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지산 호박소와 얼음골
느릿한 지방도 69호를 택해 만나는 아름다움
가지산은 경북 청도와 경남 밀양·울산·울주에 걸쳐있다. 이른바 영남 알프스의 한 부분이다. 그 별칭을 안긴 한겨울의 눈에 덮인 풍경뿐 아니라 가을도 봄도 여름도 멋지다. 그 풍경을 제대로 보려면 둘러가는 길을 골라잡아야 한다. 속도를 숭상하는 새로 난 국도 24호선은 석남사 들머리에서부터 가지산을 비스듬히 가로질러 통째로 터널로 관통해 버린다. 국도 터널 가운데 가장 길다는 가지산터널은 그 길이만 4.5km에 이른다.
석남사 나오면서 오른쪽으로 길을 잡아 지방도 69호선을 택해 보라. 울산 쪽 가지산 골짜기를 타고 올랐다가 석남터널 500m 남짓을 지난 다음 밀양쪽 골짜기를 타고 내린다. 오르내리는 내내 가지산 풍경을 눈에 담을수 있고 마음에 와닿는 장소에서는 멈춰 서서 한참을 누려도 된다.
이렇게 해서 호박소에 닿는다. 호박소는 물줄기가 돌에 떨어지면서 깊이 파이는 바람에 절구처럼 됐다. 옛날 사람들은 가물 때 여기서 기우제를 지냈다. 호박소 또한 가지산 자락에 든다. 호박소 일대 골짜기는 가파르지 않아서 느릿느릿 누리고 즐기면서 산책하기 알맞다.
골짜기에 들어도 좋고 산길을 걸어도 괜찮다. 사철 내내 제각각의 색깔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얼음골(천연기념물 제224호)은 가지산과 천황산 중간어름에 있다. 여름에도 얼음이 맺힌다고 해서 이름나 있다. 그렇지만 얼음골에는 얼음 말고는 별로 볼 것이 없다. 얼음도 이제는 철재 칸막이 너머로 볼 수 있다.
오히려 얼음골 들머리에서 마을을 거쳐 남명초등학교까지 이어지는 옛길을 한번 걸으면 좋겠다. 이 옛길은 새 길이 나면서 조용해졌다. 얼음골과 호박소로 이르는 아스팔트 도로가 놓이면서 이 길은 동네 사람들 농사짓는 데 쓰는 차들만 가끔 지나친다. 고맙게도 옛길은 행정에서 쓰는 이름조차 '얼음골 옛길'이다. 조금 느린 걸음으로도 1시간이면 족한 꾸불꾸불 이어지는 길에는 사람조차 드물다. 길가 과수원 사과나무에는 올망졸망 얼음골 사과들이 부산스레 달려 있다. 아직 때 타지 않은 모습 그대로 오래 남아있으면 좋을 길이다.
길 끝에서 만나는 남명초교에는 각종 동상들이 집결해 있다.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책 읽는 소녀, 반공소년 이승복에 더해 밀양 출신 임진왜란 승병장 사명대사까지 있다. 뒤쪽 동천 물가에 빙 둘러서 있는 솔숲의 품격은 신라 왕릉의 솔밭 같다.
- 표충사
사명대사 기리는 표충서원도 있고
표충사 가는 길은 빠른 길과 느린 길이 있다. 도래재를 타고 넘어 표충사 가는 길을 잡으면 옛길의 운치를 느낄 수 있다. 골짜기 양쪽으로 펼쳐지는 풍경도 좋다. 도래재는 산내면 남명리에서 단장면 구천리로 넘어간다. 고개가 너무 높고 날씨도 변덕이 잦아 도로 돌아오는 일이 많아 도래재(回嶺)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도래재를 돌아나와 표충사에 이르는 길에는 대추나무가 많다. 옛날에는 대추나무 한 그루로 자식 한 명을 대학 공부시켰다고 할 만큼 밀양 대추의 명성이 높았다.
표충사(경상남도기념물 제17호)에는 사명대사(1544~1610)를 기리는 표충서원(表忠書院,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52호)이 있다.
표충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려시대 향로인 청동은 입사향완(국보 제75호)을 비롯해 표충사 삼층석탑(보물 제467호), 사명대사의 금란가사·장삼(중요민속자료 제29호), 표충사 석등(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4호), 표충사비(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5호), 표충사 대광전(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31호) 많은 문화재가 있다.
표충사는 이처럼 유교조차 품어 안는 우리 불교의 유연함을 보여주고 더불어 주변 경관의 아름다움도 한껏 보여준다. 대광전 맞은편 우화루(雨花樓)에 앉으면 경건함과 고요함 한가운데서 그풍경을 온전하게 담을 수 있고 시원한 계곡물 소리도 들을 수 있다.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사천왕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라. 사천왕 발밑에 험상궂은 남정네 대신 어여쁜 여인네가 깔려 있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볼 만하다. 사천왕 발 아래에 여자가 깔려 있는 모습은 우리나라 절간에 몇군데 없다.
- 밀양박물관과 '땀흘리는' 표충비
백범 김구 글씨 등 유물과 독립운동기념관
표충사에서 나오는 길에 밀양댐에 들를 수 있다. 가을의 밀양댐과 밀양호는 단풍과 어우러져 감탄을 자아낸다. 전망대에 서서 내려다보는 밀양댐 풍경은 원래 목적과 무관하게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밀양댐도 이제 관광지가 되었다.
밀양시립박물관은 규모도 내용도 실하다. 경남에서 가장 오래된 공립박물관인데 영남루 근처에 있다가 2008년 지금 장소에 건물을 새로 짓고 옮겼다. 사명대사 유물도 있고, 영남루에서 출토된 용머리 장식 망와, 아랑 영정, 백범 김구·해공 신익희의 글씨, 김종직·노상직·이익의 문집 책판을 비롯해 김홍도·장승업의 그림과 밀양12경도 등을 볼 수 있다.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내용과 밀양 지역 독립운동을 둘러볼 수 있는 밀양독립운동기념관이 따로 마련돼 있다. 나라잃은 시기 밀양 사람들의 독립운동이 크고 또 많았음을 알게 해준다.
밀양 무안면사무소 소재지에 있는 표충비(表忠碑,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5호)는 사명대사비라고도 한다. 국가에 큰 위기나 전쟁 같은 일을 앞두고는 빗돌에서 땀이 흐른다고 해서 '땀 흘리는 표빗돌'로도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마치 징후를 예고하듯이 비석에 물이 맺혀 흘렀다. 그런데 표충비가 흘리는 ‘땀’은 물기를 머금은 따뜻한 바람이 찬 비석에 닿아 표면에 이슬이 맺히는 결로(結露)현상일 가능성이 높다. 빗돌은 1742년 남붕선사가 경북 경산에서 가져온 휘록암인데 휘록암은 쉽게 차가워지는 성질이 있다고 한다.
운문사(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워리 1789) 입장료 어른 20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500원. 문의 054-372-8880. 홈페이지 : www.unmunse.or.kr
석남사(경북 울산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1064) 입장료 어른 1700원, 청소년 1300원, 어린이 1000원. 문의 : 052-264-8900. 홈페이지 : www.seoknamsa.or.kr
표충사(경북 경산시 외촌면 신한리 398) 입장료 어른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500원. 주차요금 2000원. 문의 : 053-852-9903
밀양시립박물관(경남 밀양시 밀양대공원로 100) 입장료 어른 1000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 500원, 휴관은 1월 1일과 설날·추석, 월요일. 문의 : 055-359-5589, 홈페이지 : museum.miryang.go.kr
*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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