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금강산의 삼일포

이산저산구름 2011. 2. 2. 15:39



 

금강산의 역사와 문화(14)

금강산의 삼일포


 

삼일포는 온정리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가는 자동차길로 12km되는 지점에 있다. 삼일포는 예로부터 <관동8경>의 하나로 이름났고 호수풍경으로서는 전국적으로도 으뜸가는 곳으로 일러왔다.


 

북쪽과 서쪽에는 멀리 외금강의 뭇봉우리들이 에워싸고있으며 가까이에는 국지봉과 그로부터 뻗어내린 여러 작은 봉우리들이 둘러섰다. 남쪽과 동쪽으로는 월비산과 351고지, 구선봉이 내다보이고 그 앞에 적벽산, 룡산, 차산과 해금강의 뒤산들이 있다. 그리하여 예로부터 36개의 크고작은 봉우리들이 삼일포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잔잔한 호수에 그림자를 던지고있다고 말하여왔다. 호수는 동서보다 남북이 더 길레 뻗었는데 호수가는 들숭날숭 굴곡이 매우 심하다. 가운데는 소나무 우거진 와우섬과 몇 개의 큰 바위들로 이루어진 작은 <섬>들이 있다.


 

삼일포는 호수가 맑고 고요하여 옛날사람들은 마치 하늘의 선녀가 내려뜨린 거울과 같다고들 하였다. 삼일포의 경치는 금강산의 수려한 모습에 온화하고 아늑한 맛을 주는 호수의 풍경이 잘 조화되여 어느모로 보나 한폭의 풍경화와 같이 아름답다.


 

장군대와 충성각


 

▲ 삼일포 절경1
삼일포 입구에서 오른쪽 계단을 밟아 큰 바위대우에 오르면 삼일포의 전경이 한눈에 굽어보이는 좋은 전망대에 이른다. 이것이 장군대이며 여기에 새로 일떠선 각을 충성각이라고 한다.


 

충성각은 소나무숲속에 가로 겹쌓여 누워있는 바위등성이에 서있어 <명경>과 같다는 호수의 주위환경에 잘 어울린다. 전통적인 루정형식을 살리면서도 현대적미감에 맞게 네모반듯하게 지은 이 하얀 콩크리트 정각은 보기에도 산듯하고 아담하며 얇은 판자형 지붕을 네모난 기둥들이 삽분하게 떠받들어 경쾌한 감을 준다.


 

충성각에서 삼일포를 굽어보면 호수의 아름다운 전경이 한눈에 안겨온다.


 

돌계단을 밟으며 충성각을 내려서면 봉래대와 잇닿은 허궁다리에 올라선다. 길이 56m나 되는 이 허궁다리는 금강산에서 제일 긴 줄다리의 하나로 손꼽힌다. 기우뚱거리는 몸을 바로잡아 밑을 굽어보면 푸른 물이 소같이 곱고 량켠의 장군대와 봉래대의 호수기슭에는 금강산에서 제일먼저 봄을 알린다는 진달래가 활짝 피여 흰 바위우에 분홍색 꽃방석을 깔아놓은듯하다.


 

봉래대와 련화대


 

▲ 삼일포 절경2
봉래대는 장군대와 련화대의 사이에 반도처럼 호수가로 나앉은 바위산으로서 호수의 전경을 한눈에 바라볼수 있는 좋은 전망대의 하나이다. 16세기의 이름난 시인이며 명필인 양사언(호 봉래)이 이곳에 와 공부하였다고 하여 후세사람들이 <봉래대>라고 불렀다.


 

봉래대는 아래로 밋밋히 내려깔린 넙직한 반석으로 되어있는데 그우에 100여명의 유람객들이 함께 서서 력사의 추억을 더듬으며 삼일포의 절승을 굽어볼수 있다.


 

봉래대 아래에 양사언이 호수의 절경을 바라보면서 글공부를 하였다는 굴이 있는데 이것이 <봉래굴>이다. 굴은 경사진 암반우에 <ㄱ>자형의 큰 바위가 얹혀서 이루어진것인데 깊지 않다. 봉래굴을 이룬 바위벽에는 양봉래가 썼다고 전하는 초서로 활달하게 갈겨쓴 한수의 7언시가 새겨져있다.


 

▲ 삼일포 절경3
봉래대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산허리에 흰 구름 휘감고 창공높이 아아하게 솟아있는 금강산의 1만2천 봉우리들과 거울처럼 반짝이는 삼일포의 잔잔한 호수가 정답게 안겨온다. 록음우거진 산봉우리들과 바위들, 섬들은 호수에 령롱한 그림자를 비끼고있어 그야말로 거울속의 그림처럼 더없이 아름답다. 가볍게 불어오는 해풍으로 파도가 잔잔히 물결치면 물우에 비낀 서른여섯봉우리도 함께 춤을 추듯 일렁거리는데 한가로이 날던 갈매기들은 물우에서 깃을 치며 자맥질을 한다. 참으로 삼일포는 그 누구나 황홀한 경치에 매혹되여 사흘씩이나 놀고갈만한 명승지이다.


