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금강산의 표훈사

이산저산구름 2010. 11. 11. 16:51



 

금강산의 역사와 문화(12)

금강산의 표훈사


 

표훈사는 내금강 만폭동으로 가는 길가 왼쪽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내금강의 절경인 만폭동의 입구에 해당된다.


 

표훈사 극락전에 올린 대들보에는 12세기 전반기(고려 인종때) 표훈사를 크게 보수하였으며 1682년 2월에 큰 화재로 모든 건물이 불타고 다음해 1683년에 옛 모습대로 고쳐지었다는 것 그리고 1777년 큰비에 건물의 축대들이 무너지고 모든 건물이 떠내려가서 그 자리에 남은것이란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 그리하여 1778년에 다시 크게 지였다는 것이 먹글씨로 적혀있었다.


 

▲ 금강산 표훈사 ⓒ 연합뉴스
여러 자료들을 통하여 보면 표훈사는 처음 670년에 세워진 이후 여러 차례의 재건, 중수를 겪었고 지금 남아있는 건물은 1778년에 다시 세워진 것이다. 때문에 지금의 표훈사 건물은 18세기 말의 건축술과 건축예술을 반영하고 있다.


 

표훈사는 력대 왕실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궁중에서 보내온 유물들이 적지 않았으며 장안사, 유점사와 함께 멀리 외국에까지 알려져있었다. 한때 원나라 왕정에서는 이곳에 사신과 물품을 보내여 불공을 하였었다.


 

표훈사에는 지금 중심건물인 반야보전, 2층다락문인 릉파루 그리고 명부전, 령산전, 어실각, 칠성각, 판도방 등의 건물이 있다. 이밖에도 지난 시기 극락전, 영빈관, 함영교, 청덕재, 설선당, 청차재, 천왕문과 같은 여러 건물이 있었다.


 

중세말기의 민족건축의 특색을 보이고있는 표훈사 건물들은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혀있으며 매개 건물들이 또한 화려하고 정교롭게 세워졌다.


 

여러 건물 가운데서 반야보전은 굵직하고 힘차며 섬세한 꾸밈새로 하여 보는 사람들에게 황홀감을 자아내게 한다.


 

▲ 보훈사 반야보전 서까래 마구리 ⓒ 뉴시스
반야보전은 앞면 3간(14.09m), 옆면 3간(9.4m)으로 된 겹처마합각식 건물이다. 건물은 높이 1m정도의 축대우에 세워졌다. 다듬은 주춧돌우에 우가 약간 홀쭉하게 줄어든 두리기둥을 세웠는데 기둥사이는 가운데간이 넓고(문짝 5개), 좌우간들은 그보다 좁게(문짝 4개)하여 건물의 중심을 강조하였다. 문짝은 빗살문이며 매문짝 밑부분에는 아래우 2개의 도안화된 풍혈이 있다. 기둥우에는 기둥의 굵기에 알맞은 기둥이마보(액방)와 기둥웃보(평판방)를 건너대고 바깥 7포, 안 9포의 두공을 얹었다. 포식두공은 앞면, 뒷면의 가운데간은 4개씩, 그 좌우옆간들에 3개씩 놓고 옆면에는 매 간마다 2개씩 놓아 기둥우 두공까지 합하여 모두 44개나 된다. 그리하여 처마밑은 마치도 섬세한 조각물을 빙 둘러놓은 듯 매우 화려해보인다. 두공을 아름답게 짜올려 지붕처마를 높이 추켜들게 함으로써 보는 사람에게 시원한 감을 준다. 특히 두공은 기둥이마보, 기둥웃보, 기둥머리(주두), 산미, 첨차, 장여, 소로 등 여러 부재들이 조그마한 빈틈도 없이 꽉 맞물려있어서 건물이 매우 견실하고 든든하게 보인다.


 

반야보전은 그 조각장식이 화려하고 세련된 것으로 하여 이채를 띤다. 활짝 피여난 련꽃과 갓 피여나는 꽃봉오리를 서로 엇바꾸어가면서 짜올린 제공의 세부조각도 우수하거니와 매 두공우의 봉황새조각 역시 조형적으로 재치있게 다음어졌다.


 

