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그런다. 집 한 채 지으려면 10년은 늙는다고. 천등산 자락에 아담한 전원주택 하나 짓겠다고 첫 삽을 뜬 게 지난 12월12일(이날과는 무슨 연이 있나 보다. 인위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 건축업자가 이날이 무슨 날인지도 모르고 첫 삽을 떴다. 하지만 3년 전 아들놈의 결혼식도 이날 치렀다. 결혼 후 나중에“왜 하필 그날을 택했냐?”고 아들놈에게 묻자 기억하기 좋으라고 그랬다는 것이다. 그 놈의 결혼기념일 빠트리면 뭔 일이 나나?? 쩝....)이다. 그러나 한 번도 건축업자와 다툼이 없었다.


한양의 봄은 하루 사이에 모란을 더 피워 냈다. 어제 얼핏 블로그에서'모란과 작약'이 구분 되지 않는다는 글을 보았다.모란과 작약은 확연히 다르다. 아래 것이 작약인데..잎의 모양도 다르려니와 작약 잎은 반질반질 윤기가 난다.
첫째, 3월 말이면 틀림없이 입주 시켜드리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처음부터 믿지 않았다. 북풍한설 몰아치는 엄동지절이었기에 우선 기후적으로 조건이 맞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최소한 1-2달은 늦을 것을 미리 마음먹고 있었기에 오히려 건축업자 보다 내가 느긋했다.

감나무도 잎을 싹 틔우고.....
둘째, 내가 나를 생각해도 아는 게 너무 없다. 보따리장사 하는 방법밖에는. 벽에 못 하나 박고 전구 하나 가는 것도 버거워 하는 놈이라 건축에‘건’자도 모르는 건 당연하다. 결국 아는 게 없으니 건축업자와 부닥칠 일이 없다. 그저 건축업자‘고 사장’이 하자는 대로 했다. 오히려 가끔씩 마누라가 공사현장을 오르내리며 이리저리 주문을 했고, 고 사장이 난감(?)한 부분에 내게‘어찌할까요?’를 물어오면‘마누라에게 물어서 하라’고 일임을 해 버렸다.

앵두나무엔 깨알 같이 많은 앵두가 열렸다.
셋째, 어떤 일을 도모함에 있어 그기에 수반되는 경비 즉 건축비가 계약한 금액으로 끝나리라는 생각을 아예 접고 10-20%정도 더 들 것이라고 계상을 해 두었기에 추가 금액에 대한 부담이 없어, 고 사장의 합리적(솔직히 그게 합리적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제안에 모두 응해 주었기 때문에 또한 부닥칠 일이 없고 속 상 할 일이 없었다.

언제나 가장 늦게 싹을 틔우는 대추나무도 새싹이 올라 온다.
동네를 오가며 마주치는 사람마다‘아유! 집 짓느라 속 많이 상하지요?’가 인사지만 한결같은 나의 대답은“뭘요!”였다. 사실이 그랬다.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기왕 짓기로 했으면 느긋하게 기다리면 될 것을 고주알 메주알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참견을 하려드니 건축업자와 불협화음이 들리고 속상해 하고 10년은 늙었네 젊었네 하는 것이다.

살구와 매실도 금년엔 꽤 많이 열리려나 보다.
어쨌든 겨우내 공사를 해 왔던 전원주택의 준공필증이 지난주 25일 허가 났다. 그런데 내가 너무 잔소리(?)를 하지 않아서일까? 아무리 묘안을 짜내도 안방에 장롱 들어갈 자리가 없다. 지을 때부터 좀 작다는 느낌을 가졌지만 이미 철골이 다 올라가고 조적을 하는 상태에서 무슨 방법이 있겠지 했던 게 결국 이런 일이 벌어지고만 것이다.

어제 한양의 봄은 청명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살피지 않은 나의 잘못이 큰 것을 가지고 언성 높일 일은 아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택해야지. 경비가 만만치 않지만(계약한 건축비10-20% 보다 훨씬 더 들지만...)한 쪽 벽을 헐고 덧(증축)대기로 했다. 단, 5월20까지 입주 시켜주겠다는 철석같은 약속과 만약 하루 늦을 때마다 백만 원씩 공제 한다는 반농반진의 약속을 하고. 하긴 이 약속도 지켜질지 의문이고 이미 마음속으로 열흘이나 보름 정도 더...라는 계산을 하고 있다.

북한산 위로 걸려 있는 구름을 보노라니 여름 아니 초가을 같은 풍경이다.
가끔 마누라는 나의 이런 태도가 불만인가 보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성질이 불같아 파르르 떨면서 이런 대목에선 어찌 저리도 천연하고 느긋한지...라며. 뭘 몰라도 한참 모른다. 험악한 세상 오래 사는 방법은... 성질 낼 거와 안 낼 거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마누라는 모르고 있다. 어쨌든 기왕 끝까지 믿고 제 말 다 들어준 건축업자 고 사장이 이번만큼은 약속을 지켜 주기를 바랄 뿐이다. 나의 인내가 한계점에 다 달았으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