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움이 녹아나던 양동마을을 찾던 날
김 향 민
우리나라의 전통가옥 구조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고건축 전시장이라 할 수 있는 풍광 좋은 양동마을을 찾던 날은 지천으로 불사르던 화려한 꽃들이 꽃잎을 떨궈내고 싱그러운 연두 잎을 잉태하며 산천에 초록빛으로 수채화로 채색되던 날이었다.

<아름다운 양동 향단마을 전경>
良洞마을? 조선시대 어진선비를 많이 배출하였다하여 "어진 임금을 잘 보좌하는 어진 신하"라는 뜻에서 良左洞으로 불리다가 다시 양동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니 마을을 폭 감싸듯이 왠지 모를 어머님 품에 안긴 듯한 기분이 들어 아침 일찍 집을 나서면서 긴장됐던 마음이 풀렸다. 초기에는 양월리 좌편에 있다하여 양좌동으로 불리었다고 하는데... 
<평화로움이 깃든 양동마을 앞의 멀리 보이는 초가와 푸근한 농촌전원 풍경>
마을 입구에서 바라 뵈는 정감 있는 산허리를 끼고 동네를 이루고 있는 마을로 안락천을 가르며 양옆 산허리에 내 어릴 적 살던 고향인 냥~ 양동 민속 마을은 아늑하게 양옆으로 민가를 이루고 있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한 일주쯤 세상 문명의 이기를 모두 버리고 옛날로 돌아가고픈 생각이 들자 정겨운 이방인의 방문인데도 낯설지 않아 논두렁에 그냥 주저앉았다.
''이미 고인이 되신 내 어머니가 반겨 줄 리 없는 낯선 곳임에도 불구하고 , 산허리에 큰 기와집에서는 큰어머니가 "반갑다며 어서오라"며 대문 밖까지 나오셔서 손짓을 하고 계신 것 같았다.
큰 어머니집 아래 작은댁에서는 작은 아버지가 내가 온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시고 닭장에서 토종닭을 잡고 계시고, 작은 어머니와 조카들이 분주하게 마당과 부엌을 드나드는 모습으로 양동 마을은 그렇게 나를 푸근하게 옛 추억을 더듬는 상상으로 맞아주고 있었다. 아니 잠시 꿈을 꾼 것인가 실제인가 비몽사몽으로 어릴 적 고향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그렇다 "내 어릴 적 고향에서 어머니는 큰댁의 큰 기와집이 아닌 작은집에서 옥양목 하얀 행주치마를 입으시고 머리는 하얀 두건으로 감싸고 늘 일하시던 모습만 눈에 선하다.27 살 청춘에 혼자되신 홀시아버지와 두 아들 천덕꾸러기 될까 친척들의 새장가 들라는 수없는 유혹을 뿌리치시고 키우신 시아버지와 남편과 삼촌, 그리고 우리 육남매를 키워 모두 출가 시키고 10년 병원 신세지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살아계신 것 같았다.
양동 민속마을에 안기니 과거 내 어릴 적 시절이 필름처럼 되살아났다. 
<향단 내 고가>
문득, 어린시절의 상념 속에 빠지다보니 ,저 멀리 함께 온 답사팀들이 오르막 큰 기와집 보물 412호 지정된 향단으로 가고 있었다. 풀썩 주저앉은 논두렁에 나를 보고 손짓 하는 모습에 잠시 동심으로 빠졌던 상념에서 깨어났다.
"아차 ! 모두들 벌써 저기가고 있네 "
주저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털며 지인들에게 손짓을 하며 부지런히 뒤따랐다. 향단이라는 기품 있는 고가에서 누군가가 설명을 하는지 모두들 서서 얘기를 듣는듯했다. 가까이 가니 이곳 해설사가 양동 마을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이곳 양동 마을의 풍수 설화에 의하면 서백당의 집터를 잡아준 지관이 “이 곳은 설창산의 혈맥이 응집된 터라 3명의 큰 인물이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한다. 3명의 위인 중 2명은 이미 태어났는데 손소 공의 둘째 아들로서 명신이자 청백리인 우재 손중돈선생과 그의 생질로 성리학의 대가이며 동방 5현 중의 한분인 회재 이언적 선생이시란다.
이제 두 명의 현인이 태어났으니 손씨 집안에서는 남은 한 사람의 현인이 손씨 집안에서 태어날 것으로 기대했으며, 회재선생 이후로 시집간 딸이 해산하기 위해 친정에 와도 이 방은 허락하지 않고 다른 일가 집으로 보냈다고 하며 방문객에게도 절대 공개하지 않는 방이라며, 열심히 해설하는 해설사를 뒤로하고 앞산 건너편 마을을 넋 놓고 바라보니 이쪽보다는 가옥은 많지 않으나 여전히 내 어릴 적 고향 마을과 흡사하다. 
