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짓기

우리의 삶을 담은 집, 치레무늬로 우주관을 형상화하다

이산저산구름 2011. 3. 2. 14:42

 

 

사람은 작은 우주이고 집은 사람을 닮는다
집은 머리인 지붕이 있고 얼굴인 몸통(기둥 부), 발굽인 뜰팡 (기단)의 세부분으로 크게 구분한다. 지붕은 머리처럼 명쾌하며 검다(백성을 검은머리라고 하는 것과 같다). 몸통은 얼굴처럼 들어가기도 하고나오기도 하며 뚫어지기도 하여 치레가 많다. 반면에 발굽(뜰팡)은 단순하고 깨끗하다. 이처럼 사람을 닮은 집은 우주의 질서에 맞게 격식에 따라야
하므로, 집의 격식에 따라 무늬가 아로새겨진 겉치레를 한다. 시집가는 날 성장한 여인은 겉치레가 요란하고, 살림하는 집안의 여인은 소박하다. 남자들도 안에 있을 때는 편안하게 무늬가 없는 옷을 입더라도 밖에 나들이를 할 때는 의관을 정제하고 갓을 쓴다. 집도 반드시 격에 맞춰 적당한 치레를 하고 치장을 해야 한다.

 

 

머리, 지붕의 치레무늬
지붕의 치레는 비교적 단순하면서도 상징적이다. 기와 지붕은 날아갈듯 긴장감이 도는 텐트의 곡을 모사한다. 너무 쳐져도 힘이 없어 보이고 너무 반듯하면 긴장감이 없어 보인다. 반대로 초가집(샛집)은 바가지를 엎어 논듯, 자연에 순응하여 뒷산을 닮는다. 날아갈듯 한 기와집의 용마루 끝은 소뿔처럼 귀를 쫑긋 세워 올린다.

 

 

암막새를 거꾸로 놓은 것인데 막새에는 도깨비 등의 문양을 새겨서 벽사(나쁜 기운을 물리침)의 기능을 갖도록 하였다. 궁궐이나 절의 정전의 용마루에는 용두, 취두 등의 장식기와를 올렸다. 고대에는 치미가 사용되었으나 조선시대에는 용두, 취두 등의 장식기와가 사용되었다. 집에 불이 자주 나다보니 바다를 다 삼킬 수 있는 용 혹은 신성한 새를 올려서, 불귀신은 범접하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를 두기도 한다. 또한 궁궐, 사찰 등 권위 건축에는 합각마루에 용두를 만들어 올렸는데, 부릅뜬 눈, 한 입에 삼킬 듯한 벌린 입이 벽사의 기능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궁실 건축에서 추녀마루 위에는 잡상을 세우는데, 맨 앞에는 서유기에 나오는 삼살보살(모든재앙을 막아주는 잡상)을 필두로 손행자 즉 손오공이 앉아 있고, 그 뒤를 사오정, 저팔계 등이 따르고 있다. 서유기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신출귀몰한 재주로 국가 사직을 지켜 달라는 기원이 담겨 있다. 처마 끝 기와에도 권위를 나타내는 건축물에서는 막새를 써서 장식한다. 여기에 쓰이는 무늬는 대단히 다양한데, 궁궐의 정전에서는 암막새에 용 문양을, 수막새에 봉황 문양을 새긴다. 용은 임금을 상징하므로 누구나 함부로 쓸 수는 없었으며 발톱이 4개냐 혹은 5개냐, 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느냐의 여부가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 정해졌다. 봉황은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많은 새들이 모이듯 성천자가 내려오는 것을상징 한다. 정전이 아닌 일반 궁궐 건물의 암막새에는 거미문양을 가장 많이 쓴다.

 

거미가 알을 슬듯 다산을 의미하고 있다. 수막새에는 목숨 수壽자 무늬를 많이 쓴다. 수복을 기원하는 뜻이다. 절에서는 당초문과 연화문을 많이 쓰는데 절의 상징으로서 연꽃이 흔히 쓰인다. 합각지붕의 합각에도 무늬를 집어넣는다. 대개는 단순한 기하학적 무늬지만 기와를 써서 꽃 그림을 새기기도 하고 동그란 돌 2개를 꽂아서 두 눈 뜨고 감시하는 벽사 기능의 도깨비를 상징하기도 한다.

