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마을, 눈앞에 펼쳐지는 그때
고택의 모음집으로 불리는 안동시에 의성김씨종택은 자리 잡고 있다. 국내의 명문 양반가문으로 알려진 이곳 의성김씨 집성촌은 국도를 타고 도로를 넘나들다보면 어느새 도착하게 된다. 창밖 풍경을 감상하며 적당한 속도로 도로를 달리는 도중, 왼편으로‘의성 김씨종택-내앞마을’이라는 이정표를 만났다. 그곳은 그야말로 마을이었다.
굳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 않아도 수백 년 전 조선시대 선조들의 생활모습을 그대로 눈앞에서 접할 수 있는 그런 마을.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한복치마를 입고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마을과 마을을 오갔을 규수들, 서책을 옆에 끼고 긴 도포자락을 이끌며 여유로운 걸음을 음미했을 양반들. 그들의 동선이 홀로그램으로 눈앞에 펼쳐지는 듯, 이곳은 그런 마력이 있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 시대로 회귀한 이방인처럼 조심스럽게 종택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다소 이국적이다. 분명 한옥인데 왜 그동안 알던 모습과 조금 다르게 느껴질까. 지금의 의성김씨종택은 임진왜란 당시 불타 없어진 것을 김성일이 재건한 것이다. 한옥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의성김씨종택을 보면 건물 구조가 다소 낯설다고 느낄 수 있는데, 이는 임진왜란 이후 종택을 재건한 김성일이 명나라 사행길에 접한 북경의 주택구조를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명나라의 건축양식을 전해왔다는 이야기가 들리지만 종택을 살펴보면 그 구조가 매우 재미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랑채에서 이어지는 부속채가 2층 구조로 되어 있는데 이를 연결하는 2층의 복도는 대청의 축소형으로 보여 씀씀이가 매우 알뜰하다. 특히 고택의 격조있는 기품을 그대로 담고 있는 종택의 지붕구조가 눈길을 끈다. 하늘을 향해 도도하게 솟아있는, 흡사 연기파 배우의 콧날 같은 매끄러운 선이 하늘과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의 모든 빛을 지붕의 한 쪽 모서리에 담고 있듯 적절한 각도로 올라간 종택의 지붕은 너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절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그대로 대변하는 듯하다.
의성김씨종택의 웅장함과 견고함으로 인해 방문객은 시선이 꽉 차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건물을 응시하는 시선의 마무리는 눈이 아닌
귀다. 특히 비오는 겨울날, 종택의 곳곳은 소리를 낸다. 처마 끝에서 고운 흙 위로 도르르 떨어지는 물방울과 바람을 맞으며 스치는 보호수의
가지소리, 더불어 방문객의 발걸음을 고스란히 흡수하는 고택 앞마당의 나지막한 저음은 사람들의 방문을 진지하게 환영하는
듯하다.
풍수가들의 길지,천 전川前에 머물다
겨울의 종택은 모든 것이 외롭다. 그리고 뚝심 있다. 솟을대문 옆에 자리한 보호수는 오늘 하루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고 싶다는 듯 온 몸의 힘을 빼고 있다. 낯선 이에 대한 경계가 보이지 않는 무방비상태다. 이런 것이 바로 사람에 대한 신뢰이며,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일까. 500년의 세월을 굳건히 제 자리를 지킨 의성김씨 일가들의 자존심을 꼿꼿이 내세우고 있는 듯하다.
물소리까지아름다움으로다가오는이곳의이름을되새겨보니, 새삼 놀랍다. 그렇다. 이곳의 이름이 ‘내앞마을’이었지 않나. ‘내앞’이란 한자어‘천전川前’을 한글로 푼 것으로 그 명칭만으로도 풍광이 얼마나 수려한 곳이었을지 상상이 간다. 서정호 교수의 저서『한옥의 미』에 따르면 일월산의 지맥이 밑으로 흐르다가 낙동강 지류 반변천과 만나며 자리를 튼 이곳은 천이 마을 앞을 돌며 아름다운 모래밭을 자연스럽게 형성해‘완사 명월형浣紗明月形’이라 불렸다고 한다. 완사명월형이란 밝은 달 아래 귀한 사람이 입는 옷을 세탁하는 형국이란 의미로, 그 풍경이 얼마나 장관이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이곳에 임하댐이 건설됐지만 댐이 건설되기 이전에는 훨씬 더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다. 댐이 자리한 곳에 완사, 즉 반변천 모래밭이 형성되면서 유유히 흐르는 강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 것이다. 강과 모래가 함께하는 광경은 그 누구도 자연이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수없는, 고귀하고 당당한 모습을 내비치고 있어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 앞에 한없이 겸손한 심정心情을 갖게 한다. 내앞마을은 낙동강 지류 반변천과 연결돼 있다. 내앞마을을 이야기하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반변천 수중의 섬에 있는 개호송 숲이다.
의성김씨 후손들이 문중의 흥망을 걸고 400여 년 동안 지켜왔다는 이 숲은 후손들의 결의가 그대로 담겨 있다.‘이 숲이 없으면 내앞마을도 없다’는 개호송은 임하댐 아래 반변천 일부에 300m 정도 펼쳐져 호수 가운데 신비한 숲의 모양을 만들어낸다. 후손들이 이 숲을 지키는 데 목숨을 다한 것은 내앞마을의 농경지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개호송은 바람과 물의 장애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수구막이(물길이 마을 밖으로 나가는 곳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하는것)로 만들어진 숲으로, 완사명월형으로 알려진 내앞마을 풍수형국의 부족 함을 메우기 위해 조성됐다. 의성김씨 문중에서는 문중 규약을 만들어 개호송 숲을 보호해 온 것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개호송과 더불어 강 건너편에 자리 잡고 있는 백운정白雲亭(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75호) 역시 눈에 띈다. 백운정은 귀봉 김수일(1528~1583)이 그의 아버지 청계 김진으로부터 땅을 받아 조선 선조 1년(1568)에 세운 정자로, 전통적 유교문화의 경관을 그대로 담고 있는 정자로 내앞마을과 함께 500여 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자연을 통해 역사를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저 지나가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 오랜 역사가
담겨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비로운가. 의성김씨종택은 가문의 집성촌이자 국내 오랜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는 소중한 이야기다.
글. 황정은 사진. 김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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