 

봉래대에서 돌계단을 밟으며 뽀트장이 자리잡은 호수가로 내려와 한 굽이를 더 돌면 왼쪽에 우뚝 솟은 흰 바위무지의 봉우리가 있는데 이것이 <련화대>이다.


 

련화대에는 5개의 큰 바위가 서로 각이한 높이로 동그랗게 모여섰는데 호수에서 올려다보면 마치 그것이 련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 바위들을 <련꽃바위>라고 하며 련꽃바위가 있는 전망대라는 의미에서 련화대라는 이름이 생겼다.


 

련화대에는 민족적형식으로 된 아름다운 단청무늬로 장식한 정각이 세워져있다(1964년에 준공). 10여개의 붉은 둥근기둥에 떠받들린 합각지붕은 마치 한 마리의 학이 맑은 물속에서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금시 날아오를듯한 모습이다.


 

정각에 오르면 삼일포의 전경과 그 주변경치는 장군대와 봉래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펼쳐진다. 서쪽으로는 해빛을 받아 번쩍이는 외금강의 웅장한 모습이 안개속에 우렷이 떠있고 동쪽으로는 해금강의 절경이 펼쳐져보이는데 유명무명의 작은 섬들이 흰 보석을 뿌려놓은 듯 푸른물결 출렁이는 동해바다우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련화대가 삼일포에서 가장 좋은 전망대의 하나로 손꼽히는 것은 그 주위에 펼쳐져있는 이러한 아름다운 경치들을 한눈에 바라볼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삼일포 절경4
호수의 섬들


 

뽀트장에서 배를 타고 노를 휘저으며 호수를 마음대로 다녀봐야 삼일포의 진짜 맛을 안다. 기슭에 올라서 보면 <바다가의 호수>로 보이고 뽀트에 몸을 싣고 물우에 앉아보면 <심산속의 호수>로 보인다는 말은 참으로 옳다. 창창한 소나무들에 싸여있는 장군대와 련화대, 주변의 메부리들은 심산을 이루고 호수는 가없이 넓어보인다.


 

호수 한가운데로 노를 저어나가면 이윽하여 호수에서 가장 큰 섬에 이르는데 이것이 바로 <와우섬>이다. 섬의 동쪽에는 이대(전죽)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고 온 섬이 푸른 소나무숲으로 덮여있다. 옛날에는 몇그루의 로송이 유표하게 서있다고 하여 ,송도>라고 불렀으나 근래에 와서 뉜가가 우리 농민들이 사랑하는 소에 비유하게 되면서 <누워있는 소>라는 이름이 붙였다.


 

와우섬에서 다시 노를 저어 서쪽으로 가면 호수우에 길죽한 바위들이 머리를 내민 작고 나지막한 돌섬들이 있다. 이것이 오랜 전설들과 함께 내려온 <단서암>과 <사선정>, <무선대>와 <매향비>터이다.


 

단서암은 여러개의 길죽한 큰 바위로 이루어진 섬이다. 옛날에 신선들이 여기에 와 놀다가 <술랑도 남석행>이라는 6자의 글을 석자씩 두줄로 새겨놓았는데 글자들이 붉은색을 낸다고 하여 <단서(붉은 글)암> 또는 <6자 단서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15세기까지는 모든 글자들이 다 뚜렷하였는데 20세기초에는 <남>자와 <석>자 두자만이 보이였다고 한다.


 

옛날에 금강산에 찾아온 량반관리들은 의례히 단서암을 보려고하였기때문데 그 시중을 들기 귀찮고 접대비에 시달리던 이 지방 인민들이 단서암을 돌로 짓조겨 물속에 처박아넣었다고 한다. 지금은 가을철 물이 적을 때에만 그 글자들을 어렴풋이 볼수 있다.


 

단서암꼭대기에 비석을 세운 흔적이 있는데 이것이 <매향비>터이다. 매향비(불공에 쓰는 향나무를 묻은 기념비)는 1309년에 강릉존무사 김천호가 삼일포에 향목을 묻는 것을 기념하여 짤막하게 비를 깎아세운것이였다. 19세기초에는 이미 비문을 읽을수 없게 되었으나 중들은 왕왕 물속의 향목을 꺼내여 불공에 썼다고 한다.


