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북미산 너구리가 작은 물가에 앉아서 진지한 표정으로 시종 똑같은 사과 조각을 씻는 모습을 오랫동안 관찰했는데, 분명히 녀석은 아무 특별한 이유도 없는 이런 행위를 통해 자신의 행동과는 무관하게 빠져든 이 잘못된 세상에서 빠져나오려는 것 같았다.”
W. G. 제발트 《아우스터리츠》 중
아름다운 문장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느끼고, 생각하고, 질문하게 만든다. 그 감정과 생각과 질문이 꼭 아름다움에만 국한될 필요는 없다. 소설 속 화자가 동물원에 갇힌 너구리의 행위를 관찰하고 쓴 이 문장은 우리로 하여금 무한한 슬픔을 느끼게 하고, 살아 있음의 불가해함을 생각하게 하며, ‘이 잘못된 세상에서 빠져나오려는’ 우리의 무익한 몸짓은 무엇인지에 대해 묻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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