특히 건물조각에서 눈에 띄는 것은 네 모서리두공우와 앞면 가운데의 두 기둥우의 룡대가리 장식이다. 가로지른 기둥웃보와 직각으로 룡의 목을 붙이고 아래 몸통을 집안으로 뒤틀어 들보에 서리서리 휘감은 모습은 매우 박력있게 보인다. 한 마리의 룡을 안에서 틀어올리고 혀를 나불거리고 눈을 부릅뜨고 대가리를 건물밖으로 나오게 한 기발한 구도와 기교, 조각술은 당시의 건축장식과 나무조각 수준을 생동하게 보여준다. (*우리나라 민족문화유산 특히 건축, 조각, 공예, 회화 등의 장식으로 룡이 많이 등장한다. 금강산의 여러 유적유물에도 룡장식이 많이 보인다. 고대이래로 우리의 선조들이 룡을 즐겨 선정한 것은 그것이 환상적인 동물로서 갖은 조화를 부린다하여 신비화하고 또한 천하에 가장 위력한 것의 상징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환상적인 룡을 여러 가지 형태로 조형예술에 형상한 것은 비과학적이며 미신적인 관념의 반영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선조들이 그러한 용맹하고 지혜로운 <동물>을 좋아하였던 사실을 또한 찾아볼수 있게 하는 것이다. 지난날의 사회적조건에서 창작가들은 조선사람의 용감하고 지혜로운 기상을 억세고 용맹스러운 룡과 같은 <동물>의 형상을 빌어 표현하였던 것이다. 룡은 금강산의 전설, 소, 폭포, 봉우리 등의 이름과도 많이 결부되여있다.)


 

▲ 표훈사의 반야보전과 7층 석탑
7포의 두공으로 떠받는 합각지붕은 방금 날려는 학날개와도 같이 가볍게 들리우고 룡마루, 박공마루, 추녀마루 등이 모두 부드러운 곡선미를 이루어 건물의 웅건함과 아름다움을 한층 돋구고 있다.


 

건물의 바닥은 널마루이며 벽도 널판으로 꾸몄다. 그리고 불단우의 닫집(벽에 매단 건물모형)은 특별히 섬세하게 짜올렸다.


 

건물안팎에는 금빛, 푸른색, 풀색을 비롯한 가지각색으로 꽃무늬, 비단무늬들을 그려서 집을 꽃속에 잠긴 듯이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규칙적으로 쌓아올린 축대와 전체와 부분의 조화로운 균형, 세부요소의 빈틈없는 맞물림과 화려한 단청장식, 간결한 두공과 섬세한 장식조각, 부드러운 물매의 지붕과 경쾌한 처마 등은 반야보전의 웅장장쾌하고 우아하고 단정한 건축미를 이루게 하였다. 이 건물은 합리적인 째임과 아름다운 꾸밈으로써 하나의 건축예술품으로 형상되였다는 점에서 단연 금강산 옛건물들 중 으뜸으로 된다.


 

또한 반야보전은 리조후반기 건축의 민족적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건축, 조각, 그림 등의 풍부한 내용이 하나의 건축물에 종합적으로 반영되여있는 것으로 하여 당시 우리 인민의 높은 건축술을 보여주고 있다.


 

▲ 보훈사 릉파루 ⓒ 연합뉴스
반야보전과 함께 루각형식으로 된 2층 다락문인 릉파루도 잘된 건물이다.


 

릉파루는 잘 다듬은 화강석을 5단(1.3m)으로 쌓고 그우에 앞면 3간, 옆면 3간으로 세운 합각식 건물이다. 다락 아래층에는 14개의 8각기둥이 서있는데 밑으로 내려가면서 굵게 처리하였고 2층기둥은 약 2m되는 두리기둥 10개로 구성하였다. 아래우 기둥수를 달리함으로써 2층다락에 올라 기둥으로 해서 휴식과 전망에 지장이 없도록 하였다. 널마루로 된 다락에는 1m 높이의 란간을 둘렀고 그 밑부분에 풍혈을 일정한 간격으로 보기 좋게 뚫어놓았다.


 

릉파루의 두공은 외도리2익공이며 처마는 겹처마로 아름다운 모루단청과 결합되여 아담하다. 릉파루는 명산 금강산의 자연풍치에 어울리게 시원하게 설계되고 품위있게 건축되였다.


 

왕실의 ≪안녕≫을 빌기 위한 건물로 리용된 어실각은 앞면 3간, 옆면 2간에 처마를 겹으로 한 배집형식의 건물이다. 두공은 밖으로 5포, 안으로 7포를 짜올렸다. 특히 이 건물은 가운데 천정과 량쪽 두공포가 합치되여 하나의 천정을 이룬 독특한 형식을 이루고있으며 측면의 포형태도 배집에 자연스럽게 조화되여있다.


 

또한 명부전과 령산전은 각각 앞면 3간, 옆면 2간의 그리 크지 않은 배집건물인데 령산전이 안팎 5포로서 지붕처마가 높아 경쾌한 느낌을 주는데 비하여 명부전은 2익공외도리두공으로 지붕을 떠받들고 있어서 시원한 감은 없어도 든든해 보인다. 단청은 금단청(령산전), 모루단청(명부전)으로 장식하였다.(*불교전설에 저승에서 죽은 사람을 심판하는 곳을 명부라고 하는데 명부전은 바로 사람들에게 불교를 착실히 믿고 불공을 잘해야 죽은 다음에도 공정한 심판을 받고 극락세계로 갈수 있다는 것을 설교하는 건물로 리용되였다. 또한 령산전은 석가여래의 안녕을 빌기위하여 만든 건물로서 명부전과 그 사명을 달리하고 있다. 두 건물안데는 그 건물의 사명에 맞는 불상, 불화들이 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