<양동마을 안락천 개울 사이를 두고 입구 오른쪽 마을>
내 어릴 적 고향마을 석모리도 건너편 앞쪽 마을에는 약간 음지 기가 있어 이쪽보다 가옥들이 적었다.
풍수에는 풍자도 모르는 나이지만 그저 느낌만으로 햇빛을 많이 받는 이쪽이 더 좋다는 느낌을 가졌었다.
하지만 이곳 양동마을은 안락천을 사이로 마을을 이루는데 두 마을 가옥 모두 풍광 좋은 곳으로 보인다.
마을 전체가 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되어 있는 고색색 창연한 마을은 그 규모나 보존상태, 문화재가 때 묻지 않은 자연환경에서 그 어느 곳보다 훌륭하고 볼거리가 많았다.
양동마을? 우리나라의 지정민속마을 다섯 곳 중 하회마을과 더불어 양반들의 생활상과 주거양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민속 마을이란다. 양동마을은 여강 이씨(驪江李氏)와 월성 손씨(月城孫氏)의 두 씨족이 이룬 집성촌마을로 산을 둘러싸고 있는 양동마을은 높지 않은 산봉우리와 그허리을 중심으로 마을을 이루고 있어 얼핏 누군가가 이 마을을 침범할까 약간 지대 높은 산자락을 끼고 마을을 이룬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민가 속에 양반가옥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양반고택을 중심으로 평민들이 양반들에게 베풂의 덕을 받고 사는 것 같았다 .다음 코스로 청백리 조선 성종때 명신우재 선생이 살던"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보듯이 자손들이 커가는 모습을 본다"는 관가정을 둘러보았다.
한줄기 해는 저물어 가는데 바삐 움직여야 한곳이라도 더 볼 수 있다. "물과 같이 맑고 구름같이 허무하다"라는 수운청허의 뜻을 땄다는 수운정도 둘러보았다. 이곳 양동 마을의 고택들은 모두 아름다운 우리의 기와 건축미와 기품 있는 건축형식이다.
조금 늦은 오후 저녁나절 방문이다. 하촌코스 물봉, 수졸, 내곡, 두곡, 향단 등 6개 코스를 모두 돌아볼 수 없는 아쉬움이다. 향단, 내곡, 두곡 코스를 들러보고 나머지는 석양이 기우는 것을 아쉬워하며 다음을 기약해야했다.
그러고 보니 몇 해 전 일본 여행을 하면서 아름다웠던 그라바원의 호화별장이 떠올랐다. 야트막한 비탈진 곳 시원하고 풍광 좋은 바닷가가 눈앞에 펼쳐진 서양인들의 호화별장 이 신선한 충격으로 남아있다. 외국문물이 처음 수입된 부호들의 별장은 잘 정돈되고 인위적으로 꾸며져 있는 것에 비해 지금 내가 답사한 양동마을은 볕이 잘 드는 산자락에 인위적으로 가꾼 마을이 아닌 자연적으로 조성된 숲길로 지천으로 핀 야생화 등 꾸밈없는 바로 정을 듬뿍 품고 있는 전통적인 우리민족 고향마을 어머니 마을의 정겨운 곳이다.
버스에 오르며 저 건너편에서 오래도록 내가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의 어머니가 눈가에 눈물을 훔치시며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오래도록 서서 계시는 것 같아 다시 버스에서 뛰어내려 뒤돌아가고 싶은 심정을 억누르며 양동마을을 뒤로하며 떠나왔다.
양동마을 예나 지금이나 어머니의 품 같은 정이 듬뿍 담긴 마을로 굳이 어릴 적 고향이 시골이 아니더라도 이곳을 찾는 이방인 누구를 막론하고 반갑게 맞아줄 그런 정감 있는 따스한 마을이다.
설창산 문장봉에 올라 양동마을을 다시 한번 깊이 음미하고 산새들과 기분 좋게 콧노래라도 부르며 머무르고 싶은 간절함이다. 물봉골 숲속길 걸으며 마음껏 정화된 신선한 공기를 깊이 들이 마시며 푸르름을 가슴에 앉고 왔다.
다음에는 이곳에서 하루밤이라도 꼭 묵겠다는 마음이 간절해 왔다. 이렇게 이번 양동마을 답사는 다른 답사 때와는 달리 다음을 기약하는 아쉬움만 가득 남긴 답사였다. 하긴 내 어머니의 정이 가득한 어머니가 기다리시는 고향마을이니 또 찾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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