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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학생에게 매를 드는 이유는…”- 『사랑으로 매긴 성적표』이상석 이상석 |
글 / 김이준수, 사진 / 출판사 제공 jslyd012@gmail.com |
20년 전 출간됐다가 절판된 책이 시간을 이겨내고 새로고침판으로 나왔다. 독자들의 호응과 요구가 있었고, 눈 밝은 편집자의 부추김이 있었다. 20년의 세월에도 여전히 책의 메시지가 유효하다는 뜻이다. 그건, 진화하지 못하고 되레 퇴행한 교육 현실 때문일 것이다. 『사랑으로 매긴 성적표』(이상석 지음/박재동 그림|양철북 펴냄)는 그렇게 20년 만에 다시 빛을 봤다.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사란 무엇인가.
진짜 살려야 할 것은 ‘경제’가 아니라 ‘교육’일지 모른다. 누구나 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선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진짜 문제에 대해선 눈을 감는다. 교육이 20년 동안, 점점 더 병이 깊어진 까닭이다. 사교육(이라고 쓰고, ‘사육’이라고 읽는다)의 창궐은 교육 뿐 아니라, 경제, 정치, 문화 등 사회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그것도 악영향이 훨씬 크다.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선 공감하면서도, 할 말은 많으면서도, 교육에 대한 진짜 사유가 부족했던 게, 이 엄혹한 시대와 사회를 만들었다.
이상석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야성을 찾아주자고 말하고, 사랑으로 어우러진 교실을 만들자고 강조한다. 다시 말하면, 교육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보자는 거다. 믿고 사랑하며 기다리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고 되묻는다. 아이들이 대입 경쟁 조련사인 부모나 선생에게 휘둘리며 굴종하는 노예가 아닌 주체로 설 수 있도록 하자고 일깨운다. 교실 환경이 아무리 좋아지고 첨단 기자재로 아무리 효율적인 강의를 해도, 이야기를 잃은 교실, 사랑을 잃은 교실은 진정한 교육의 마당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학교는 사람이 모인 곳입니다. 모이면 관계를 맺게 되지요. 원만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맺을 때 사람은 홑사람 인(人)이 아니라 사이를 이은 사람(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인 인간(人間)이 됩니다. 그 관계를 아름답게 할 수 있는 열쇠는 ‘사랑’입니다. 나는 그래서 죽는 날까지 사랑으로 어우러진 교실을 꿈꿀 수밖에 없습니다. (p.7) 이상석 선생님은 좋은 어른이다. 교사는 무조건 사랑으로 아이들을 기다리고, 아이들에게 세상을 버텨야 한다고 말하는 어른. 언젠가 봤던 이 말처럼, ‘세상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아파하는’ 좋은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어른을 만날 수 있는 아이들도 행운일 것이다. 지난해 12월18일 오후,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 『사랑으로 매긴 성적표』 저자 초청 강연회가 열렸다. 이날의 주제는 ‘교사로 산다는 것 - 믿고 사랑하며 기다리기’. 멀리 부산에서 온 선생님을 보기 위해 많은 현직 교사들이 강의실을 가득 채웠다. 자리가 부족할 정도였다. 교육을 생각하는, 교사를 고민하는 이들의 열의로 한 겨울이 후끈 달아올랐다. 나는 망가진다, 고로 아이들과 함께 호흡한다
