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조선 후기 풍속화를 보는 눈 [김현지]

이산저산구름 2010. 1. 12. 10:37

조선 후기 풍속화를 보는 눈

김현지

- 風俗畵와 小品文

 
김홍도(金弘道, 1745-1806경)의 <공원춘효도(貢院春曉圖)>(미국 개인 소장)는 과거시험을 치르기 위해 좋은 자리를 선점하고자 새벽부터 모여든 선비들의 군상을 묘사한 그림이다.

                              
          <도 1> 김홍도, <공원춘효>, 미국 개인소장(Patrick Patterson)


                  
<도 2> 김홍도, <공원춘효>의 세부

 커다란 우산이 빽빽하게 운집해 있으며, 각 우산 아래에는 대여섯 명이 한 무리(接)를 이루어 부지런히 뭔가 붓을 들고 쓰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태연히 담배를 물고 있는 사람, 한 귀퉁이에서 졸고 있는 사람 등 각양각태의 인물들을 묘사하였다.

  김홍도는 조선후기 선비들의 과거시험 풍속이라는 주제를 묘사하면서 시험을 치르는 장면 자체를 그린 것이 아니라 시험 치르기 직전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어떤 특정한 상황을 묘사하는데 있어서, 현장의 구체적인 분위기를 묘사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으며, 개체성을 살리면서도 전체의 균형을 중요시하는 것은 김홍도 풍속화만의 특징이다. 어스름한 새벽녘 등불을 밝히고 둥근 우산이 이어져 멀어져가는 풍경은 그 자체로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이루며 좁은 화폭에 적절한 구성을 이루며 묘사되었다. 김홍도가 묘사한 인물들의 모습은 중요한 시험을 앞둔 사뭇 긴장된 표정이며 선비다운 반듯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어서 그다지 풍자적이거나 부정적인 인상을 전해 주지는 않는다. 졸고 있는 선비의 모습도 풍자적이라기보다는 공부에 지쳐 잠든 피곤한 모습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양가》와 같은 당시 과거시험의 실상을 전해주고 있는 기록은 시험장의 분위기가 근엄하고 정숙한 것이 아니라 타락과 불공정으로 얼룩진 현장이었음을 알려준다.


집춘문 월근문과 통화문 홍화문에

부문(赴門)을 하는구나, 건장한 선접군(先接軍)이

자른 도포 젖혀 매고 우산에 공석(空石) 쓰고

말뚝이며 말장이며 대로 만든 등(燈)을 들고

각색 글자 표를 하여 등을 보고 모여 섰다.

밤중에 문을 여니 각색 등이 들어 온다.

줄불이 펼쳤는 듯 새벽별이 흐르는 듯

기세는 백전(白戰)일세, 빠르기도 살 같도다. 1)

 

  과거시험장은 좋은 자리를 선점해야 시험에 붙은 가능성이 높았다. 좋은 자리란 시험문제를 빨리 볼 수 있고, 답안지를 빨리 낼 수 있는 곳이었다. 조선후기에는 과거시험 응시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답안지를 모두 읽지 못하고 먼저 제출한 일부 답안지만을 읽고 그 중에 합격자를 뽑았기 때문이다. 김홍도의 그림에 하나의 우산 아래에 한 무리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 접(接)의 구성은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고용된 사람인 선접군(先接軍), 답안의 문장을 대신 지어주는 거벽(巨擘)과 글씨를 대필해주는 사수(寫手) 등으로 조직된 한 팀이며, 저마다 접 간의 경쟁이 매우 치열하여 “부문(赴門) 쟁접(爭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김홍도의 <공원춘효도>는 이러한 당시의 세태를 전하고는 있지만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하여 묘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마도 이러한 그림을 보는 당시의 사람들은 과거시험장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실상의 모습을 떠올리며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은 화면 상단의 강세황이 쓴 화평에 잘 묘사되어 있다. 


봄날 새벽의 과거시험장, 수많은 사람들이 과거 치르는 열기가 무르익어, 어떤 이는 붓을 멈추고 골똘히 생각하며, 어떤 이는 책을 펴서 살펴보며, 어떤 이는 종이를 펼쳐 붓을 휘두르니, 어떤 이는 서로 만나 짝하여 얘기하며, 어떤 이는 행담에 기대어 피곤하여 졸고 있는데, 등촉은 휘황하고 사람들은 왁자지껄하다.

묘사의 오묘함이 하늘의 조화를 빼앗는 듯하니,

반평생 넘게 이러한 곤란함을 겪어 본 자가 이 그림을 대한다면, 자신도 모르게 코끝이 시큰해질 것이다. 표암(豹菴) 2)


  강세황의 화평은 그림의 내용을 부가 설명하여 그림의 감상자로 하여금 현장의 분위기를 생생히 느끼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김홍도가 선비들의 과거시험장의 풍경을 붓으로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이 대체로 긍정적인 시선이었듯이 강세황의 화평 역시 긍정적인 시선으로 이를 형상화하고 있다.

