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의 역사와 문화(15)
금강산의 해금강
해금강구역의 해금강은 삼일포에서 동해로 약 4km되는 곳에 위치한 해금강리앞 수원단으로부터 시작하여 남강하구의 대봉섬을 거쳐 화진포에 이르는 사이의 바다명승을 포괄한다.
해금강은 말그대로 바다의 금강이요, 금강의 바다풍경이다. 천태만상의 기암괴석이 그대로 바다속에 옮겨앉아 봉우리의 미에 전설의 미를 다 지니고있거니와 저만이 가지고있는 창해의 미까지 자랑하니 사람들이 《해금강을 보지 않고서는 금강의 미를 알지 못한다.》고 하는 말은 참으로 옳다.
해금강의 해돋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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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트기를 기다렸다가 백사장에 나서면 맑은 아침공기가 시원한 해풍을 타고와 온몸에 배여든다. 이윽고 수평선이 밝아지면서 하늘과 바다, 구름과 섬들이 온통 붉게 물들여지며 커다란 불덩어리가 이글이글 타면서 서서히 솟아오른다. 이땅에 새날의 도래를 알리는 장엄한 신호이런가, 사람도 세계도 붉게붉게 상기되면서 약동하는 새 아침을 맞는다. 바야흐로 투쟁과 창조의 새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부풀어오르는 가슴, 격동하는 심정에 휩싸여 서있는데 어느덧 살짝 얼굴을 내밀었던가싶던 아침해는 수평선우에 덩실 솟아올라 아름다운 금수강산, 살기 좋은 내나라 온천지에 금빛을 뿌린다. 참으로 해금강의 해돋이는 장쾌하고 숭엄하다. 누구나 다 해금강의 해돋이를 보면 조국의 아름다움을 더더욱 생동하게 느끼게된다.
해만물상
해금강탐승은 내, 외금강처럼 험산준령을 넘을 필요도 없고 집채같은 계곡의 바위에 기여오를 수고도 던다. 거뜬한 몸차림으로 동해물에 발을 적시며 파도의 물안개 감도는 기슭을따라 걷는 것을 벗고 물안데 들어선다. 그러나 해금강의 오묘한 자연미를 맛보려면 작은 배를 이리저리 저어가며 바다에서 들여다보는 것이 좋다.
수원단 남쪽에 해만불상의 절경이 펼쳐져있다. 해만물상이란 바아에 솟은 만물의 형상을 가진 기암괴석의 미를 일러 하는 말이다. 푸fms 소나무와 기묘한 바위는 내, 외금강에도 있거니와 백사, 창파는 오직 해금강만이 가진 자랑이다. 해금강의 만물상은 그 기이한 자태를 바닷물에 비껴주어 더욱 곱고 백사에 청송, 기암에 창파가 한데 어둘리니 그 경개 또한 절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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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강의 《금강문》은 더욱 장쾌한 풍치를 나타내고 있다. 절벽으로 된 바다가에 크고작은 두 바위기둥이 마주섰는데 그것이 마치 열려진 문처럼 생겼다하여 《해금강문》이라고 부른다. 바른쪽바위는 크고 넙직하며 그 말기에 소나물들이 울창하게 자라나 작은 산을 방불케한다. 평시에는 륙지와 자갈밭으로 련결되여있고 문 안쪽 움푹한곳의 바닷물은 소같이 푸르고 고요하며 수정같이 맑고맑다. 그러나 일단 바다가 노호하면 산같은 파도가 밀려들어 금강문일대의 풍경은 삽시간에 달라진다. 쉼없이 밀려든 파도는 금강문기둥에 부딪쳐서는 갈기갈기 찢기고 흰 거품을 일쿠며 하늘로 치달아오른다. 쏴! 하는 순간 수천수만개의 진주알이 뿌려졌다가는 물안개로 되어 사라지며 푸른 물결은 바위를 휘감으며 맴돈다.
사람들이 해금강을 세 금강의 조화된곳으로 치며 산 금강으로, 금강산중에서도 으뜸가는 금강으로 보는 참뜻을 여기에 와서야 비로소 느낄수 있다. 해금강문은 밀려드는 파도와 함게 들어서면 금강산초입으로 되고 나서면 해금강의 문턱으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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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문 작은 기둥곁에는 또 《동자바위》와 《서적바위》가 있다. 정말 책읽던 어린이가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것 같고 그가 읽던 책인지 넓적넙적하게 쌓여있는 바위는 진짜 책을 쌓아놓은듯도 하다.
《상좌바위》, 《로승바위》, 《라한바위》, 《천왕바위》등은 모두 륙지의 만물상의 본을 따 어느 호기심많은 중이 부처의 세계를 바다에 옮겨놓고싶어지은 이름일 것이다. 그 모양 또한 사람같기도하고 부처같기도 하다.
