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나무

천연기념물의 보고, 국립수목원을 추억하다

이산저산구름 2011. 9. 7. 11:32

 

숲, 자연이 주체인 공간
어린 시절, 텔레비전을 볼 때 ‘새’하면 꼭 함께 나오는 사람이 윤무부 교수였다. 나긋한 웃음으로 새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기도 하고, 새와 함께 광고에 출현하기도 하고, 새와 관련된 뉴스의 인터뷰이로 출현하기도 했다. 새와 관련된 많은 사건들과 발견, 연구의 중심에 윤무부 교수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그렇기에 윤무부 교수는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사람들에게 추억과 그리움으로 가슴속 깊이 남아 있다.


지난밤에 갑작스러운 폭우가 서울ㆍ경기 지방에 쏟아져 경기도 포천시에 있는 국립수목원을 향하는 길에 불길함이 번졌다. 평생을 자연과 함께 살아 온 윤무부 교수에게 오랜 추억과 기억이 서려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국립수목원으로 향하는 길은 평소와 달리 녹록치 않았다.

국립수목원은 1920년대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산림생물종 연구의 전통을 잇고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 산림생물 주권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기관이다. 또한 조선시대 세조대왕 능림으로 지정된 1468년 이래로 540여 년 이상 자연 그대로 보전되어 오고 있는 광릉숲을 보호, 관리하고 있다. 그렇기에 발길 닿는 곳에 푸르름이 있고, 눈길 가는 곳에 역사와 문화가 푸른 숨을 내쉬는, 오로지 ‘자연’이 주체인 공간이다. 또한 광릉숲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에 선정되어 생물다양성의 보고로 잘 알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생태계 보전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국립수목원은 사전예약제와 더불어 한정된 인원에게만 수목원의 어여쁜 속살을 보여주고 있다. 수목원에 방문하기 위해서 의정부를 거쳐 포천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도로 양 옆에 빼곡히 자리하고 있는 전나무의 행렬에, 사각사각 바람에 따라 소리 내는 나뭇잎들의 연주에, 자연이 주는 시원함을 마음 가득 느낄 수 있었다.

하늘은 여전히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듯 먹구름이 새까맣게 몰려들었고, 결국 우리는 수목원에 들어간 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때 철수를 해야 하는 상황에 닥쳤다. 윤무부 교수는 천연기념물들의 자료가 가득 쌓여 있는 자택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생태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소망하다
하늘이 뚫린 것처럼 쏟아지는 비를 뚫고 우리는 윤무부 교수의 자택이 있는 서울시 동대문구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집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온갖 촬영 및 편집장비, 새에 대한 기록물을 볼 수 있었다. 윤무부 교수는 부엌 옆에 딸린 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여기를 좀 보세요. 내가 평생 동안 모은 자료들입니다. 이곳에 새 울음소리가 녹음된 것, 새 모습이 담겨져 있는 필름이 다 있어요.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새의 생태가 이 안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습니다. 이미 멸종되어 볼 수 없는 새들도 굉장히 많아요.”


천장까지 높이 솟아 있는 책장에 자료들이 꽉 차 있다. 이곳은 다름 아닌 윤무부 교수의 새 박물관이나 마찬가지이다. 윤무부 교수는 이내 다른 서재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각종 촬영 장비와 디지털 자료들이 한가득이다. 우리는 거실에 있는 커다란 텔레비전을 통해서 한동안 뻐꾸기 새끼가 딱새 알과 새끼를 몰아내는 장면이 담긴 테이프와 꾀꼬리가 알을 품어 제 새끼를 길러내는 장면을 보았다.


“정말 정말 재미있어요. 저 뻐꾸기 새끼를 보세요. 태어난 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딱새 알과 새끼를 몰아내는 데 여념이 없거든요. 뻐꾸기는 이상하게도 날갯죽지와 꼬리 부근에 뾰족한 게 있지요. 그걸로 새끼 새를 밀어내는 거예요.”


