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산마을 고택들
황산리 신씨고가와 정온 고택, 반구헌
황산마을은 수승대 맞은편 길 건너에 있는 신씨 집성촌으로 옛적 기와집들이 무리지어 남아 있다. 황산리 신씨고가(경상남도민속문화재 제17호)라고, 1927년 옛 건물을 헐고 다시 지은집이 가장 유명하다. '원학고가(猿鶴古家)'라고도 일컫는다. 안채, 사랑채, 중문채, 곳간채, 솟을대문, 후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벼슬살이를 한 사람의 집은 아니지만 지붕 꼭대기에 눈썹지붕까지 넣어서 한껏 멋을 부렸다. 이곳의 옛 담장(등록문화재 제259호)은 흙과 돌로 쌓았는데 활처럼 휘어지면서 이어지는 길이 옛집들과 잘 어울린다. 물이 잘 빠지도록 아래쪽은 커다랗고 네모난 자연석만 써서 쌓았으며 그 위에 황토와 작은 돌을 섞어가며 쌓아 올렸다. 옛 담장이 아닌 담장에는 벽화를 그려넣었다. 황산마을이나 수승대의 유래를 일러주는 내용도 덧붙였다. 여기서는 민박을 할 수도 있고 토속 밥상도 마주할 수 있다.
거창을 대표하는 선비로 충절의 상징인 동계 정온(1569∼1641)이 태어나 살던 정온 고택(중요민속문화재 제205호)은 세련되고 우아한 조선 양반집의 구조와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랑채에서 오른쪽에 누정이 튀어나와 있고 눈썹지붕(벽 또는 지붕 끝에 물린 좁은 지붕)을 얹은 특징이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추운 북부지역 가옥의 특징인 겹집으로 되어 있다. 또한 기단은 낮고 툇마루가 높은, 더운 남부지역 가옥의 고유한 특징도 함께 갖췄다.
동계 정온은 광해군과 인조 때 사람이다. 광해군의 미움을 사서 10년 동안 제주도로 유배 갔다가 인조반정으로 풀려났다. 병자호란 때는 최명길 등의 화의 주장에 맞서 척화로 일관했으며 임금이 삼전도로 가서 치욕을 겪자 자결을 시도했으나 죽지는 않았다. 그 뒤 고향으로 돌아와 숨어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정온 고택 사랑채에는 추사 김정희가 쓴 ‛忠信堂(충신당)’이라는 현판이 다른 것들과 함께 걸려있다. 추사도 동계와 마찬가지로 제주도에서 귀양살이(1840~1848)를 한 적이 있는데, 풀려나 서울로 가는 길에 여기 들러서 썼다고 한다. 그의 그림 세한도가 겹쳐지면서 동병상련의 정이 짙게 느껴진다.
바로 옆에는 반구헌(反球軒,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232호)이 있다. 철종 때 양현현감을 지낸 정기필이 지내던 곳으로 택호는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한다는 뜻이다. 정기필은 호가 '야옹(野翁)'인데 선비의 말장난이 재미있다. 야옹은 인품이 높고 덕행이 많았다고 한다.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재산이 없어 거처를 구하지 못해 당시 안의현감이 도와줘서 반구헌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정온 고택에서 모리재까지 5km 숲길이 이어진다. 정온이 다녔을 길로 짐작돼서 거창군이 역사탐방로라 이름붙였는데 숲이 우거져 있고 경사는 가파르지 않다.
수승대를 품고 있는 성령산 오솔길로 가다 보면 수승대 전체를 내려다보는 전망대를 만난다.
숲길 가운데 즈음에서 말목고개가 나오고 아스팔트길을 건너 왼편으로 모리재 가는 길이 이어진다.
북상면 농산리 모리산 중턱에 있는 모리재(某理齋,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307호)는 재실 치고는 매우 규모가 큰 남부 지역 민가 형식의 조선시대 건물이다. 동계 정온이 만년을 보낸 데가 이산 속이다. 기록에 따르면 정온은 여기서 조를 심고 산나물을 뜯어 먹고 살았다. 동계 정온을 기리는 이들이 후대에 지은 재실이다. 모리(某理)라는 이름은 "사람들이 사는 거처를 물으면 모르는(某) 마을(里)로 갔다고 하라"고 정온이 일러줬다는 얘기에서 나왔다. 정온 고택 사랑채에 달려 있는 현판 '모와(某窩, 모르는 움집)'와도 뜻이 통한다.
- 강선대와 분설담
옛 선비들이 탁족하며 풍류 누리던 곳
이어지는 강선대 마을은 모리산 자락 북상면 농산리 산촌이다. 모리재에서 내려오는 임도의 끝자락이다. 거창군을 가로지르는 위천이 마을 앞을 흐른다. 마을에는 강선정이 있고 시내 옆 길가에는 한자로 '강선대(降仙臺)'라 적힌 바위가 있다. 신선(仙)이 내려왔으니(降), 그만큼 아름답다는 얘기다.
분설담(噴雪潭)은 흐르는 물이 바위에 부딪혀 마치 못에서 눈가루를 뿜어내는 듯하다고 붙인 이름이다.
강선대에서 분설담까지는 대략 5km, 갔다가 돌아와야 하므로 10km, 다음에 들르는 갈계리까지 1km를 더하면 11km다. 선비들이 탁족(濯足)으로 더위를 식히며 풍류를 누리던 장소다.