 

단서암 북쪽켠에 낮고 펑퍼짐한 긴 바위가 물우에 몸뚱이를 내민 작은 섬이 있는데 이것이 <사선정>터이다. 사선정은 옛날 <네 신선(영랑, 술랑, 남석행, 안상)>이 삼일포에서 놀고간 것을 기념하여 세운 정각을 이르는데 후세에는 이 섬까지 사선정이라고 불렀다. 정자는 1326년에 강릉존무사 박숙정이 세웠고 그후 여러차례의 중건보수를 거듭하여왔으나 어느 때인가 비바람에 없어지고 현재는 정자의 기둥을 떠받든 주춧돌과 그 홈들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선정은 단서암과 함께 그에 깃든 전설로 하여 명승지로서의 삼일포의 명성을 더욱 돋구어준다.


 

▲ 삼일포 절경5
사선정터에서 노를 저어 몽천쪽으로 조금 오면 사선정보다 더 작고 누운 누에같이 생긴 바위섬이 있다. 이것이 옛날 신선들이 놀며 춤을 추었다는 <무선대>이다. 여기에는 <무선대>라는 글자가 내리새겨져있는데 <춤출무>자는 풍화작용에 의하여 거의다 없어지고 물속에 <선대>라는 두 글자만이 보인다.


 

예전에는 호수의 서남쪽에 궁륭형의 큰 바위로 된 작은 섬이 있었다. 바위꼭대기에 석실(석감)이 있었고 석실안에 돌부처가 있어 <미륵당>이라고 하였으나 근대에 와서는 그 흔적만이 남아있다. 오늘은 호수물이 불어서 섬은 물속에 잠겨버렸다.


 

몽천과 금강문


 

배를 타고 무선대를 구경한 다음 북쪽 산기슭 오목한 곳에 바머리를 돌려가면 소나무 우거진 아늑한 기슭에 닿는다.


 

▲ 삼일포 절경6
작은 만을 방불케하는 이곳은 백사장으로 되어있고 물이 얕아 물놀이하기에는 더없이 좋은곳이다. 또한 소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룬 가운데 듬성듬성 긴 의자들이 보기 좋게 놓여있다. 여기에 맑은 샘이 사시장철 마르지 않고 솟아올라 뽀트놀이에 땀을 흘린 유람객들의 목을 추겨준다. 그리하여 이곳은 삼일포에서 가장 좋은 휴식터로 되고있으며 모두가 여기에와서 점심보를 펼쳐놓고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손님들이 고마워하고 즐겨하는 그 샘이 바로 이름난 <몽천>이며 옆에 있는 절터가 <몽천암>터이다.


 

몽천암은 후기 신라때에 지은 작은 절간이였는데 여러차례의 중건을 거듭하다가 1684년에 령동지구 700리를 휩쓴 큰 산불에 재가되였다. 3년후에 다시지었다가 폐허로 된후에는 누구도 돌보지 않았다. 암자터에는 지금도 옛모습을 그려볼수있게 여러개의 주춧돌들과 계단석이 있다.


 

몽천은 이 절을 지으려고 할 때 우물이 없어 근심하던 중이 꿈에서 본 백발로인이 가리켜준데를 파서 얻은 샘물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샘물맛은 여느 샘물과는 달리 차고 달다. 이 샘이 꿈에서 본것이며 향기롭고 몹시 차다고 하여 언제 누가 한일인지 알수 없느나 샘바위에는 <향렬>이라는 글자와 <몽천>이라는 글자가 좌우켠에 새겨져있다.


 

몽천에서 오른쪽 산둔덕으로 약 100m가량 가면 <석선>(돌부채)이라고 쓴 <금강문>이 있다. 주변에 고래등같은 큰 바위들이 이리저리 눕고 서고 한 가운데 류달리 큰 두 개의 바위가 량켠에 같은 높이로 마주 서있는데 그우에 한 개의 넓적돌이 얹혀있어 천연돌문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이 문을 <석비>(돌사립)라고도 불렀다.


 

▲ 삼일포 절경7
돌문의 높이는 5~6m, 너비는 1.5~2m, 길이는 4~5m 가량되며 그 반듯하고 우람찬 것으로 하여 금강산경내의 여러 <금강문>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우에 얹혀있는 넓적돌이 문밖으로 좁아진 것이 흡사 펼친 부채같다 하여 <석선>이라고 하였으며 이 문을 나서면 삼일포의 또다른 경계에 들어선다고 하여 금강문이라고 불러왔으리라.


 

금강문을 나서면 삼일포의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며 의좋게 서있는 해금강의 작은 섬들이 금시 손에 잡힐 듯 눈앞에 다가선다. 계절섬으로 된 <솔바위섬>에는 백로떼들이 날아들어 호수의 경치를 더없이 멋지게 하여준다. 남강하류 바다기숡에 초병인양 우뚝 솟아난 대봉이며 영랑호와 감로를 량팔에 끼고 앉은 구선봉의 숭엄한 모습도 뽀얀 안개속에서 우렷이 안겨온다. .


