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공간을 만드는 흙
과연 우리 조상들은 흙을 어떻게 사용했을까? 그리고 흙의 효과는 어떠했을까? 조상들은 흙을 여러 분야에서 사용하였는데, 그 가운데 가장 효과적이고 집약적으로 사용한 데가 집이다. 한옥은 재료적으로 볼 때 나무가 구조내력적인 측면을 담당하여 외력에 저항하고 집의 형태를 잡아주고 있다. 흙이 지붕이나 벽체, 바닥에 사용되어 주거환경의 요구조건을 담당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나무는 구조를, 흙은 기능을 담당하는 방식으로 한옥의 특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지붕에 쓰인 흙은 단열과 축열을 담당하고, 벽체에 쓰인 흙은 습도조절, 탈취성능 등을 발휘하여 쾌적하고 건강한 주거공간을 만들어주고 있으며, 바닥에 쓰인 흙은 구들과 조합되어 열복사를 통한 난방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기초에서는 자갈, 돌과 같이 배합하여 다짐으로써 견고하고 친환경적인 기초를 구축하고 있다. 필자는 황토·시멘트 모형집에 실험용 생쥐를 넣고 성장 실험을 한 적이 있다. 황토 모형집의 쥐는 암수 모두 평균 55%이상 성장한 반면, 시멘트 모형집에서는 몸무게가 증가하지 않다가 암컷은 100% 수컷은 20%가 폐사하였다. 또한 황토와 시멘트 모형집 사이에 교통로를 만들어 실험용 생쥐가 어디에 위치하는가를 측정하였는데, 황토의 선호도가 72%로 시멘트 선호도 28%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황토는 또한 습도조절 능력이 우수하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현대건물은 자체적인 습도조절 능력을 가지지 못하므로 에어 컨디셔닝 장치에 의해서만 조절이 가능하다. 황토는 외부가 습하면 수분을 흡수하였다가 외부가 건조해지면 수분을 방출하는 특성이 있는데, 시멘트에 비하여 수분을 흡수하였다가 방출하는 능력이 3~4배에 달한다. 또, 황토가 좋은 점으로 탈취성능을 들 수가 있다. 황토의 탈취율은 98%로써 시멘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탈취력으로 실내공간의 악취 등을 없애주어 쾌적한 실내 환경을 창출할 수 있다.
내재에너지(embeded energy)가 아주 적고, 사용시에도 다른 재료에 비해 에너지 소비를 10%씩이나 줄일 수 있는 재료라서 에너지 효율이 높은 재료인 것이다. 또한 황토는 공명흡수작용에 의해 물질의 분자운동을 유발하여 신진대사를 촉진시키기도 하는데, 온열효과에 의해 모세혈관운동을 강화하여 혈액순환을 촉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황토의 약리작용에 대하여 여러 가지 뛰어난 효과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황토가 원적외선을 많이 방사하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한옥에 기초를 둔 미래의 집짓기
전통적으로 한옥의 기초는 집터 다지기에서 출발하는데, 집을 지을 곳의 흙 상태에 따라서 사질지반인 경우에 있는 흙을 그대로 다지거나 물 다짐하여 사용하고, 점토질 지반에서는 강회를 뿌려서 다진다. 이러한 한옥기초방식인 판축기법을 이용하여 흙의 입자분포나 강회의 적정투입비율을 계량화하여 표준화한다면 자연친화적이면서도 콘크리트 기초에 버금가는 강력한 기초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다른 재료를 쓰지 않고 자갈, 모래, 흙을 물과 함께 쓴 물다짐이라는 친환경 도로포장을 상용화 시키고 있다. 또한 한옥에서 벽체는 외를 엮어 흙벽을 치는 것이 일반적인데 흙벽은 외를 엮고 흙에 짚을 넣음으로써, 횡력에 약한 흙의 단점을 보완하고, 벽체의 자중을 감소시키며 단열성을 증대시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전통적인 흙미장재를 아파트 등 현대주거에서도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맥질이라고 하는 전통기법을 이용하면 화학 페인트 대신 흙페인트로 보급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아울러 흙패널이나 흙벽돌도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저가인 벽돌을 개발하여 보급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붕에 흙이 사용된 것은 태양의 강한 열을 차단하여 집을 쾌적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흙이 단열이나 축열의 기능을 담당해온 것인데, 이러한 흙의 기능을 살려서 지붕이나 옥상에 흙을 이용한 새로운 기법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현재 시도되고 있는 옥상녹화 기법 등 새로운 건물환경에 맞추는 고민을 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전통적으로 바닥은 온돌을 놓고 흙을 바른 후에, 여유가 없는 집에서는 흙바닥 위에 돗자리를 깔고 지내고, 여유가 있는 집은 종이마감에 콩댐을 하여 지냈으며, 이 이외에 흙콩댐, 은행잎마감, 솔방울마감, 솔가루마감, 마마감 등의 기법을 이용하여 바닥마감을 하였다. 현재 장판이나 온돌마루는 건강이나 환경면에서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러한 기법의 원리를 살려서, 콩댐이나 아마인유의 원리를 이용하면 친환경 마감도료, 친환경 발수제, 친환경 방수제 등 현대적인 친환경 재료가 가능하리라고 보인다. 조상들이 사용했던 흙과 관련한 기법이나 원리들을 오늘날 잘 활용한다면 우리가 처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의외로 쉽게 풀 수도 있을는지 모른다. 죽어가는 지구를 살려내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을 살려내고, 사람들 간의 관계를 살려내는 실마리가 이 흙 속에 있다고 본다. 온고지신, 법고창신의 자세로 우리 조상들의 지혜에 귀 기울이면 새로운 미래를 여는 열쇠가 우리 손에 쥐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앞을 가로막는 육중한 문을 여는 것은 커다란 힘이 아니라 작은 열쇠일 테니 말이다.
* 참고문헌
1. 황혜주, 흙건축, 도서출판 CIR, 2008.3
2. 박성형, 벽전, 스페이스타임, 2010.6
3. 신영훈, 한옥의 고향, 2004.8
4. Gernot Minke, Earth Construction Handbook, Wit Press, 2000
5. Hugo Houben and Hubert Guillaud, Eaerth Construction, ITDG Publishing, 2001
글·사진 | 황혜주 국립목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사진제공·연합콘텐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