이 선생님은 아이들 앞에서 끊임없이 망가졌다. 권위를 버렸다. 교사의 권위보다 중요한 것쳀 있었기 때문이다. 청소시간에도 그는 지시를 하지 않았다. 장갑을 끼고, 아이들과 함께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아이들은 빗자루에 머리카락 엉키면, 이 선생님에게 들고 왔다. 그래도 학기 초면 장갑을 끼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야 장갑을 꼈다. “아이들 분위기가 조금씩 바뀐다. 잘 웃고 떠들고.” 사랑으로 어우러진 교실에는 권위 따윈 없다. 사랑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소통으로 이어진다. 교실에서 가장 귀하게 생각하는 것이 소통이다. 어떤 방대한 파일이나 촘촘한 지도보다 중요하다. 아이들에게 망가지는 것. “망가질 때 교사가 된다는 생각을 늘 하는데, 그렇다고 끝까지 망가진 적은 없다고 자부한다.” 그것을 경험으로 깨달았다. 망가진 만큼 소통되고, 마음을 나누며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생일을 챙겨준다. 생일이 1월 15일이라, 방학 때인지라, 아이들이 음력 생일을 알려달라더니, 생일엔 흐뭇한 광경이 펼쳐진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마흔 명의 아이들, 한 명이 한 자씩 찍어 와서 생일축하 앨범을 만들었다. “정말 좋고 고마웠다.”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선생님 생일을 자신들의 잔치로 만든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자습시간에 도망간다. 아이들은 영악하다. 우리 선생님은 이런 건 안 챙기니까. 교사는 단독자다 이 선생님에게 있어, 교사는 단독자다. “확실한 주체로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자기만의 교육 방법이 있어야 한다. 아이들을 굴종의 단맛에 길들이게 해선 안 된다.” 주체자의 고뇌. 고등학생 정도면 이런 것을 살짝 생각하고, 인생의 맛을 알게 해야 한단다. 문제집 푸는 데에만 시간을 보내는 것은 비극이다. 최소한 고등학생 정도면, 자신의 인생의 맛을 느껴봐야 한다. 그렇다면 자신만의 교육 방법은 무엇일까. “구조적으로 경쟁을 벗어날 수 없지만, 우리 반 안에서 경쟁에 내몰리는 애들이 없도록 해야겠다. 이런 것, 하나쯤은 가져야 한다.” 초중고 어디든 마찬가지다. 물론, 학교에서 자기를 지키는 일,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지만, 실은 어렵다. “작은 일에 물러서지 않는 사람이 큰일에도 물러서지 않는다.” 고민을 해야 한다. 아이를 지키는 것이 무엇일까. 선생으로서 아이들에게 심어줘야 할 게 무엇일까. 교사로서 가지고 있어야 할 뚝심 하나는 있어야 한다. 정말 지켜내기 어려워도 반드시 지켜내야 할 일. 그러니까, 교사로서의 자격 혹은 태도. “그것만 있으면 누구나 교사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그는 이것을 강조한다. 자연스럽게 이것이 몸에 배도록 한다. 1.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 2. 열린 마음 3. 편안한 자세 4. 마음 놓고 말하기 스승은 스스로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겸손하고, 가식이 없으며, 마음은 어린아이와 같다. 스승은 제자를 온몸으로 사랑한다. 스승은 생활에 부끄럼이 없고 말과 삶이 일치한다. 스승은 끝없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하며 흔들리지 않는 지조를 가진다. 스승은 자기의 교육권을 스스로 지키며, 불의에 항거할 줄 알며 미래의 밝음을 예견하는 예언자이다. 스승은 고난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창조자이다. (p.134) 가정방문의 중요성 그는 권한다. 가능만 하다면 가정방문을 하란다. 마음이 탁 열리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방문을 통해 제자들과 소주 한 잔하고 라면을 끓여먹던 사연을 말한다. 가난한 집안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선생과 학생이 하나 되는 순간. 물론 항상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가정방문이 필요한 것은, 선생과 학생이 서로를 모름으로써 벌어지는 사건도 있기 때문이다. 민주가 교사가 되고자 하는 뜻을 학교에서 상담하다가 들었다면 그토록 서로 믿음을 가지고 얘기하지 못했으리라. 그날 30분 남짓 어두운 골방에 앉아 나눈 얘기는 두터운 믿음으로 서로 손을 잡게 했다. 이것은 민주가 사는 모습을 바로 눈으로 보고 얻을 수 있었던 믿음이다. (p.92) 폭력은 절대 안 돼! 이 선생님은 학생을 구타했던 뼈아픈 기억을 꺼낸다. “사랑으로 매겨? 폭력 교사, 그 정체가 드러나다. 