금강문을 지나 훤히 트인 바다로 나서면 《수렴도》, 《얼굴바위》, 《지렁이바위》, 《부부암》, 《잉어바위》, 《사자바위》등 기묘한 바위들과 아름답고 장쾌한 풍경이 련이어 손저어부른다.
파도쳐 끼얹는 물이 마치 발처럼 바위우로 흘러쏟아진다 하여 《수렴도》라 하며 잉어가 금시라도 뛰여오를 것 같다 하여 《잉어바위》요, 두 개의 바위가 밤이 되면 서로 기대여선다 하여 《부부암》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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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이름지은 《사자바위》는 금시 살아서 덮칠상싶다. 힘있게 쳐든 두 앞발과 쩍 벌린 잎, 바람에 휘날리는 갈기, 그것은 흡사 노호하는 사자의 모습 그대로이다. 바다를 지켜선 이 나라의 수호신이라고 할까, 사람들은 그 도도한 기상과 그 용맹이 겨룰데 없어 보이는 사자바위를 향해 이 땅을 노리는 무리들을 바다속에 쳐넣으라고 이른다. 이렇듯 사나운 비바람에 씻기고 거치른 파도에 다듬어져 천만가지 모양을 이룬 해만물상의 경치는 참으로 상쾌한 기분을 준다.
물속의 만물상
해금강의 만물상은 물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다밑에도 또한 다른 형의 만물상이 펼쳐져있다. 바다는 수정같이 맑고 잔잔한 물결은 해빛을 반사하며 알른거리는데 어찌 이다지도 아름다운것인지, 물밑을 들여다보면 거기 또한 별천지이다. 물밑에도 크고작은 봉우리들이 울룩불룩 솟아올라 낮은 언덕, 깊은 골짜기를 이루고 수많은 기암괴석들이 갖가지 물형을 다 나타내고 있다. 그야말로 거울속에 있는 한폭으리 그림같다.
그러나 해저만물상의 특징은 움직인다는데 있을 것이다. 다시마와 미역 등 해조류들이 바람에 설레이는 수풀같이 이리휘청 저리휘청 춤을 추는데 그사이로 갖가지 고기떼들이 금비늘, 은비늘을 반짝이며 천천히 미끄러져간다. 이 모든 것이 수족관에서 물속을 들여다보듯 환히 보인다.
수족관에 없는 것이 없듯이 해금강바다에도 진귀한 수족은 다 있다. 어류로는 물개, 고래새끼를 비롯하여 도미, 참치, 송어, 고등어, 멸치, 정어리, 열갱이, 놀래기, 장치 등이 있고 주먹만큼 큰 섬과 전복, 해삼, 성게, 문어 등이 수없이 많다. 수산자원보호구역이어서 그런지 이것들은 유람객과 아주 친숙하다. 배를 저으면 큰 고기떼들이 무리지어 따라오고 얕은 물에 발을 잠그면 작은 고기들이 발가락짬에 기여들어오며 물속에 손을 넣어 잡아도 달아나지 않는다. 이런 세계에 몸을 맡기면 어른들도 동심세계에로 들어가 《야! 야!》소리치며 천진란만하게 뛰여다니게 되며 물속의 만물상에 정신이 팔려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 참으로 해금강은 늙은디도 젊게 하는 별천지라 할까! 조국산천의 아름다움은 이를데 없고 끝이 없다.
립석과 솔섬
해만물상을 벗어나면서 절벽에 《해금강》이라고 크게 새긴 세글자를 읽을수 있다. 남에서 북쪽으로 탐승길을 잡으면 해만물상은 여기로부터 시작되며 해금강문에서 내려오면 여기가 그 종점으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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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석은 그 생김새도 곱거니와 허리에 절정에 몇그루의 로송이 싱싱하게 자라고있어 그 자태 또한 아담하다. 누구인지 립석을 해금강의 초병으로 비기였는데 실로 그것은 사람들이 칭찬과 경탄에는 귀도 귀울이지 않으며 말없이 눈도 팔지 않고 초소를 지켜선 동해의 믿음직한 초병인가 싶다.
몽천과 금강문
립석을 지나 해안을 좀 떨어져나가면 높이 약 50m가량 되는 큰 바위섬이 있다. 섬천제가 온통 바위로 되었는데 소나무가 우거져 해금강의 풍치를 돋구어 근래에 《솔섬》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흙이라고는 거의 찾아볼수 없는 층층기암에 어찌하여 저 푸르싱싱한 소나무들이 뿌리박게 되었을까? 영양분은 어떻게 받으며 물기는 어디서 빨아올려 저렇든 아지를 펼치며 우줄우줄 춤을 추는것일까?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누구나 다 의례히 이런 물음을 안은채 비길데 없이 아름다운 솔섬의 경치에 황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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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섬의 황홀경에서 깨여나 앞을 내다보면 곧 사람모양을 한 큰 바위가 유표하게 서있는 것을 발견할수 있다. 이것이 바로 민간전설에서 사공이 53불을 바다속에 처넣고 이곳에 귀양왔다고 하는 《사공바위》이다.
