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여행

아우스터리츠 - 소설가 권여선 편

이산저산구름 2013. 7. 10. 13:11

 

아우스터리츠



“나는 북미산 너구리가 작은 물가에 앉아서 진지한 표정으로 시종 똑같은 사과 조각을 씻는 모습을 오랫동안 관찰했는데, 분명히 녀석은 아무 특별한 이유도 없는 이런 행위를 통해 자신의 행동과는 무관하게 빠져든 이 잘못된 세상에서 빠져나오려는 것 같았다.”

 W. G. 제발트 《아우스터리츠》 중 

아름다운 문장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느끼고, 생각하고, 질문하게 만든다. 그 감정과 생각과 질문이 꼭 아름다움에만 국한될 필요는 없다. 소설 속 화자가 동물원에 갇힌 너구리의 행위를 관찰하고 쓴 이 문장은 우리로 하여금 무한한 슬픔을 느끼게 하고, 살아 있음의 불가해함을 생각하게 하며, ‘이 잘못된 세상에서 빠져나오려는’ 우리의 무익한 몸짓은 무엇인지에 대해 묻게 한다.

 

권여선
1965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문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인하대 대학원에서 국문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996년 장편 소설 <푸르른 틈새>로 제2회 상상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소설집 《처녀치마》, 《분홍 리본의 시절》, 《내 정원의 붉은 열매》, 장편 소설 《푸르른 틈새》, 《레가토》, 《비자나무 숲》이 있다. 오영수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