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짓기

교감이 일어나는 마법 같은 안뜰 - 김정희 선생 고택

이산저산구름 2011. 5. 31. 11:38

 

 

 

다시 찾은 옛집, 반가운 격조
생의 마지막 순간, 파노라마처럼 스치는 장면들 중에 꼭 다시 보게 될 것 같은 장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웅현 씨는 몇 해 전 이곳을 찾았던 날을 잊지 못한다. 다시 찾은 김정희선생고택은 나른한 봄기운 속에 아침녘에 들린 손님을 맞아들였다.


김정희선생고택(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3호)은 김정희묘(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88호)와 김정희가 연경에서 돌아올 때 가지고 와 심었다는 예산 용궁리 백송(천연기념물 제106호), 영조英祖의 딸이자 김정희의 증조모인 화순옹주和順翁主의 정절을 기리는 화순옹주 홍문(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5호)과 함께 일대에 유적지를 이루고 있다.

 

 

가지, 가지를 오가며 짹째굴 짹째굴 알은 체하는 새들의 지저귐에 눈으로 일일이 대꾸해주며 고택에 다가갔다. 명문가의 기품처럼 높은 돌계단을 오르니 바로 그 지점이 나타났다. 활짝 열린 사립문을 통과해 계단 위로 쏟아지던 노을빛, 그 풍경을 그려내는 그의 음성은 무척 고조되어 있었다. “죽음을 맞이할 때 가장 그리운 게 뭘까 생각해 보면 큰 돈을 벌었다거나, 좋은 차를 샀을 때는 아닐 것 같아요. 어느 날의 햇살, 바람, 향기 같은 것이겠죠. 아마 그날 추사고택에서 본 하늘은 분명히 떠오를 거예요.”

당시 그는 포토에세이집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개 1박 2일 일정으로 사진작가와 함께 다니며 에세이 한 편, 한 편을 만들어갔다.


서울에서 2시쯤 출발해 해질 무렵 한 군데 돌아보고, 저녁에 소주 한 잔 하고, 다음 날 한 곳 정도 더 들렀다 오는 식이었다. 그날의 목적지는 수덕사였다. 김정희선생고택은 수덕사 가는 길에 한 군데 더 들리자, 해서 찾은 곳이었다. 우연한 햇빛과의 교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카피라이터 박웅현은 공들인 언어로 그 황홀한 감정을 형언했다. 

 

추사의 생애와 정신을 추억하는 여행자
마당 가득한 매화향기 때문이었을까, 문턱을 넘어서자 몇 년 전의 추억, 혹은 더 오랜 과거로 빨려 들어가듯 어질했다. 잠들어 있던 시간을 깨우는 듯한  흙 밟는 소리가 정적 속에 울렸다. 그는 마당을 가로질러 안채에 다가가고 있었다.

 

동쪽 대문을 곧바로 향한 안채의 대청은 밤중처럼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박웅현 씨는 그 어둠 속에서 <완당세한도(국보 제180호)> 모작을 응시하고 있었다. 추사가 제주도에서 유배 중이던 1844년(헌종 10년) 제자인 우선 이상적의 지극한 의리를 소나무에 비유하여 그린 그림이다. 당쟁싸움에 휘말려 쫓겨난 처지, 추사는 춥고 벌레가 기어 다니는 방 안에서 추사체를 완성해 갔다. “「완당평전」을 재미있게 봤거든요. 그 이후로 추사에 대해 관심이 많이 생겼고, 그러다 보니 한번 와 보고 싶었던 거죠. 추사의 글씨가 좋다고들 하는데 책을 읽기 전에는 피카소 그림 같기도 하고, 왜 좋다는 건지 몰랐어요.” 이렇듯 알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추사의 삶과 사상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자 글씨에 담긴 미적 경지가 보이고 추사의 외로움이 헤아려 졌다. 그리고 <완당 세한도>는 정말 좋아하는 그림이 되었다.