  강세황이 김홍도의 작품에 화평을 써 줌으로서 조선 후기 화단의 풍속화 유행에 영향을 미친 점은 보편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홍도 풍속화의 그림과 강세황의 화평에 공통으로 느껴지는 해학과 정취는 그들 간의 친밀한 사제관계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강세황은 「檀園記」및「檀園記又一本」에서 김홍도의 풍속화에 가치를 부여하고, 俗物과 俗態에 대한 긍정적인 미의식을 표명하였다. 3) 강세황은 김홍도가 공부하는 선비, 장에 가는 장사꾼, 나그네, 농부 등 일상적인 생업에 종사하는 인물들을 잘 표현하였다고 칭찬하였는데, 이것은 강세황의 시창작의 미의식과도 맞닿아있다. 강세황은 18세기 들어서 중국 명말의 小品의 유입으로 파급된 일상의 사소한 일이나 미물에 관심을 가지고 시로 표현하는 생활기록적인 문학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는 비슷한 문학적 성향을 가진 여항문인들에 비하여 비속하기 보다는 온건한 표현을 사용하였고, 생활어를 사용하여 자신을 둘러싼 주변을 기술한 것이 특징이다. 4) 강세황은 김홍도의 풍속화를 높이 평하였지만 자신은 풍속화를 전혀 그리지 않았으며 그런 시정 풍속의 문학적 이미지를 詩想으로 표현하였다.

  이처럼 농업, 수공업, 상업 등의 생업에 종사하는 기층민들의 모습, 부녀자, 기녀, 거리의 행인, 천민 등 조선 중기까지는 보이지 않던 인간군상이 18세기에 들어서서 풍속화에 표현되기 시작하였다. 18세기 후반에 유행한 풍속화는 동시기의 판소리, 고전시가 등의 문학의 경향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판소리는 전대와 당대의 일반 고소설에 비해 서술자의 설명이 줄어들고 반면에 묘사는 확대되었다. 서술자의 객관적인 묘사 중에서도 인물의 외양이나 행위에 대하여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하는데, 특히 고정된 대상 보다는 활발하게 움직이는 생명체들을 대상으로 한 역동적인 묘사가 많다는 점이 특징이다. 5)


                
<도 3> 김홍도, <무동>부분.《풍속화첩》중


             
<도 4> 김득신 , <파적도>, 《긍재전신화첩》중

장편 가사인 <한양가>에도 관원들의 옷차림새, 시전과 물품의 나열, 광통교 아래의 각색 그림들의 형상, 행군과 과거장면 등에 대한 묘사들이 상세한데, 이처럼 대상을 클로즈업하여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이나 대상에 대한 동적인 묘사방식은 조선후기 풍속화의 각 장면이 보여주는 특징과 상통한다.

  당시 사대부들이 일반적으로 속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종종 표명한 데 반하여 사대부화가인 강세황이 풍속화에 호의적이고 적극적으로 畵評까지 하면서 극찬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소한 미물의 형상에 주목하고 만물의 이치를 깨닫고자 하는 당시 명말 소품문 등의 영향을 받은 문예경향이 주된 이유였다. 이러한 경향은 강세황의 손자인 강이천의 「한경사」와 같은 풍속한시, 국문소설, 가사 등과도 밀접히 연관되지만, 패관?소품에 묘사된 俗態의 이미지와 김홍도의 풍속화 속 시각 이미지가 닮아 있음을 심노숭이나 이덕무와 같은 당대의 문인들도 빈번하게 지적하고 그 가치를 옹호하였다.

  18세기 후반의 소품문이 풍속화와 상통하는 점은 우선, 일상 생활에서 소재를 찾는다는 점이다. 뭔가를 ‘의도’하기보다는 단지 보여준다는 의식과 사소한 것, 작은 사물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 점, 사물의 미묘하고 섬세한 점을 날카롭게 포착하여 묘사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은 당시 市井의 지식층이 공통적으로 향유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특히 서얼, 중인층, 정계에서 소외된 비주류층이 19세기에 가면 더욱 적극적으로 가세하였다고 생각된다. 이들은 하층민들의 일상에서 느끼는 정감에 공감을 표현하였으며, 재능이 있으나 인정받지 못하는 여항인, 부녀자, 기생에 대한 각별한 연민을 표현하며, 奇人, 藝人들의 특이한 행적을 호기심을 가지고 기록하였다. 문학과 미술은 그 재현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언어가 재현하는 시각 이미지는 회화와 상통한다는 점을 조선 후기 풍속화와 소품문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1) 강명관, 『조선의 뒷골목 풍경』(푸른역사, 2003), pp. 160-163 ; 강명관, 『한양가』(신구문화사, 2008), pp. 125-126.


2) 貢院春曉萬蟻戰
, 或有停毫凝思者, 或有開卷考閱者, 或有展紙下筆者, 或有相逢偶語者, 或有倚擔困睡者, 燈燭熒煌人聲搖搖, 摸寫之妙可奪天造, 半生飽經此困者, 對此不覺幽酸. 豹菴. (印文) 光之 ; 정병모, 「새벽녘 과거시험장의 풍경」, 『국악누리』 2007 April Vol. 84, pp. 30-33 참조.


3) 변영섭, 『豹菴 姜世晃 繪畵硏究』(일지사, 1988), pp. 194-204.


4) 정은진, 「강세황의 「檀園記」와 「遊金剛山記」분석: 사대부 문인과 여항 화가의 교유관계를 중심으로」(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석사학위논문, 1998) p. 37.


5) 김현주, 「18세기 고전시가 · 판소리 · 풍속화의 상동성」, 『한국시가연구』11(한국시가학회, 2002), pp. 145-150 참조. 



▲ 문화재청 무안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실 김현지 감정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