 

 

굴, 몸통(축부)의 치레무늬
집의 몸통은 사람의 얼굴에 해당한다. 눈이 있고 코가 있으며 입이 있어 오목조목 화려하다. 기둥머리는 서까래와 만나는 장소로 긴장감이 돌며, 사람으로 치면 이마에 해당한다. 절집은 화려한 것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국화 꽃대에 꽃이 만발한 형상을 모사한다. 국화 꽃발이 사방으로 휘날리는 모습이다. 절에서는 연꽃을 새겨서 화려하게 장식한다. 이것이 처음에는 꽃 봉오리였는데 차츰 만개해 간다.

 

집에서 가장 다양하고 단순하면서도 장식을 많이 하는 부분이 창문이다. 창문은 집의 눈에 해당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기능이 다양할 뿐 아니라 집의 격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단순한 민가의 세살문에서부터 쓸용자 창, 완자무늬 창, 만자무늬 창, 우물정자살문, 솟을살문 등등의 기하학적 무늬가 있는가 하면, 꽃살문의 경우에도 여러 가지가 있으며 모두 복이 들어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절의 기하학적 무늬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이라는 화엄의 원리를 표현하기도 한다.

예전에 민가를 장식하고 이웃집의 불이 달라붙는 것을 막기위해, 문간채 창 아래 징두리(벽)는 화방벽으로 마감한다. 이것은 시골의 경우 자연석을 이용하여 범무늬로 하지만 서울에서는 아래쪽을 사괴석으로 견고하게 쌓고 위쪽은 벽돌을 이용해서 점무늬를 만들며 긴네모의 꽃띠를 두른다. 어떤경우에는 뇌문 완자무늬를 새기기도 한다. 범무늬는 아름
답기도 하지만 맹금의 힘을 빌려 나쁜 기운을 막겠다는 것이고 완자무늬는 끝이 없는 장수를 상징한다.

 


발굽, 뜰팡의 치레
집의 발굽은 간단하고 든든한 것이 기준이지만 가끔 장식을 하기도 한다. 그 가운데 기둥 발(초석)은 자주 장식을 하기도 한다. 절에서는 대체로 연화좌를 쓴다. 우리나라 집은 기둥 하부가 고정되지 않는 구조방식이므로 집이 바람에 움직이지 않도록 덤벙(자연석)주초를 썼는데, 사람은 자연에서 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임을 상기시키는 숨은 장치로 보인다. 집의 발굽인 기단(뜰팡)은 단순 명료하다. 무소유의철학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담장, 굴뚝 등의 무늬
우리나라 집은 담장이 없으면 공간에 힘이 없다. 담장 안의 공간도 자연과 소통하는 집안 공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담장의 무늬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민가의 범무늬가 가장 많은 듯하지만 돌을 눕히기도 하고 빗세우기도 해서 여러 가지 무늬를 만들기도 한다. 특별한 상징은 없는 듯 싶지만 눕힌 무늬는 평화를, 빗세운 문양은 속도를, 범무늬는 맹수를 의미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집에서 가장 신경을 쓰고 잘 꾸미는 대상이 굴뚝이다. 굴뚝을 집에 붙여 세우면 불이 날 가능성이 많아서 반드시 집에서 떨어뜨려 세우는데 그것의 형태가 오브제(목표)가 되어, 무늬를 넣어 아름답게 장식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경복궁의 굴뚝인데 대개는 장수와 복을 비는 길상문으로 채워졌다.


건축 치레무늬의 특징
집을 치레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개는 단순한 장식적인 기능뿐만이 아니고 구조적 기능까지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 재료를 사용해서 상징성을 표현해야 하고, 조각적 요소가 많기 때문에 단청 그림처럼 평면적으로 치레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특히 지붕에 놓이는 여러 벽사 무늬들은 모두 조각품이며, 막새기와에 새겨진 무늬도 양각으로 두드러진다. 또한 자연에 순응하는 것을 이상으로 생각했으므로, 꾸미는 것을
경멸했으며 대단히 절제된 기하학적이고 상징적인 무늬를 선택하게 되었다. 

글 | 사진·김홍식 명지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재)한울문화재 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