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의 인기
이미 한지는 그 미학적, 과학적 우수성을 인정받아 한지를 사랑하는 마니아계층이 국내뿐만 아니라 널리 국외에서도 점점 확산되는 추세에있다.
한지의 결은 어머니의 품 속처럼 포근하고 정감이 느껴진다. 이는 필시 예로부터 우리 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고 가까이 접한 까닭일는지도 모른다. 현대에 와서는 건축자재나 의류, 침구용, 생활용품, 인테리어에도 많이 활용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친환경 소재 개발에도 한지 애호가나 전문가들의 연구와 노력이 꾸준하면서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 중에서도 공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취미 활동을 넘어 국내외에서 전시 및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하면서 공예가의 수효도 늘고 있다.
필자 역시 한지를 사랑하는 애호가로서, 또 한지로 그림을 그리고 가르치는 한지그림 작가로서 한국의미, 한국의색, 한국의 이미지를담아 한국의 아름다움과 정서를 한지그림으로 표현 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한지작품들을 통해 한지의 미적 요소, 특히 반투명의 특성에서 발현되는 미학에 초점을 맞춰 그 디자인적 특징과 아름다움을 조명해 보기로 한다.
전통한지와 현대적 디자인을 재창조하는 한지그림
과거 천년을 지켜온 전통한지와 현대적 디자인을 재창조하는 한지 그림은 순수 한지그림과 한지조형으로 나누어 이야기할 수 있다.
순수 한지그림은 물감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염색된 한지만을 한 올 한 올 정성들여 뜯어 붙이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 어떤 그림보다도 많은 시간과 섬세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한지가 만들어지는 것도 수십번의 과정과 노력을 거치 듯, 한지그림 또한 캔버스 위에 바탕색 한지를 붙이고, 다음으로 나타내고자 하는 사물의 형태나 색을 표현한다. 일반적인 그림을 그릴 때는 물감을 타서 원하는 색을 만들어 쓰지만, 한지그림은 이미 염색되어 있는 한지를 골라 붙임으로써 색을 표현하는데, 그 묘미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한지그림을 그릴 때 사용되는 한지는 두껍고 질긴 것부터 실크처럼 부드러운 한지가 있는가 하면 잠자리 날개보다도더얇아 바닥이훤히 비쳐 붙이고 또 겹쳐 붙여도 맨 처음에 붙인 색이 드러나 보이기도 한다. 마치 물감으로 구성을 해놓은 듯하다. 아니 그 보다도 색감이 조화롭고 아름답다. 어찌 보면 작은 자투리 천을 이어 꿰맨 조각보같기도 하다.
한지그림 작품에서 발견하는 심오한 미학
예부터 옷을 짓고 남은 자투리 천은 선조의 지혜로 재활용 됐다. 우리 조상은 버려질 수밖에 없었던 색색의 작은 자투리 천조각을 이어 붙여 조각보를 만들어 이불이나 베개, 발, 밥상보를 만들어 쓰고, 심지어 낡아 다 떨어진 옷에도 다시 한 번 기교를 부림으로써 색의 조화, 구성의 조화, 모양의 조화, 균형의 조화 등을 창조해 냈다. 또 하나의 생활문화를 탄생시킨 것이다. 필자는 한지그림 작업을 통하여 쓰다 남은 한지를 활용, 한지만이 나타낼 수 있는 아름다운 한국의 미와색의 조화로움을 강조하고자 조각보 느낌을 연출하였다.
작품 <한글사랑 Dak paper on canvas>은 2009년 여주 목아박물관 한글새김 초대전 출품작으로 작품제작과정으로는 1. 하드보드지의 높낮이를 다르게 구성하고 바탕은 골지한지를 붙인다. 2. 조각보의 느낌을 표현할 색을 몇 가지 정한다. 한 개의 작은 사각 공간은 같은 색 계통으로 한다. 전체적으로 얇은 한지를 사용하되 그중에서도 가장 얇은 것으로 크기가 서로 다르며 직각이 되게 재단한다. 3.명도, 채도와 색의 조화를 고려하여 재단된 한지를 붙이되 흰 부분이 나오지 않고 밀리지 않도록 각을 맞혀 조심스럽게 붙인다. 여러장의 한지를 붙였는데도 불구하고 밑에 붙여진 색이 드러나기도 하며, 먼저 붙여진 한지의 색과 나중에 붙여진 한지의 색이 조화를 이루어 또 하나의 다른 색을 연출하기도 한다. 이렇게 붙여진 한지의 색과 조화로움, 즉 어울림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작품 <설악산 울산바위>를 보면, 설악의 가을 하늘과 물들어 가는 산등성의 나무들을 유심히 바라보면 밑의 색이 배어 나오는 듯한 느낌과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서 군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여기서 사용된 기법은 모두 동일하다. 하지만 보여 지는 느낌은 약간의 차이를 둔다.
기법을 설명하자면 1. 기본 바탕색으로 구도를 잡아 놓는다. 하늘의 색, 바위의 색, 산등성이 들판의 색을 각기 달리하여 구분지어 놓는다. 2. 하늘의 경우 나타내고자 하는 색 중에서도 가장 짙은 색부터 약간의 간격을 두며 손으로 한지를 뜯어 붙인다. 3. 하늘 사이사이 채워지지 않은 곳은 또 다른 색으로 가늘고 얇게 뜯어 붙인다. 4. 그위에 흰색 한지를 가늘고 길게 또는 넓고 짧게 뜯어 붙이며 하늘의 구름을 표현한다. 5. 산의 바위는 약간의 두꺼운 한지를 사용하여도 좋으며, 다음으로 얇은 한지를 덧 붙여 원근과 명암을 표현해 낸다. 6.산등성과 들판의 나무는 염색 실크 지를 가늘고 짧게 뜯어 붙이기를 반복하면 나무가 빼곡히 있는 것 같은 표현이 가능하다.
이처럼 이 모든 기법은 보일 듯 보이지 않고 비칠 듯 비치지 않으며 설령 비친다 해도 절대로 과하거나 넘치지 않는 은근한 매력을 지닌 한지 덕분이다. 수백 번, 아니 수천, 수만 번 한지를 겹쳐 붙였음에도 불구하고 탁함이 없고 오히려 은은한 한지의 빛은 절로 탄성을 자아낸다.
한지의 보이는듯보이지 않는 반투명성. 그 특유한 미학은 한지에살아 숨쉬는 자연의 생명력에서 비롯된 것으로, 현대 미술작품에 새로운 영감을 주고 있다.
글·사진. 이부미 (한지그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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