이렇게 돼야지. (웃음)” 그에게도 그 기억은 아프다. 『아이들을 변호하라』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단다. “화부터 낸다는 것은 교사가 할 일이 아니다.…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슬퍼해야 하는… 그래도 안 되면 눈물이 나야 한다.… 화를 내지 말고 슬퍼하라.… 교사는 슬픔을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 많은 애들을 가르치자면 언제 다 말로 다스리나. 그렇지만 매를 드는 건 자기 편하려고 하는 짓이야. 매로 다스리는 것만큼 편하고 쉬운 일이 있나. (p.41) 교사들의 체벌은 따지고 보면 횡포다. 어떤 방어도 할 수 없는 형편에 있는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가하는 폭행이다. 나 역시 그 폭행 앞에 속수무책으로 공포에 떤 경험이 있다. (p.41~42) 안달하지 않고 기다리기 교육자의 자세. 먼 미래에 대한 책임을 자신에게 부여할 필요는 없다. 다만 오늘에 대해서는 철저히 책임져야 한다. ‘내일을 위해서’라는 고상한 구호 갖다 대지 않기. 이 선생님은 안달하지 말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다리다 안 되면 어떡하느냐고? 할 수 없다. 잘 되면 더 좋지만, 안 돼도 할 수 없다. 속아도 들어줘야 한다.” 선생도 인간이니, 그렇게 하기 힘들다고? 아니, 선생은 인간 그 이상이어야 한다. 인간이 인간을 가르칠 수는 없으니까. 물론, 이건 이 선생님이 아닌 내 생각이다. 요즘, 이상석 선생님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글쓰기 교육은 잘 못하고 있단다. 대신 시를 써서 소통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아이들의 시를 읊어주고, 느껴보는 시간. 동생이 뭐길래 / 이재진 “시를 어떻게 쓰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방금 읊은 이 시를 봐라. 한 식구처럼 지내면 이런 시가 나온다.” 사람들, 고개를 주억거린다. 맞다. 공감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학생의 시다.
초라한 밥상 / 이대희 뭔가 찡한 기운이 강의실을 가득 채운다. “가난이 아이를 사려 깊게 한다는 것을 느꼈다. 이런 아이들과 사랑을 나누면, 교사 노릇도 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어느 시보다 더 가슴을 후비는 시를 쓴 아이, 그리고 그런 아이를 끄집어낼 수 있는 선생님. 나는 문득, 내 학창시절, 그런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너무도 안타까웠다. 나도 이런 선생님을 학창시절에 만났다면, 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박재동, 이상석을 말하다
이어 이상석 선생님의 절친한 친구로, 책에 삽화를 넣어준 박재동 선생님의 시간. 허영만 선생님도 존경한다는, <오돌또기>라는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화백님. 친구 이상석을 말하고, 우정을 말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책에도 만화로 그려져 있는데, 고등학교 시험에 떨어져 재수를 할 때 처음 만나, 애틋한 우정을 나누면서 지금까지 왔다. “우리에겐 동질성이 있었다. 고향인 창녕과 울산도 그랬고, 가난하다는 동질성이 있었다. 좌절과 낙오자 정서를 공유한 거지. 우리를 봐라. 낙오하거나 좌절했을 때, 좋게 생각하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의 증명이잖나. (웃음)”
