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나무

나무의 숨결 손끝에서 피어나다

이산저산구름 2011. 2. 5. 11:48

 

 

조각칼로 빚어낸 온화함, 목조각  

나무에 새로운 생명을 입혀온 지 50여 년이다. 크고 작은 나무토막은 그의 머리와 손을 빌어 불상이 되고 장승이 되고, 꼭두인형이 되었다. ‘목아木芽’라는 박찬수 보유자(중요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장)의 호號처럼 저마다 새로운 형상으로 거듭난 목조각을 통해 그는 세상과 소통해 왔다. “불교조각에 빠져들기 시작한 후로, 교리는 물론 시대에 따른 불교양식을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불교문화도 연구하게 됐지요. 하지만 장승, 솟대, 탈, 도깨비 같은 민속과 관련된 조각도 끊임없이 제작하고 있습니다.” 목조각이라 하면 언뜻 불상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만큼 불교가 우리 문화에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불교의식의 장엄함과 성스러움을 더해주는 각종 의식구儀式具도 불상과 함께 대개 나무로 만들어졌다. 박찬수 보유자는 목조각 중에서도 목조불상 제작이 주특기이지만, 여기에만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작품세계로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목조각의 기본, 나무의 속성 읽기  

집을 짓고, 도구를 만드는 등 오랜 세월동안 우리의 삶을 위해 훌륭한 재료가 되어 준 나무. 나무를 깎고 다듬어 유용하게 쓰려는 데서 비롯된 목조각은 실용을 넘어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조각을 통해 자아를 성찰하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나무토막에 생명을 불어넣어 작품으로 탄생시킨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다니다 보면 온갖 나무들이 눈에 들어오죠. 어느 것은 부처님 나무, 어느 것은 장승 나무, 또 호랑이와 같은 강렬한 동물을 빚으면 적당하겠다 하는 것이 감이 옵니다” 나무의 속성을 알고, 나무와 소통하여야 온전한 조각품을 완성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간 수많은 나무를 만났을 터, 느티나무는 옹이가 많아서 결을 내기가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라 한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작업하기가 아주 맹랑하다. 이에 비해 아카시아나무는 결이 강하지 않으면서도 잘 썩지 않아 그가 귀하게 여기는 나무 중 하나이다. 수많은 수종 중에서도 향나무를 마주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며 웃음 짓는 보유자의 모습에 애정이 묻어난다. “향나무를 빚노라면 껍질 속에 감춰진 향기에 코끝이 뱅글뱅글 돌고, 속살의 아름다운 무늬를 보면 심장이 마구 요동쳐요.” 나무의 재료적 속성을 알아야 온전하게 빚어낼 수 있고, 조성된 이후에도 갈라지거나 뒤틀림이 없다. 불상이나 장승을 깎을 때에 나무의 뿌리 쪽을 머리로 삼아 조각하는데, 뿌리는 건조 후에도 습기를 머금고 있어 썩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조각의 각 부위마다 두께를 다르게 조절하는 등 나무의 속성을 고려하여 균열을 방지한다. 이처럼 목조각 기술의 시작은 자연의 일부로서 나무의 속성을 읽어내는 것이다.

 

작품으로 감탄 보다는 감동을 주는 것 

그의 작품은 독특하기 그지없다. 굳게 다물고 있어야 할 부처님은 오히려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세상을 향해 방긋 웃고 있다. 스님을 표현한 작품 후면에는 저만치 십자가를 조각하여 배치시킨다. 이 무슨 독특한 예술관념인가 의문이 들 만하다. “종교에 상관없이 다양성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또 마냥 과거의 유산에 대한 복제품만 만들어 낼 것이 아니라, 100년 후 국보가 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새로운 작품에 도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전통 기술과 양식을 충실하게 계승하면서도 창의적인 세계를 열어가는 것, 이것이 작품활동에 대한 그의 철학이다. 박찬수 보유자에게 평범함이란 어울리지 않았다. 12세에 입문하여 전통조각, 불교조각, 현대조각의 기본기를 다지고, 점차 그의 관심은 뭇사람들의 관심이 적었던 목조문화재의 재현연구로 옮아갔다. 불교학자인 고 이기영 선생으로부터 불교미술의 사상을 배워 자기세계를 구축한 그는 80년대에 이르러 스님들의 고증과 문헌연구 끝에 법상法床과 윤장대輪藏臺 등의 대표작들을 세상에 내놓아 목조각가로 입지를 다졌다.  여기에만 만족했을 그가 아니다. 90년대에 이르러 동자상童子像과 장승의 보급을 시작으로 전통 목조각을 현대적 감성으로 조형화를 시도하였다. 이로써 전통의 창조적 계승의 가능성을 열기 시작한다. “전통조각의 계승뿐 아니라 현재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문화를 작품으로 표현하고 창조하는 것이 예술가의 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눈이 아닌 가슴으로, 감탄이 아닌 감동의 음성을 지를 수 있도록 감정을 끌어내기에, 그의 작품은 종교도 시간도 초월하여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 

 

평생 즐거운 사람, 장인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라 하여 작업에 긴장을 늦추는 법이 없다. 하루라도 조각을 하지 않으면 몸살이 오고 삼일이 지나면 손이 떨리는 것, 그것이 공예기술이라 말하는 그다. 현대식 조각용구에 길들여진 후학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한다.   “목조각을 배우고자 할 때 적당한 수입을 위해 배우는 것은 절대로 안 됩니다. 장인의 세계를 바로 보고, 3개월, 1년, 10년이 아니라 평생 즐거워야 목조각을 업으로 삼을 수 있다고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그것이 무형문화재 전승자로서 책임감이고 자세라고 말이지요.”  1993년 경기도 여주에 그가 그토록 바라던 목아불교박물관을 개관하였다. 해외전시를 가면 공식 일정을 마치기 무섭게 시장과 골동품상을 누비며 우리 목조각을 한 점이라도 더 구입해 오기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렇게 우리나라로 돌아온 목조각과 수년간 한 점 두 점 빚어낸 작품들이 한데 모여 그의 보물창고이자 관람객과의 소통창구인 박물관을 알알이 채워갔다. 이곳에서 제자를 양성하고, 국민들과 호흡해 온 결과, 그는 1996년도에 중요무형문화재 목조각장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혹자는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의 기능이 원숙해져 가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면서 손과 머리가 일체가 된 ‘생각하는 손’을 가진 사람이 장인이라 했다. 전통의 가치를 오늘에 되살리고, 더 나아가 전통을 재해석하여 모든 이들에게 과거와 대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장인 박찬수 보유자. 오늘도 그는 조각칼을 손에 쥐고 아무 말도 없는 기다란 나무를 품에 안는다. 그렇게 나무의 숨결은 그의 손끝에서 다시 피어난다.   

글 / 황경순(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무형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사)

사진 / 최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