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벚나무에 대한 기록
왕벚나무에 대한 일본문헌의 기록을 살펴보면, 1900년 『일본 원예 잡지 45호』에 도쿄 우에노공원 왕벚나무 조사 결과가 실려 있다. 그 이듬해인 1901년에는 마쓰무라松村박사가 『도쿄 식물 잡지』 15권에 왕벚나무에 대한 기록을 발표하면서, 실질적인 식물학적 이름인 ‘Prunus yedoensis Matsum’이 탄생했다.
우리나라 제주도에서는 1908년 4월 14일 한라산 북측의 관음사 근처, 해발 약 600미터 지점의 숲 속에서 타케(Emile Joseph Taquet) 신부가 세계 최초의 왕벚나무 표본(표본번호 4638번)을 채집했다. 그 후 1912년에 독일 베를린 대학의 쾨네(Koehne) 박사를 통해서 제주가 왕벚나무 자생지임이 최초로 알려졌다. 그리고 고이즈미, 다케나카, 나카이, 마키노, 모리 등 많은 식물학자들이 제주를 방문해 조사하여 이를 지지했다.
벚나무 종류의 특성
한국에서 자라는 벚나무는 장미과에 속하는 낙엽활엽수이다. 20여 종류가 자라고 꽃이 매우 아름답다. 열매는 6~7월 여름에 익고, 먹을 수 있다. 또한 가을에 단풍이 붉고 곱게 물들며 겨울의 낙엽수로 아름다운 관상수이다.
왕벚나무는 낙엽교목으로 10미터까지 자란다. 잎은 어긋나고 타원형이거나 알 모양으로, 가장자리에 겹톱니가 있다. 4월에 연분홍 또는 흰색 꽃이 잎보다 먼저 피며, 꽃잎이 5~6개 달린다.
울릉도에서 자라는 섬벚나무를 비롯하여 한라산의 왕벚나무, 탐라벚나무 등 6~7종의 특산식물이 한국에서 자라고 있다.
우리나라에 벚나무 개체수가 많이 분포하고 있다. 지금도 시골 야산에서 개벚나무가 흔히 발견되고, 열매인 버찌를 따먹는 벚나무도 많이 분포되어 있다. 일본에는 ‘산벚꽃’이 본토의 북방을 제외한 지역에 널리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제주시 봉개동 및 전라남도 해남군 구림리에서 자라는 왕벚나무를 천연기념물 제156호, 159호, 173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일본과 한국의 왕벚나무 이야기
1908년 4월 15일. 서귀포시 서홍리 소재 성당에 와 있던 프랑스 출신 타케 신부가 제주도에서 채집된 표본을 당시 벚나무종류 분류의 권위자인 독일의 베를린 대학 쾨네(Koehne) 박사에게 보냄으로써, 제주도가 왕벚나무 자생지임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그 후 미국의 하버드 대학 윌슨 박사가 일본에서 왕벚나무자생지를 찾으려 했으나 실패하자 산벚나무와 올벚나무의 교배에서 생긴다는 잡종설을 발표하여 일본학자들의 많은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1933년 4월 일본 교토 제국대학 고이즈미 겐이치 박사가 한라산 남쪽 숲 속에서 왕벚나무를 찾아내고 확인, 발표해 오랫동안 학계에서 논쟁대상이 되었던 것을 해소시켰다.
한국 땅에서 왕벚나무 식재
일본은 1909년에 창경궁 춘당지春堂池에 왕벚나무를 조경수로 식재하였다. 1910년에는 일본 정부의 주도로 진해시의 도시계획(1910년 6월 18일)에 의거 본격적으로 진해시에 왕벚나무 2만여 본을 조경수로 식재하였다. 1935년에 김찬익(당시 서귀면장)이 제주에 최초로 일본산 왕벚나무를 일주도로에 식재했다.
