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산의 역사와 문화(14)
금강산의 삼일포
삼일포는 온정리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가는 자동차길로 12km되는 지점에 있다. 삼일포는 예로부터 <관동8경>의 하나로 이름났고 호수풍경으로서는 전국적으로도 으뜸가는 곳으로 일러왔다.
북쪽과 서쪽에는 멀리 외금강의 뭇봉우리들이 에워싸고있으며 가까이에는 국지봉과 그로부터 뻗어내린 여러 작은 봉우리들이 둘러섰다. 남쪽과 동쪽으로는 월비산과 351고지, 구선봉이 내다보이고 그 앞에 적벽산, 룡산, 차산과 해금강의 뒤산들이 있다. 그리하여 예로부터 36개의 크고작은 봉우리들이 삼일포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잔잔한 호수에 그림자를 던지고있다고 말하여왔다. 호수는 동서보다 남북이 더 길레 뻗었는데 호수가는 들숭날숭 굴곡이 매우 심하다. 가운데는 소나무 우거진 와우섬과 몇 개의 큰 바위들로 이루어진 작은 <섬>들이 있다.
삼일포는 호수가 맑고 고요하여 옛날사람들은 마치 하늘의 선녀가 내려뜨린 거울과 같다고들 하였다. 삼일포의 경치는 금강산의 수려한 모습에 온화하고 아늑한 맛을 주는 호수의 풍경이 잘 조화되여 어느모로 보나 한폭의 풍경화와 같이 아름답다.
장군대와 충성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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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각은 소나무숲속에 가로 겹쌓여 누워있는 바위등성이에 서있어 <명경>과 같다는 호수의 주위환경에 잘 어울린다. 전통적인 루정형식을 살리면서도 현대적미감에 맞게 네모반듯하게 지은 이 하얀 콩크리트 정각은 보기에도 산듯하고 아담하며 얇은 판자형 지붕을 네모난 기둥들이 삽분하게 떠받들어 경쾌한 감을 준다.
충성각에서 삼일포를 굽어보면 호수의 아름다운 전경이 한눈에 안겨온다.
돌계단을 밟으며 충성각을 내려서면 봉래대와 잇닿은 허궁다리에 올라선다. 길이 56m나 되는 이 허궁다리는 금강산에서 제일 긴 줄다리의 하나로 손꼽힌다. 기우뚱거리는 몸을 바로잡아 밑을 굽어보면 푸른 물이 소같이 곱고 량켠의 장군대와 봉래대의 호수기슭에는 금강산에서 제일먼저 봄을 알린다는 진달래가 활짝 피여 흰 바위우에 분홍색 꽃방석을 깔아놓은듯하다.
봉래대와 련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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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래대는 아래로 밋밋히 내려깔린 넙직한 반석으로 되어있는데 그우에 100여명의 유람객들이 함께 서서 력사의 추억을 더듬으며 삼일포의 절승을 굽어볼수 있다.
봉래대 아래에 양사언이 호수의 절경을 바라보면서 글공부를 하였다는 굴이 있는데 이것이 <봉래굴>이다. 굴은 경사진 암반우에 <ㄱ>자형의 큰 바위가 얹혀서 이루어진것인데 깊지 않다. 봉래굴을 이룬 바위벽에는 양봉래가 썼다고 전하는 초서로 활달하게 갈겨쓴 한수의 7언시가 새겨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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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래대에서 돌계단을 밟으며 뽀트장이 자리잡은 호수가로 내려와 한 굽이를 더 돌면 왼쪽에 우뚝 솟은 흰 바위무지의 봉우리가 있는데 이것이 <련화대>이다.
련화대에는 5개의 큰 바위가 서로 각이한 높이로 동그랗게 모여섰는데 호수에서 올려다보면 마치 그것이 련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 바위들을 <련꽃바위>라고 하며 련꽃바위가 있는 전망대라는 의미에서 련화대라는 이름이 생겼다.
련화대에는 민족적형식으로 된 아름다운 단청무늬로 장식한 정각이 세워져있다(1964년에 준공). 10여개의 붉은 둥근기둥에 떠받들린 합각지붕은 마치 한 마리의 학이 맑은 물속에서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금시 날아오를듯한 모습이다.
정각에 오르면 삼일포의 전경과 그 주변경치는 장군대와 봉래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펼쳐진다. 서쪽으로는 해빛을 받아 번쩍이는 외금강의 웅장한 모습이 안개속에 우렷이 떠있고 동쪽으로는 해금강의 절경이 펼쳐져보이는데 유명무명의 작은 섬들이 흰 보석을 뿌려놓은 듯 푸른물결 출렁이는 동해바다우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련화대가 삼일포에서 가장 좋은 전망대의 하나로 손꼽히는 것은 그 주위에 펼쳐져있는 이러한 아름다운 경치들을 한눈에 바라볼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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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트장에서 배를 타고 노를 휘저으며 호수를 마음대로 다녀봐야 삼일포의 진짜 맛을 안다. 기슭에 올라서 보면 <바다가의 호수>로 보이고 뽀트에 몸을 싣고 물우에 앉아보면 <심산속의 호수>로 보인다는 말은 참으로 옳다. 창창한 소나무들에 싸여있는 장군대와 련화대, 주변의 메부리들은 심산을 이루고 호수는 가없이 넓어보인다.