 

왼쪽 봉우리들을 쳐다보면 기암괴석들이 조화를 부려 작은 만물상을 이루고 있는데 복숭아바위, 원숭이바위, 곰바위가 유별나게 눈에 띄며 그 아래 기슭에 사자바위가 서있다.


구룡연의 바위들이 주로 널판자형이고 만물상의 바위들이 기둥형이며 총석정의 바위들이 각추형이라고 한다면 삼일포의 바위들은 둥근형이라고 할수 있다더니 그 말이 과연 비슷한 것 같다. 금강문의 바위들도 다 둥글둥글하다.


물속을 들여다보면 잉어, 붕어, 황어 떼들이 한가로이 헤염치고 있는 것이 더없이 아름답다.


참으로 삼일포는 절승경개를 자랑할만한 호수이다. <어찌 삼일포라고만 하겠는가> 삼일포라고 한들 어떠하며 백일포라고 한들 어떠하랴!>하는 생각이 절로난다. 금수강산-우리 조국의 자랑을 여기 삼일포에서 마음껏 누린 기쁨으로 하여 탐승객들은 흐뭇한 마음으로 귀로에 오르게 된다.


적벽강과 일승정터


삼일포에서 되돌아나와 동남방향으로 약 2km가면 고성군 구읍리에 이른다. 여기에 적벽강과 일승정터, 동, 서 구암(거북바위)와 해산정터 등 기묘한 경치와 광활한 전망을 자랑하는 이름난 곳들이 있다.


외금강남쪽의 여러 개울들을 모아흘러온 남강의 하류는 순학리일대에서 <쌍벽정>, <남석담> 등의 전망대와 소들을 스쳐지난다. 그러다가 동으로 흘러 구읍 바로 남쪽에서 적벽강으로 된다.


적벽강은 구읍리 남쪽에 높이 솟은 적벽산(116m)의 강기슭에 깎아지른듯한 절벽(적벽)이 병풍처럼 늘어서있는데서 생긴 이름이다. 원래 적벽이란 붉은벽이라는 뜻인데 늘 붉지는 않고 아침 한때에만 해빛을 받아 붉은 기운을 낼뿐이다. 실지로는 발부리를 스쳐 흐르는 물색을 닮아 검푸르다. 창연한 바위벽 짬새에 뿌리박은 푸른 소나무가 강우에 그림자를 담그고있는데 옛날에는 배를 타고 나루를 건너다니는 광경이 한폭의 그림과 같이 아름다웠다 하여 경치좋은 곳의 하나로 꼽히였다.


거북바위들과 해산정터


구읍리의 서쪽입구와 가운데 그리고 동쪽 끝에 삼일포를 향해 뻗은 3~4개의 그리 높지 않은 바위산들이 있는데 입구의 산등성이에 거부기가 아래로 향하여 내려오는듯한 바위가 서구암이고 동쪽 산꼭대기에 있는 큰 거북바위가 바로 동구암이다.


서구암은 어디서보나 거부기 비슷하나 동구암은 보는곳에따라 그 형체가 수시로 변하여 때로는 앉아있는 오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해산정에서 보면 마치 <큰 자라가 세 개의 산을 업은 형체>로 나타난다.


동구암의 바위 앞면에는 <동구암>이라고 초서로 새겨놓았고 뒷면에는 18세기중엽에 쓴 <배일암>이라는 세 글자가 깊이 새겨져있다. 아마 이 바위가 선곳이 바로 동해의 장엄한 해돋이구경에 알맞은다 하여 새긴것이리라.


해산정터는 동, 서 구암 사이에 자리잡은 나지막한 바위산인 룡산의 남쪽등말기우의 평지에 있다. 해산정은 읍에서 명승지들을 볼수 있는 전망대가 없다고 하여 1567년에 터를 잡고 지은것이였다. 후에는 <관동10경>의 하나로 일러왔으나 이미 오래전에 황폐되여 20세기초에는 다만 몇 개의 주춧돌들만이 풀속에 널려있었다고 한다.


해산정에 오르면 바다와 산을 다 전망할수 있다고 하여 정자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사실 해산정터에 오르면 사면팔방을 다 내다볼수 있다. 1만2천 봉우리는 서쪽에 펼쳐져있고 해금강은 10리 동쪽에, 적벽강과 구선봉은 남쪽에 그리고 삼일포는 북쪽에서 각기 저만이 가진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해산정터 절벽에 크게 새겨진 옛사람의 글은 해산정의 자랑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천하명승을
한곳에 모여놓았는가
산과 바다사이에 있는
신선의 집은 다름아닌 여기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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