그 인연의 시작, 고등학교 시험에 떨어진 사연. 집이 만화방을 했다. 만화나 영화를 엄청 봤다. 그 전에는 어떤 자각이 없었으나, 중학교 3학년2학기 때 일을 한다는 자각을 처음 가졌다. 그러면서 이른바 ‘삥땅’을 쳤다. 물론 표시가 거의 안 날만큼. 그 삥땅으로 매일 영화를 본 거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지고, 친구 상석을 만난 것이다. “그때 나는 낙오자라는 슬픔을 처음 알았다. 우수한 그룹에만 있다가 낙오한 친구들과 있다 보니 눈물을 알았다. 그게 예술가로선 참 좋았던 것 같다.” 칭찬과 꾸중, 자랑과 수치, 우월함과 열등함 사이에서 박 선생님은 삶을 밀고 끌고 나간 것이다. “몇 등 하노?” 그 말이 참 싫었다. 좋게 말하면 식민지나 전쟁 등을 거치며 어떻게든 힘을 길러야 한다는 과제가 있어서였는지 몰라도, 1등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1등과 꼴지는 다소 건강하지 않다고 보는 이유다. 고등학교 때 꼴지를 해 봤는데, 하기도 힘들단다. 재수 시절이 그렇게 정말 소중하고 좋았고, 그림을 그렸다. 114페이지짜리 『내 가슴에도 봄이 왔습니다』라는 작품도 그렸다. 두 사람, 사랑에 빠졌고, 여학생 한 명을 같이 좋아하기도 했으며, 꼭 붙어 다녔다. 사랑하는 친구 대신 매를 맞기도 하고, 엄청난 편지를 주고받았다. 만나면 헤어지기 싫어서 바래다주고, 서로의 일기장을 자신의 일기장처럼 여기면서 서로의 마음을 나눴다.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다. 부럽다. 저런 친구들. 저런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함께 머리가 하얗게 세면서 세월을 머금을 수 있는 친구. 사랑하는 친구. 서로 발전하면서 사랑이 깊어지는 친구. 추억도 좋지만 그것은 두세 시간 얘깃거리밖에 안 됩니다. 그 뒤의 발전한 자신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게 사랑의 열쇠가 되지요. 부부나 친구 사이의 사랑도 이와 꼭 같습니다. 평생을 살아가며 아무 발전도 없이 처음 만났던 그대로라면 샘솟는 사랑은 없습니다. 생각이 깊어지고, 생활이 더욱 부지런해지고, 어린이가 쑥쑥 자라듯이 마음이 쑥쑥 자랄 때라야 사랑은 깊어집니다. (p.417) 제자, 이상석을 말하다 아울러, 이상석 선생님이 부산 성모여고 재직 시절, 담임선생님이길 바랐던 옆 반의 학생이었던, 지금은 교직에 몸담고 있는 제자의 이야기. “이 선생님은 항상 학생들과 대화하며 교정을 다녔다. 나도 상담 한 번 받아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웃음) 수업만 하셔도,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춰주시며 ‘깨어 있으라’는 느낌을 불어넣어주시던 선생님이셨다. 국어시간만 되면 1분 1초가 아까울 정도로 몰입했다. 그만큼 수업 내용에 힘이 있었다. 내 인생에서도 영광이었고, 좋아했다. 전교조 운동 하시느라 해직당하셨는데, 성모여고에선 한 분이셨다. 당시 학생들이 시험거부도 하고, 쓰러지고 실신하고 울었다. 방송에서 마지막 인사말, 그러니까 21년 전에 했던 말씀을 잊을 수가 없다. 헤어지는 게 슬픈 게 아니고, 잊히는 게 슬픈 거라던 말씀.” 또 한 가지는 아이들의 고통이었다. 선생님을 돌려 달라며 허공에 몸을 던진 아이, 징계위가 열리는 곳에 몰려와서 울며불며 선생님을 빼앗지 말라고 오열하던 아이, 집에 찾아와서는 말도 없이 펑펑 울던 아이, 결국에는 스스로 자퇴서를 던지고 학교를 떠나 버린 아이… (p.267) 해직된 교수야 복직만 하면 보상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상처는 지울 수가 없다. 이 땅의 도덕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 어른들이 할 일은 무엇인가.… ‘미치고 싶도록 아픈’ 그 마음을 달래고 마침내 정의가 상식으로 통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다짐한다. (p.277) 이상석·박재동 선생님에게 묻고 답하다
교육계 모습이 20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책을 수업에 활용해 봤다. 학생이나 다른 선생님들의 반응이 극과 극이었는데, 나는 이 책을 고전이라고 생?한다. 글쓰기 교육 등에서 우리가 해결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이상석, 이하 석) “2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아이들의 정서 차이가 크다. 시골 아이들과 도시 아파트 숲에 사는 아이들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듯 말이다. 그런 속에서도 뭔가가 있다. 시멘트 바닥을 뚫고 올라오는 싹을 아이들이 볼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 부지런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아이들도 자본의 수렁에 빠지고 있다. 