그 후 한국은 1945년 8·15광복 이후에 일본의 국화 즉 일본을 상징하는 꽃이라 하여 냉대하였다. 그러나 1960년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제주임이 밝혀지고, 관광 도시로서 발전적 계획이 수립됨에 따라 우리나라 자생종인 왕벚나무를 다시 심어 왕벚나무가 꽃으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62년에 경상남도 진해시와 해군이 공동으로 묘목 2천여 그루를 일본에서 구입하여 진해시, 통제부 등에 공원과 시가지에 심기 시작하였다. 그 후 1966년에는 경상남도 향토출신 재일 교포가 호응하여 1만 그루의 묘목을 기증받아 진해시와 제황산의 공원, 관광지, 도로변 등에 식재하였다.
한국에서는 1997년 환경부가 벚나무의 왜색 시비를 가리기 위해 일본에서 들여온 왕벚나무 대신 천연기념물인 봉개동 왕벚나무의 후계 목을 보급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 바 있다. 봉개동 왕벚나무는 꽃이 잎보다 먼저 피고 흰색이며 화사하다. 그러나 종자 발아력이 떨어져 씨를 심어 묘목을 생산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일반 벚나무 종자를 뿌려 대목을 키우고 여기에 왕벚나무 가지를 접붙여 묘목을 생산해 왔다.
한국에서 벚나무의 용도
벚나무는 높이 20미터, 지름 1미터까지 자라며 비중이 0.62 정도이고 잘 썩지 않는 성질을 갖고 있다. 따라서 조각재, 칠기, 가구, 공예재료, 인쇄용 목재 등으로 널리 쓰인다. 벚나무 목재는 재질이 치밀하고 결이 곱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마다 많은 벚나무 종류의 목재들을 미국과 캐나다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한 해 동안 수입한 벚나무 제재목만 해도 3,312㎥에 값으로 치면 약 300만 불에 해당한다.
한국의 옛 활인 국궁國弓은 길이가 짧고 휴대하기 쉬워 벚나무와 뽕나무 목재로 만들었다. 재질이 단단한 벚나무와 탄력 좋은 뽕나무가 만나 국궁이 태어났고 작아서 휴대하기 쉬워, 달리는 말 위에서 활시위를 당길 수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인류의 귀한 정신문화로 길이 남을 고려팔만대장경 경판도 벚나무 목재로 깎았다. 또한, 벚나무는 악기로도 쓰였다. 《악학궤범樂學軌範》에는 ‘나무의 잎사귀를 말아서 풀피리를 만드는데 지금은 벚나무 껍질을 쓴다.’고 했다. 입에 물고 불면 입술 사이에서 소리가 나는데 악절을 알면 누구나 쉽게 연주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왕벚꽃과 무궁화꽃의 이야기
국화란 국민들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으며 그 나라를 상징하는 꽃이다. 벚꽃은 일본의 국화다. 정식으로 법률이나 대통령령을 통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국화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한때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일본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었지만, 그동안의 많은 연구와 발표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왕벚나무가 천연기념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게끔 되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 사람들에 의해 우리 땅의 공원이나 도시 등에 벚나무가 많이 심어져 벚꽃이 일본의 국화라는 것이 우리들의 인식에 깊게 뿌리내리고, 벚꽃축제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있지만 이 기회로 왕벚나무의 출발은 바로 우리나라라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나라의 국화는 무궁화꽃이다. 최근 순수 재래종 원형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는 강릉 방동리 무궁화와 옹진 백령도 연화리 무궁화가 각각 천연기념물 제154호, 제521호로 지정되었다. 유구한 세월을 우리나라 땅에서 보내며 기록이 되고 역사가 된 우리의 천연기념물. 물론 지금 벚꽃은 일본의 국화로, 무궁화는 우리의 국화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 뿌리가 우리나라에 있다는 데에 큰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글ㅣ사진 ㆍ김철수 제주특별자치도 한라산연구소장 사진ㆍ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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