사공바위에서 남쪽으로 더 가면 《칠성바위(칠성봉)》에 이른다. 옛날에는 칠성바위를 《립석》이라고 불렀으나 후세에 7개의 돌이 북두칠성모양으로 바다에 뿌려져있다 하여 사공바위를 비롯한 그 주변의 7개의 돌섬들을 통털어 《칠성봉》으로 그 이름을 고쳤다. 17세기에 한 시인은 옛날 은하계에서 서광이 비끼더니 이윽고 그에 놀랜 북두칠성이 하늘에서 떨어져내려 바다속에 완연히 앉은 것이 바로 칠성봉이라고 하였다.
이 섬들은 삼일포의 련화대에서나 구읍 해산정터에서 눈이 덮인 섬퍼럼 하얗게 보이는데 해빛에 반사되여 은빛을 뿌린다. 이 때문에 옛사람들은 칠성봉을 《설암》이라고도 묘사하였다.
칠성바위에서 배머리를 돌려 강기슭으로 나오면 남강하류에 닿는다. 마주 다가서는 봉우리가 바로 소나무 울창한 《대봉도》인데 이것은 큰 봉우리로 된 섬이라는 뜻이다. 섬은 남강하류의 삼각주 바다기슭에 자리잡고있어 앞은 망망대해요, 세면은 민물이 조용히 섬을 씻어흐르는 남강이다.
대봉의 경치 역시 절승이다. 해풍에 흥겨워 춤을 추는 락락장송들이 봉우리를 덮었고 봉마루에 올라서면 지나온 북쪽 해금강일대가 또렷이 안겨와 감개 또한 무량하다.
이렇듯 해금강문으로부터 칠성바위에 이르기까지의 바다에는 말그대로 바다의 금강만이 가질 수 있는 특유한 절경이 펼쳐져있어 금강산의 자랑을 높여주고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 돋구어주고 있다.
영랑호와 현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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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호를 찾으려면 적벽강에 놓인 다리를 건너 남쪽으로 약 4km 가야한다. 그곳에 가면 북동쪽만 약간 틔여있을뿐 빙 둘러 나직한 야산들이 있는 한복판에 호수 하나가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영랑호인데 옛날 영랑이라고 하는 《신선》이 놀고간곳이라하여 그런 이름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한다.
남쪽에는 구선봉이 솟아있고 북쪽으로는 마람이봉이 우중충 서있는데 구선봉에서 한 지맥이 호수 가운데로 절반가량 주먹을 쥔 팔뚝처럼 내밀어 호수를 동서로 반달모양이 되게 갈라놓고 있다. 예로부터 두 팔처럼 벌려있는 야산을 날개에 비유하고 들머리를 추켜든 마람이봉의 곁가지를 머리와 몸체에 비기면서 그 산세를 《기러기가 물에 내려앉는 형국》이라고들 하였다.
호수의 둘레는 10리정도되는데 휘여든 반달모양의 기슭에는 흰모래가 곱게 깔려있다. 백사장은 동쪽바다가로 펼쳐져있으며 그우에 고루 자란 소나무들이 그쯘하게 서있어 호수경치와 좋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호수의 동쪽기슭에는 또한 벌레먹은듯한 큰 바위가 바다를 덮고있는데 여기가 이른바 53불이 유점사로 가는 길에 와서 머물었다고 전하는 옛 안창포이다. 그리고 동쪽 나지막한 흙산봉우리 가운데 《단암》, 《단혈》이라는 바위가 있다. 모두 바위색이 붉은빛을 내는데서 유래된 이름인데 《단혈》은 뚫어진 구멍안에서 붉은빛이 도는 것이 신기롭다. 한 옛날 네 신선이 여기서 놀았다는 전설이 있다.
영랑호에서 바다가로 300m가량 가면 작은 언덕진 산마루에 높이 5~6m, 통이 4~5m 되는 큰 바위기둥이 서있다. 중들은 바위의 이 생김새를 리용하여 월지국에서 온 53부처들이 여기에 종을 걸어놓고 저들의 도착을 알리는 종소리를 울리였다는 전설을 꾸며냈으며 이 선바위를 《현종암》이라고 불렀다.
