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짧은 여행에서 얻는 현명함

이산저산구름 2010. 6. 21. 16:33

 

짧은 여행에서 얻는 현명함

                           
                                  박 혜 균




한 무리의 갈매기가 맹방의 새벽 바다를 열고 있었다.

솟아오르는 붉은 아침 해와 섞여 한 폭의 그림처럼 열리는 바다와 함께, 바람이 大雪 절기의 차가움으로 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이처럼, 시간의 흐름은 그렇게 청각이 아닌 시각과 촉각으로 사람을 일깨우기도 하는 모양이다.

강원도로 가는 길.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얻은 여유로움에 오랫동안 보고 싶던 곳을 가게 된다는 설렘이 겹치니, 새벽길을 천천히 달리는 앞차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삼척 죽서루의 앞마당>
 

관동팔경의 하나인 죽서루는 특이하게도 바다를 끼지 않은 樓이다.

내가 자주 찾아가는 울진에 있는 월송정은 亭이다.

나는 정과 루의 차이점을 다시 찾아보았다.

사전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루와 정은 지붕과 기둥 사이 모두가 문이고 창인 집이다.

루는 지나는 곳이고 정은 머무르는 곳이다’

그러니 죽서루는 지나가는 곳이 될 것이다.

건물의 밑으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구조.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월송정도 건물의 하단으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었다.

그러니 내게는 아직도 樓와 亭의 구분이 모호하다.

결국 내가 직접 다녀본 루의 정을 비교하여. 樓가 亭보다 규모가 더 크지 않나 않은 짧은 결론을 낼 수 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죽서루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樓라고 할 수 있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구조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구조.

그리고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어중간하게 서 있는 기둥들.

그랬다. 그 기둥들이 있어 내 기억이 선연히 살아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죽서루는, 1981년의 수학여행길에 오십천 건너편에서 죽서루가 있는 절벽을 감상한 후 구름다리를 건너서 죽서루에 가는 스릴만점의 장소였다.

흔들리는 다리의 줄을 겨우 겨우 부여잡고 죽서루에 도착하니, 밑의 기둥 9개는 다듬어지지 않는 자연석위에 있었다.


                                         
<죽서루의 절묘한 기둥들>
 

한 마디로 아슬아슬한 건물이라는 느낌.

그 느낌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죽서루에 대한 스릴감을 기대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죽서루에 더 이상 구름다리는 없었다.

안전의 문제로 1992년도에 철수를 해버리고, 죽서루를 쉽게 방문할 수 있도록 정비를 해놓아 예전만큼의 스릴감은 느낄 수 없었다.

스릴감을 버리고 차분하게 죽서루의 기둥들을 세세히 살펴보았다.

아랫부분에는 총 17개의 기둥이 있는데 이중 9개를 자연석위에 자연스럽게 세워놓아 보기에는 참으로 위태롭게 서 있는 느낌을 받았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겁 많은 내게 건물의 안전을 염려하게 하는 요소로 남아있는 기둥을 손으로 살짝 밀쳐보았다.

다행스럽게도 ‘넘어질까봐 걱정된다’는 우려가 들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었다.

긴 세월을 버텨온 건물이라는 선입견과, 세상의 파고에 휘둘린 나의 단단한 성정이 죽서루에 대한 더 이상의 스릴감을 용납하지 않은 덕분이었다.

죽서루도 다른 루들과 마찬가지로 벽이나 창이 없다.

그러니 사방이 확 트인 곳이라 추운 겨울에는 여유 있는 감상이 힘든 측면이 있다.

실제로 죽서루에 서 있으니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와 온 몸이 오슬오슬 떨려왔다.

그래도 시각적인 효과를 노린 기둥의 길이와, 자연석의 높이에 따라 달라지는 기둥의 설치가 조상들의 현명함을 엿보게 해주어 흐뭇한 기분도 들었다.

거기에다가 죽서루를 찾았던 명사들의 글씨와 한시를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모르는 한자는 전자옥편을 찾아가면서 읽으니 죽서루에 대한 애정이 가해졌다.

