉬지 않고 걸어온 스스로가 무척이나 대견하다. 잠시 땀을 닦고 호흡을 고른다.

 

 

창의문까지 약 4.7km

이제 길은 경사가 급한 계단식 내리막이다. 거꾸로 오르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으로 느껴졌는지… 창의문에 도착하자 출입 허가증을 반납하는 곳이 나온다. 창의문은 쌓을 때 사소문 중 북문으로 만들어진 것이란다. 풍수지리설적으로는 경복궁을 내리 누르는 위치에 있다고 해서 사용은 그리 많이 되지 않았단다. 겨우 두어시간 남짓 걸었을 뿐인데 지나온 성곽길을 보니 오랜 역사의 시간을 지나온듯 느껴진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수백년을 훌쩍 넘는 역사의 상흔들이 새겨져 있는 곳, 그럼에도 아직도 역사가 계속해서 이어져가고 있는 곳. 북악산과 인왕산을 따라 구비 구비 펼쳐져 있는 서울 성곽길은 그렇게 한 도시에 얽힌 재미난 역사 이야기를 두런 두런 들려주고 있는 듯 했다.

 

글. 신지선 사진. 김병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