호수 한가운데로 노를 저어나가면 이윽하여 호수에서 가장 큰 섬에 이르는데 이것이 바로 <와우섬>이다. 섬의 동쪽에는 이대(전죽)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고 온 섬이 푸른 소나무숲으로 덮여있다. 옛날에는 몇그루의 로송이 유표하게 서있다고 하여 ,송도>라고 불렀으나 근래에 와서 뉜가가 우리 농민들이 사랑하는 소에 비유하게 되면서 <누워있는 소>라는 이름이 붙였다.
와우섬에서 다시 노를 저어 서쪽으로 가면 호수우에 길죽한 바위들이 머리를 내민 작고 나지막한 돌섬들이 있다. 이것이 오랜 전설들과 함께 내려온 <단서암>과 <사선정>, <무선대>와 <매향비>터이다.
단서암은 여러개의 길죽한 큰 바위로 이루어진 섬이다. 옛날에 신선들이 여기에 와 놀다가 <술랑도 남석행>이라는 6자의 글을 석자씩 두줄로 새겨놓았는데 글자들이 붉은색을 낸다고 하여 <단서(붉은 글)암> 또는 <6자 단서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15세기까지는 모든 글자들이 다 뚜렷하였는데 20세기초에는 <남>자와 <석>자 두자만이 보이였다고 한다.
옛날에 금강산에 찾아온 량반관리들은 의례히 단서암을 보려고하였기때문데 그 시중을 들기 귀찮고 접대비에 시달리던 이 지방 인민들이 단서암을 돌로 짓조겨 물속에 처박아넣었다고 한다. 지금은 가을철 물이 적을 때에만 그 글자들을 어렴풋이 볼수 있다.
단서암꼭대기에 비석을 세운 흔적이 있는데 이것이 <매향비>터이다. 매향비(불공에 쓰는 향나무를 묻은 기념비)는 1309년에 강릉존무사 김천호가 삼일포에 향목을 묻는 것을 기념하여 짤막하게 비를 깎아세운것이였다. 19세기초에는 이미 비문을 읽을수 없게 되었으나 중들은 왕왕 물속의 향목을 꺼내여 불공에 썼다고 한다.
단서암 북쪽켠에 낮고 펑퍼짐한 긴 바위가 물우에 몸뚱이를 내민 작은 섬이 있는데 이것이 <사선정>터이다. 사선정은 옛날 <네 신선(영랑, 술랑, 남석행, 안상)>이 삼일포에서 놀고간 것을 기념하여 세운 정각을 이르는데 후세에는 이 섬까지 사선정이라고 불렀다. 정자는 1326년에 강릉존무사 박숙정이 세웠고 그후 여러차례의 중건보수를 거듭하여왔으나 어느 때인가 비바람에 없어지고 현재는 정자의 기둥을 떠받든 주춧돌과 그 홈들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선정은 단서암과 함께 그에 깃든 전설로 하여 명승지로서의 삼일포의 명성을 더욱 돋구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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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호수의 서남쪽에 궁륭형의 큰 바위로 된 작은 섬이 있었다. 바위꼭대기에 석실(석감)이 있었고 석실안에 돌부처가 있어 <미륵당>이라고 하였으나 근대에 와서는 그 흔적만이 남아있다. 오늘은 호수물이 불어서 섬은 물속에 잠겨버렸다.
몽천과 금강문
배를 타고 무선대를 구경한 다음 북쪽 산기슭 오목한 곳에 바머리를 돌려가면 소나무 우거진 아늑한 기슭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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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천암은 후기 신라때에 지은 작은 절간이였는데 여러차례의 중건을 거듭하다가 1684년에 령동지구 700리를 휩쓴 큰 산불에 재가되였다. 3년후에 다시지었다가 폐허로 된후에는 누구도 돌보지 않았다. 암자터에는 지금도 옛모습을 그려볼수있게 여러개의 주춧돌들과 계단석이 있다.
몽천은 이 절을 지으려고 할 때 우물이 없어 근심하던 중이 꿈에서 본 백발로인이 가리켜준데를 파서 얻은 샘물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샘물맛은 여느 샘물과는 달리 차고 달다. 이 샘이 꿈에서 본것이며 향기롭고 몹시 차다고 하여 언제 누가 한일인지 알수 없느나 샘바위에는 <향렬>이라는 글자와 <몽천>이라는 글자가 좌우켠에 새겨져있다.
몽천에서 오른쪽 산둔덕으로 약 100m가량 가면 <석선>(돌부채)이라고 쓴 <금강문>이 있다. 주변에 고래등같은 큰 바위들이 이리저리 눕고 서고 한 가운데 류달리 큰 두 개의 바위가 량켠에 같은 높이로 마주 서있는데 그우에 한 개의 넓적돌이 얹혀있어 천연돌문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이 문을 <석비>(돌사립)라고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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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문을 나서면 삼일포의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며 의좋게 서있는 해금강의 작은 섬들이 금시 손에 잡힐 듯 눈앞에 다가선다. 계절섬으로 된 <솔바위섬>에는 백로떼들이 날아들어 호수의 경치를 더없이 멋지게 하여준다. 남강하류 바다기숡에 초병인양 우뚝 솟아난 대봉이며 영랑호와 감로를 량팔에 끼고 앉은 구선봉의 숭엄한 모습도 뽀얀 안개속에서 우렷이 안겨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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