허목의 죽서루기를 읽으면서 죽서루의 명칭에 대한 유래를 알고고, 이이와 이승휴의 한시를 읽으면서 유유자적과 자연으로의 귀환에 대한 꿈이 현대인들만의 염원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선인들의 향기를 내 몸으로 느끼니 겨울의 추운 바람에 오슬오슬해진 몸이 따뜻해지고 있었다.

죽서루내에 퍼지는 전통 가락에 맞춘 듯한 烏竹의 푸른 춤사위도 겨울날의 스산함을 없애주어 죽서루에 대한 또 다른 기억을 가지고 떠나올 수 있었다.

 

죽서루를 나와 오십천 변에 섰다.

오십천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특이하다.

내 고향 영덕에도 오십천이 있는데, 영덕의 오십천은 ‘물줄기 50개가 모여서 하나의 하천이 되었다고 오십천’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삼척의 오십천은 또 다른 의미의 오십천이었다.

‘부에서 물 근원까지 47번을 건너야 하므로 대충 50번으로 간주하여 오십천’이라는 의미란다.

같은 명칭임에도 그 뜻이 사뭇 다른 두 오십천은 풍광도 사뭇 다르다.

영덕의 오십천이 평지를 직선처럼 계속 흐른다면, 삼척의 오십천은 구불구불 휘감아 흐르는 형상이다.

그래서 곳곳에 沼같은 지형이 형성되는데 죽서루가 앉은 절벽 부분도 마찬가지로 휘감아 흐르는 지점에 있다.

풍광은 휘감아 흐르는 하천이 더 볼 만하다.

그래서였나?

영덕의 오십천에는 樓는 아예 없고 亭이 두 곳 있을 뿐이다.

그만큼 풍광의 면에서 삼척의 오십천을 뒤따르지 못했나 보다.

백두대간의 혈맥을 잇는 삼척의 산세가 절묘한 풍광의 오십천을 만든 일등공신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오십천은 풍광덕분에 죽서루를 마주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이다.

특히 강 건너편의 고수부지는 맞은 편 절벽을 감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가 되기에 많은 이들이 찾는다고 한다.


                                      
<오십천변에서 보이는 죽서루>
 

그곳에 서면 오십천의 물살들 앞으로 죽서루의 팔작지붕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수량이 풍부하면 죽서루의 팔작지붕을 물속에서도 볼 수 있다는데, 내가 갔던 대설 절기에는 오십천의 수량이 풍부하지 못해 내 눈에 보이는 만큼만 담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오십천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단순히 죽서루만 보고 온다면 허전한 마음도 들 수 있을 만큼, 겨울날의 죽서루는 황량했다.

그렇지만 오십천에서 보이는 죽서루와, 오십천이 보여주는 탁 트인 하천의 풍경이 있기에 죽서루는 남김이 있는 여행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삶의 향기는 짧은 시간 안에서만 머문다고 한다.

大雪절기에 찬바람을 등에 지고 느낀 문화의 향기도 어쩌면 아주 짧게 내 속에 머물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는 기억하게 될 것이다.

봄이 시작에서부터 오십천의 절벽이 녹음이 짙은 꽃 잔치를 할 것이라는 것을.

푸른향기와 烏竹의 바람소리가 섞여 여행객의 빈 마음을 끝없이 채워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향기의 여운은 언제나 든든하게 우리 옆을 체크하며 존재할 것이라는 것을.

동해를 낀 도로를 달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맹방의 검은 바다를 보았다.

어둠이 내리면서 검게 변한 바다는 내일이면 다시 붉은 태양을 품에 안고 푸르디푸른 본래의 색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그 푸름은 우리 모두에게 삶의 희망이 되리라.

짧은 여행길.

무엇을 가슴에 담아올 수 있을까 걱정했던 우려를 떨치고 나는 조금 현명해졌다.

앞으로도 짧은 여행길이라도 나만의 푸른빛을 가지는 현명함을 찾아내는 기쁨을 지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