글쓰기도 지금은 펜이 아닌 컴퓨터로 하는데, 그것 등을 비롯해 예전과 다른 모습이다. 제대로 된 실천사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재동, 이하 동)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아이들이 어떤 글을 써야 좋은 글인가는 두 번째다. 글 쓰는 자체가 즐거우냐 아니냐가 중요하다. 어떤 글이든, 글 쓰는 즐거움을 느껴야 한다. 내용이 길든 짧든 간에.” (석) “옛날보다 지금의 경쟁 구도가 더 촘촘해진 것 같다. 옛날에는 글쓰기 시간이라도 있었다. 요즘은 그게 안 된다. 모든 게 스펙으로 연결되고, 학원에 가야하고, 그래서 인문계는 (글쓰기가) 불가능하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은 정말 힘에 겹다.” 구조적으로 절반이 넘는 학생이 탈락되어야 하는 현실에서 문제를 개인한테만 돌릴 수 있는가! 경쟁은 정말 자유 경쟁인가. 열악한 여건 속의 학생들이 안고 있는 경제적·시간적·심리적 불평등은 지나칠 수 있는 것인가. 그러고도 공부를 못하면 모든 게 못나 보이고, 문제가 있어 보이고, 학생 스스로도 기가 꺾이고, 살맛이 없고, 할 말 못하고, 뭐 하나 되는 게 있던가. (p.77) 책 보고 눈물을 안 흘릴 수가 없었다. 이오덕 선생님의 글을 보고 공부를 했는데, 책을 보면 이런 표현이 있구나 싶은 것도 많았다. 박재동 선생님에게 묻고 싶다. 몇 개도 안 되는 선으로 그린 그림인데, 어쩜 이렇게 사람이 살고, 그림이 사는지, 그리고 그린 사람의 성품이 사는지… 혁신 학교에 참여 하신다는데, 잘 해 달라는 말씀도 건네고 싶다. (동) “교육학자들도 있고, 관료들도 있는데, 나는 자세히 모른다. 그저 아침이 되면 아이들이 학교를 가고 싶고, 집에 돌아가기 싫은 그런 학교, 그것만 생각한다. 현장 교사들이 더 잘 알고 채워나가야지. ‘(학교에 다닌) 12년 동안 좋았어’, 이런 말이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예전에 아이들이 어땠으면 좋겠나, 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나는 아이들이 감탄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정말 좋겠다. 현장의 뜻 있는 교사들도 있고, 그분들이 잘 끌고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또 학교 운영이 민주적이어야 한다. 교장-교사-학생에 의해 민주적으로 운영되면, 학교는 저절로 잘 돌아갈 것이다. 지난하고 쉽지 않겠지만 잘 되는 곳이 있으면 칭찬하고 계속 요구해야지. 그림은, 음 그리는 본인도 감탄해야 한다. (독자들의 요구로 질문한 사람을 칠판에 그린다. 곽노현 교육감을 닮았다는 말과 함께, 다 그리고 나서 한 번 훑어보며) 나, 정말 잘 그리는 놈이야. (일동 웃음)” 교육을 한다는 게 삶의 기쁨이고, 소중하며 존재의 이유지만, 현실적인 막막함도 있다. 특히 고3을 가르칠 때의 열패감이나 인생 진로 상담시의 답답함이 있다. 이상석 선생님도 나처럼 그런 열패감을 느끼면서도 희망을 찾지 않았을까 싶은데, 아이들 가르치는 지금 심정을 책으로 내놔도 좋지 않았을까. 또 박 화백님께선 언제쯤 신간을 낼 계획인가. (동) “제주4·3항쟁을 다룬 <오돌또기>를 시작한지 15년이 됐고, 지금도 하고 있다. 2011년에는 꼭 애니메이션을 해야지. 언제쯤 다시 작품을 하게 될 런지 기다리고 있다.” (석) “여기 오신 분들을 (교육계) 후배라고 생각한다. 오늘 한 가지만 갖고 간다면, 물러설 수 없는 한 가지만 갖고 갔으면 좋겠다. 물러설 자리가 없는 처절함이 있다면, 구조에 의한 열패감에만 쌓여 있을 수 있겠나. 최소한 아이들에게 숨통 구실만 할 수 있어도 좋지 않겠나 싶다. 지금 활동에 대해 글로 쓴 게 있으면 내놓으라고 하는데, (웃음) 20여 년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일기를 쓰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교육 얘기가 없고 다른 종류의 얘기가 많더라. 아, 내가 관심이 바뀌었다는 생각도 들더라. 교단 일기, 요즘은 잘 안 써진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경쟁 속에서 생활한다고 해도 우리가 나눌 정은 경쟁보다 귀한 것이다. (p.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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