지난 50년 사이에 새들은 그 자취를 속속 감추고 있다. 개발로 인해 환경이 악화되기도 했고, 인구 증가에 따라 새들이 서식할 수 있는 곳이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윤무부 교수는 아련한 표정으로 그 당시를 회상한다. 1960~70년대가 호황이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새들이 지천에 있었다. 하지만 경제개발이 한창 진행되던 80년대부터 새들의 울음소리도, 모습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광릉숲에도 굉장히 많은 새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늘 현재 명칭인 국립수목원에 찾아가서 새들을 관찰했지요. 지금은 찾을 길 없는 크낙새(천연기념물 제197호)도 그때 당시에는 수목원에 들어서면 크낙크낙하고 우는 울음이 수없이 들려왔지요. 온갖 새며, 곤충, 식물들이 곳곳에서 자랐습니다.”


이제는 많은 생물들이 우리의 추억 속으로 숨어들어, 기록물이 아니고서는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경제개발은 세계를 성장하게 했지만 그만큼 사라진 것이 많다. 윤무부 교수는 앞으로 50년 사이에 더 많은 것들이 사라질 것이라 말했다.


“우리가 우리의 천연기념물들을 더욱 아끼고 지켜내기 위해서는 생태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왜 사라지고 있는지,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연구와 교육이 필요해요. 우리가 어떻게 지켜내야 할 지 잘 모르기 때문에 손에서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환경과 자연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이해하기를 소망합니다.”

새 박사, 다시 날아오르다
윤무부 교수는 지난 몇 년 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 평생 동안 새들을 따라 강과 숲을 누비다 몸이 지쳐 뇌경색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가망이 없다는 얘길 들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본래의 생활이 가능하다. 오른쪽 몸이 불편하기는 해도 새를 보기 위해 전국 곳곳을 다니고 있다. 새들과 함께 비상했던 평생의 삶, 한때는 지상에 내려앉아 쉬었지만 주저하지 않고 다시 날아오른 것이다.


“광릉숲이 참 좋아요. 옛날에는 두더지나 고슴도치, 노루, 고라니도 많았어요. 자연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곳이지요. 당시에는 그쪽에 정말 많이 찾아다녔어요. 1960년부터였어요. 숲속에서 일주일동안 지내기도 하고요. 은판나비, 왕오색나비가 참 많았습니다. 오래된 간장된장을 뿌려놓으면 나비들이 찾아드는 모습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요.”


윤무부 교수는 국립수목원을 추억한다. 세상은 변해가기 마련이기에 국립수목원의 생물개체수가 줄어든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일 터. 하지만 윤무부 교수는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국내 최대 수목원으로 나아가고 있는 이곳에, 잊혀져 버린 것들이 다시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이다. 윤무부 교수가 국립수목원을 특별하게 기억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1993년 9월 13일 금요일의 일이다. 당시 윤무부 교수는 인터뷰하던 날처럼 비가 갑자기 엄청나게 쏟아져 계곡물에 휩쓸린 것이다. 숨이 떠난 시체 12구와 함께였다. 10여 킬로미터를 떠내려 왔다고 한다. 윤무부 교수의 삶이었고, 생사였고, 추억인 국립수목원. 그렇기에 이토록 아련한 눈빛과 아쉬움을 토로할 수밖에 없는가 보다.


“아들도 새 박사가 되었어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류연구회가 있는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학에서 공부해 한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지요. 가끔 새에 대해서 의견을 나눌 때가 있는데 가끔은 그것이 다르기도 하지요. 똑같이 새 공부를 했는데 왜 의견이 다르냐며 부인이 웃기도 해요.”


집안 곳곳에 아들 사진이 걸려 있다. 대를 이어 새를 공부하는 든든한 아들을 둔 아버지의 심정이 역력히 묻어난다. 윤무부 교수는 다시 날아올랐다. 앞으로도 꾸준히 새를 찾고 연구하고, 천연기념물의 가치를 국민들에게 알릴 것이다. 윤무부 교수는 마지막으로 100년 이후를 내다볼 수 있는 환경의식과 정책을 희망한다는 말을 남겼다.


글ㆍ박세란 사진ㆍ윤무부, 엄지민, 국립수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