바위의 앞면에는 《남무아비타불》, 바위꼭대기에는 큰 글자로 《현종암》이라고 새긴 것이 있다. 예전에는 길옆에 나서서 보면 글자획이 희게 보이고 은빛색을 냈고 먼데서 보아도 세자가 똑똑히 보였다고 한다.
배바위와 옥교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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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바위의 원래 이름은 《복선암》이였다. 배를 타고 남에서 북쪽으로 버면 엎어놓은 배비슷한데 그것이 전설에 나오는 53부처를 싣고 온 돌배라고 한다. 전설에 사공들이 53부처를 바다속에 처넣기 위하여 뒤집어엎었다는 배가 바로 이 《배바위》이며 그옆에 있는 바위가 《사공바위》이다.
사공바위는 사람이 량쪽 돌기둥에 끼여있는 형상을 하고있어 해만물상의 사공바위와는 모양이 다르다. 이 사공바위는 부처의 명령으로 벌을 받게 되어 그렇게 서있다는 것이다. 배바위와 현종암에 잇닿아있기 때문에 꾸며낸 전설일 것이다. 현종암이 있는 산에서 장석, 석영맥이 넓은 쪽으로 쭉 뻗어 배바위에 가닿았는데 그것이 마치 흰 바줄로 배를 비끌어매놓은 것 같이 보인다.
또한 현종암남쪽에서 하얀 모래밭을 한참 밟아가면 배바위를 향해 줄지어선 은백색의 바위들을 볼수 있다. 이것이 《진선대》와 《옥교암》이다.
옥교암은 그 색이 옥같이 희고 마치도 배바위쪽으로 징검다리를 놓은듯하다 하여 《구슬다리》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바위사이의 간격은 사람이 건널수 있는 정도이고 큰 바위에는 어른이 10여명 앉을수 있다. 그 바위가 하도 고와서 옛날 릉왕이 영랑을 만나러 이 《다리》를 건너왔다는 전설까지 생겼다.
구선봉과 감호
영랑호남쪽으로 가면 마치 회상대에서 창끝같이 놓이 솟은 구룡동의 명산들을 만난 듯 눈앞에 우뚝 서있는 구선봉(187m)의 꿋꿋한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 높은 산이 아니지만 기괴한 바위들이 칼날이나 톱이처럼 날카롭게 늘어서있어 류달리 높아보이며 숭엄한 감정을 자아낸다. 해풍이 구름을 몰아오면 온 산이 시커멓게 보이다가도 구름새로 해마루에서 바둑을 두었다하여 《구선봉》이라고 불리지만 아마 산의 이 신비로운 경치를 돋구기 위하여 신선의 이름을 빌어왔을 것이다.
하긴 산정에 오르면 우산같이 그늘은 던져주고있는 로송옆에 있는 바위에 누군가가 《바둑판》을 새겨놓은 것이 있다. 이것이 바로 그 《신선》들이 놀고갔다는 자리이다.
골짜기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양사언이 보고 자기류의 서예법을 알게 되었다는 《새끼룡》모양을 한 《천서암》이 있고 그옆에는 《신선굴》이 있다. 봉래의 글씨채가 《룡》처럼 구불구불하면서 힘있게 보이기 때문에 《새끼룡》모양을 한 이 바위를 하늘이 글씨체를 가르쳐주었다는 뜻에서 천서암이라는 이름이 붙고 이런 전설이 퍼졌을 것이다.
이 《천서암》을 지나 내려서면 곧 감호에 이른다. 감호는 고성군 구읍리로부터 남쪽으로 6km 남짓되는 지점에 있다.
이 호수의 둘레는 약 3km이지만 호수가 거의 원형으로 되어있어서 영랑호보다 더 넓다. 큰 호수치고는 물이 깊지 않아 얕은데는 무릅을 거두고 건너갈수 있다. 동쪽으로 긴 모래둑을 사이에 두고 동해와 린접했으며 주위에 푸른 소나무들이 우거지고 꽃들이 만발하여 말그대로 펴놓은 비단필이며 백사청송의 절승경개이다. 하기에 옛날사람들을 감호를 관동의 이름난 세 호수(동정호, 시중호, 삼일포)와 겨루어보기도 했으며 금강산에서도 외진곳에 고요하고 아늑하게 자리잡고있다하여 덕있고 얌전한 처녀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감호에는 《비래정》터가 있다. 비래정은 양사언이 살던 집 이름이다. 그는 관동의 여러 명승지들을 유람하고나서 1564년부터 여기에다 집을 짓고 살았는데 감호가 이름나기는 이때부터라고 한다. 그러나 임진조국전쟁때 왜적들이 불을 질러 태워버린후에는 빈터만 남과 비래정 전설만이 오래오래 옛말로 전해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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