한 채, 한 채 집의 둘레를 따라 걸으며 추사의 작품들을 감상하는 사이, 그는 사당에 도착했다. 추사의 초상이 모셔져있는 곳이었다. 사모관대를 차려입고 소맷자락 속에 두 손을 마주잡고 앉은 모습이었다. “시대와 화합을 못한 천재였죠. 그래서 인생이 불운했고요. 가장 행복한 건 자기 주관과 시대가 요구하는 바가 일치되는 것인데, 추사 선생의 생각은 시대보다 조금 앞서 있었던 것 같아요. 타협하기엔 주관이 너무 강했고요.” 박웅현 씨는 존경과 애정을 표하듯 초상을 바라봤다. 날렵한 눈썹과 입가에 지어진 미소에는 고고함과 절개가 배어있는 듯했다. 그는 위대하고도 험난했던 선각자의 생애를 기억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삶의 모드가 바뀌는 곳
집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당에서 돌아내려오는 길. 양편에 봄꽃들이 올망졸망 피어있었다. 이제 막 봉오리를 틘 모양이다. 언덕 아래 참나무도 서서히 싹이 돋고 있었다. “이 나뭇가지 보세요. 뭉뚝뭉뚝한 손톱처럼 나와 있는 거… 이런 걸 보고 있으면 갤러리에 갈 필요 없겠다 싶어요. 나이 들면 좋은 게 젊을 때 못 보던 작은 변화들을 볼 수 있게 돼요.” 세상에는 바쁘게 현대생활을 하면서 못 보는 것들, 천천히 봐야 보이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 박웅현 씨는 삶의 모드가 느려지는 것 같아 이따금씩 찾는 문화재가 좋다.


담장 너머로 마을을 바라보며 느릿느릿 다시 나온 안뜰에는 매화향이 진동했다. 그는 주저 없이 매화나무에 다가가 코끝을 꽃에 가지고 갔다. “정말 좋아요. 향수고 뭐고 없어요. 이 나무가 서울에 있다면 잘 못 느낄 거예요. 오감이 다 같이 바쁘면 감각이 나눠져 한 가지를 온전히 느낄 수 없게 되죠. 그래서 이렇게 평온한 마음으로 집중해야 해요. 혼자서 가만히 눈 감고 있다가 탁 맡는 향은 내가 느낄 수 있는 100의 후각으로 다 느끼는 거거든요.” 현대 삶의 모드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 시간의 속도가 느렸던 과거로 돌아가야만 이해할 수 있는 행복을 그는 김정희선생고택에서 마음껏 향유하고 있었다.


“광고도 마찬가지예요. 강렬한 카피와 현란한 비주얼과 음악을 동시에 던지면 결국 메시지는 전달되지 않아요. 한 가지에 집중하고 어딘가는 비워야 하죠. 그래야 소통이 이루어지거든요.” 박웅현 씨의 아이디어에서 탄생한 주옥같은 카피들은 공감이라는 힘을 갖고 있다. 사람, 자연, 사물, 그리고 역사도 공감의 대상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광고와 인문학, 광고와 문文·사史·철哲이 이어져 있다고 그는 말한다. 광고는 마케팅의 도구이지만 메시지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가슴속에 안착되려면 사람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온몸이 촉수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박웅현 씨. 그는 이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느끼고 싶다.


“이번 여행은 향기로 남을 거예요. 아마 3년 뒤, 5년 뒤에도 김정희선생고택에서의 매화향기가 두고두고 기억될 것 같아요.” 운명적인 사랑, 위대한 성취, 갑자기 일어난 행운… 사람들은 대단한   것을 기대한다. 박웅현 씨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실은 전부    이고, 그것이 인생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즐기며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다음번 이곳을 찾을 때는 또 무엇이 전부가 되어 잊지 못할 추억이 될지, 그는 벌써부터 기대하고 있다.  


글ㆍ성혜경   사진ㆍ최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