여기 너럭바위에는 옛 자취가 여럿남아 있다. 부산·담양 등 여러 사적비에 자신의 글씨를 남긴 조선
후기 선비 동춘당(同春堂) 송준길(1606~1672)이 남긴 글씨가 새겨져있고 경상감사를 지낸 김양순의 이름도 깊게 파여 있다.
만월당(滿月堂,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370호)은 만월당 정종주(1573~1653)를 기리려고 1666년에 세웠다고 하는데 1786년에 고쳐지었다. 가운데 두 칸은 대청이고 좌우에 방을 하나씩 들였다. 별다른 꾸밈이 없이 간결하게 만들었다.
거창 지역 문인들이 서로 사귀는 장소여서 지역 문화를 뿌리내리고 꽃피우는 데 이바지한 바가 크다는 평을 듣는다. 정온의 <동계집(桐溪集)>에 '정찬보만월당기(鄭贊甫滿月堂記)'가 실려 있다. 찬보는 정종주의 자다. 앞 뜰에는 옛적 연못의 자취가 뚜렷하게 남아 있다.
갈계숲(거창군 천연보호림 제2호)의 이름은 임훈의 호 갈천에서 비롯됐다. 임훈은 어버이를 정성으로 모셨으며 수신(修身)을 으뜸으로 삼았다. 당대 선비들이 중국것은 잘 알고 찾으면서도 우리나라 것은
그렇게 하지 않는 데 대해 비판하면서 우리 역사를 찾아 알려고 애썼다. 그이와 형제들이 거닐었던 갈계숲은 높이가 평균 20m, 나이가 200~300년 된 소나무·느티나무·느릅나무 등으로 이뤄져 있다.
농산리 석조여래입상(보물 제1436호)은 통일신라시대 작품이다. 거창 북상면 농산리의 야산 기슭에 있다. 바위를 원추 모양으로 다듬어 불상과 광배를 돌 하나에 조각했다. 높이가 2.7m나 되며 수법이 상당히 세련됐다.
복스러운 얼굴, 알맞은 이목구비와 은근한 웃음, 당당한 가슴과 유연한 어깨, 잘록한 허리, 얇은옷 속에 비치는 실물과 같은 몸매 등은 당대의 리얼리즘을 잘 나타내고 있다. 망가진 데가 없지 않지만 규모도 크고 수법이 빼어난 데 더해 비슷한 경우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 제 값어치를 인정받고 있다.
퇴계·요수·갈천 3인의 수승대 관련 한시
퇴계는 '기제수승대(寄題搜勝臺)'로 시를 읊었다. 고치기 전 이름인 수송(愁送)은 근심을 보낸다거나 근심 속에 보낸다는 정도로 풀이되는데 고치고 나서의 이름인 '수승(搜勝)'은 명승지를 찾는다는 뜻으로 새겨진다. 퇴계의 개명이 원래 이름을 어쩌면 단순하고 명백하게 해버려 여운이 덜한 측면도 있는 듯하다.
<搜勝名新換(수승으로 이름을 새로 바꾸니)/ 逢春景益佳(봄을 맞은 경치 더욱 좋으리)/ 遠林花欲動(먼 숲 꽃망울은 터지려 하고)/ 陰壑雪猶埋(그늘진 골짜기엔 눈이 묻혔네)/ 未寓搜尋眼(좋은 경치와 좋은 사람 찾았으나 만나지 못해)/ 唯增想像懷(마음에 회포 쌓이네)/ 他年一樽酒(뒷날 한 동이 술에)/ 巨筆寫雲崖(큰 붓으로 벼랑에 구름 그리리).>
갈천 임훈의 화답시는 은근히 가시가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알려지기로는 요수 신권의 화답시가 먼저 쓰였고 임훈은 그 뒤에 시를 지었다. 마지막 행에서 근심 수(愁)자를 겹쳐 쓰고도 모자라 퇴계가 고쳤던 수송(愁送)까지 더함으로써 살짝 비트는 맛을 더했다. 게다가 세 번째 행에서는 '君將去(그대도 장차 떠나니)'라고 해서 여기 수승대에 있지도 않는 사람이라는 얘기까지 내비쳤다.
<花滿江皐酒滿樽(강가에 꽃이 가득하고 동이에 술도 가득한데)/ 遊人連袂漫紛紛(소맷자락 이어질 듯 노니는 사람들 분분하네)/ 春將暮處君將去(봄은 장차 저물고 그대도 장차 떠나니)/ 不獨愁春愁送君(그대 보내는 시름에 봄의 아쉬움을 비길까)>
반면 신권의 화답시는 새로 이름을 지어준 퇴계에 대한 고마움을 담았다. 동갑내기인 퇴계에게 받은 바를 소중한 가르침이라 새기기도 했다.
<林壑皆增采(숲골짜기는 온갖 색깔 더하고) 臺名肇錫佳(대의 이름을 아름답게 지어주네)/ 勝日樽前値(좋은 날맞아 술동이 앞에 두고)/ 愁雲筆底埋(구름 같은 근심을 붓 끝에 묻네)/ 深荷珍重敎(중한 가르침을 마음깊이 느끼고)/ 殊絶恨望懷(서로 떨어져 그리움만 한스럽네)/ 行塵遙莫追(속세에 나아가 흔들리며 좇지 않고)/ 獨倚老松崖(홀로 벼랑의 노송에 기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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