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매화가 핀 설산에서 은일을 꿈꾸다

이산저산구름 2009. 12. 8. 08:49

매화가 핀 설산에서 은일을 꿈꾸다

- 정선의 <고산방학도>               이순미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고산방학도(孤山放鶴圖)>는 설산을 배경으로 곁에 시동을 둔 처사(處士)가 막 꽃이 피어나는 매화나무에 기대어 하늘로부터 날아드는 백학을 바라보는 장면을 담고 있다. 북송대 항주의 시인 임포(林逋, 967~1028)가 서호(西湖)의 고산에서 은거했던 장면을 그린 것으로 이런 그림을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라 한다. 이 그림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요소들 즉, 맑고 깨끗한 임포의 모습, 매화와 학 등의 생물들, 배경을 이룬 서호의 고산 등은 오랜 시간이 경과되면서 의미와 상징성을 지니게 되었는데, 동양의 선비들은 이들에게 자신의 이상적인 삶을 투영시키곤 하였다. 존경받았던 임포(林逋, 967~1028) 등의 선인들이 거처했던 장소는 서로 연결되어 이상지가 되었으며, 아울러 생물의 자연적인 특성에 부여된 상징성을 지닌 매화 등은 그들의 고결한 삶의 이상을 더욱 강조하였다. 우리는 이 그림을 통해 동양 선비들이 그림에 무엇을 담아 표현하고자했으며, 그들이 추구했던 이상적인 삶은 무엇이었는지 살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이 그림에서 우리는 고산 바로 옆의 서호와 주인공인 임포를 주목할 수 있다. 서호 일대는 아름다운 경치로 인해 일찍부터 관심받았던 곳이며, 이곳은 맹호연(孟浩然, 689~740)과 백거이(白居易, 772∼846), 소식(蘇軾, 1037~1101) 등 전통적으로 존경받았던 문인들의 은거지였기에 더욱 유명하였다. 설산을 배경으로 서있는 주인공 임포는 항주에서 활동했는데, 세속에서 물러나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서옥을 짓고 평생 청빈하게 살았기에 고산처사(孤山處士)라 불렸다. 그는 고산에 매화를 심어놓고 은거하면서 학과 사슴 한 마리를 데리고 있었는데, 술을 마시고 싶으면 사슴의 목에 술병을 걸어 술을 사러 보냈고 손님이 오면 공중에서 학이 울어 이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은 집 주변에 매화나무를 심어 매화를 감상하고 시를 읊으며 세월을 보냈다고 하여 그를 “매처학자(梅妻鶴子)” 즉, 매화를 부인으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았다고 하였다. 임포 등 명사들과 서호 일대 승경들지들은 서로 연결되어 문학 등에 지속적으로 애호되다가 점차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장소가 되었으며 점차 일정한 유형을 이루었고 그림의 주제로도 즐겨 다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그림의 배경을 이룬 눈 쌓인 산은 속세를 떠나 은거하고자 하는 문인들의 고아한 뜻을 드러내는데 즐겨 사용되었다. 속세의 더러움이 하얀 눈 속에 감추어질 수 있었고 눈 덮힌 적막함은 은일처사의 쓸쓸한 정감을 보다 더 잘 나타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외에 추운 눈속에서 꽃을 피워 지조를 상징하는 군자의 꽃인 매화는 주인공 임포와 관련해 군자의 의미 이외에 은일의 의미가 부가되었다. 특히 임포의 「산원소매(山園小梅)」중  “모든 꽃들 다 졌는데 홀로 아름다워, 풍정을 독점하고 정원을 향하였네.(衆芳搖落獨暄姸 占盡風情向小園) 맑고 얕은 물 위에 성긴 그림자 가로 비끼고, 황혼 녘 달빛 속에 은은한 향기 떠도누나.(疎影橫斜水淸淺 暗香浮動月黃昏)”라는 유명한 매화 시구는 많은 선비들에게 회자되었기에 은일처사와 어울리는 고결한 의미가 매화의 뜻에 부가되고 강조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장수를 상징했던 신선의 새인 학 역시 임포의 고사로 인해 청빈한 은자의 벗이 되었다. 이렇듯 <고산방학도>는 임포라는 명사와 서호라는 장소 그리고 지조를 상징하는 매화 등이 한 화면에 결합하여 은일처사의 고아한 삶을 잘 드러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임포나 서호 등지는 조선 선비들에게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임포는 은거를 꿈구는 은일지사의 이상이었고 <고산방학도>의 배경이었던 아름다운 서호 일대 역시 승경처로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조선의 선비들은 중국 서호 일대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서울의 승경처였던 마포, 서강, 양화 등지에서 찾아 이곳을 서호라 부르며 이곳에서 뱃놀이하고 유람하며 풍류를 즐겼다. 또한 임포와 서호 등의 주제 역시 시문을 비롯해 그림의 주제로 즐겨 다루었다. 그림으로는 고산에서 매화를 감상하거나 서호에서 뱃놀이하며 학을 맞이하는 ‘방학’장면을 비롯하여 매화를 감상하는 ‘관매(觀梅)’, ‘상매(賞梅)’, 매화가 만발하는 가운데 은거하는 선비를 묘사한 ‘매화서옥(梅花書屋)’ 등이 그려지고 감상되었다. <매화서옥도>가 조선 말기에 크게 유행했다면, 고산에서 학을 맞이하는 정선의 <고산방학도>처럼 고산과 은일자 등의 주제를 강조한 장면은 조선 전기부터 즐겨 그려졌고 조선 중기에 크게 유행하였다. 특히 조선 중기에는 문인들이 어부나 초부 등에 자신을 의탁하길 좋아했던 시대적 경향이 강했기에 이에 편승하여 더욱 선호되었다. 이 시기의 <고산방학도>로는 조세걸(曺世杰)과 홍득구(洪得龜)의 작품으로 전하는 것들이 있다. 홍득구의 작품처럼 설산 등 고산의 배경은 생략되었고 매화꽃이 핀 나무에 기대 날아드는 학을 감상하는 주인공 임포와 매화나무 등 주제만이 크게 부각되어 표현되었다.

 
이후의 작품에서는 점차 배경인 고산의 비중이 커지며 눈 싸인 산으로 표현되는데, 이것은 속세와 별개인 장소임을 드러내고 동시에 은일자의 쓸쓸하고 적막함을 강조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17세기 중기에서 18세기 초에 활동했던 정유승(鄭維升)의 <고산방학도>는 설산을 배경으로 주인공이 굽어진 매화에 살짝 몸을 의지한 채 시동과 더불어 창공에서 비상하여 내려오는 학을 바라보고 있다. 인물의 시선은 내려오는 학과 서로 교차하고 있다. 괴이하게 솟은 원경의 주봉과 먼 원산처리 등 구도나 세부표현에서 중기 화풍이 강하게 남아있지만 전경의 바위나 주봉의 주름처리 등에서 조선후기의 새로운 화풍이 간취된다. 조선후기에는 고산을 배경으로 한 작품 이외에 서호에서 뱃놀이하며 학을 맞이하는 장면도 그려졌으나 정선의 작품 등을 통해 고산을 배경으로 한 고산방학도의 전통이 강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정선의 <고산방학도>는 전체 구성은 물론 전경의 둔덕과 배경의 주봉 등에 의해 화면이 크게 나누어진 것과 지그재그식으로 옮겨가는 시선처리 등에서 정유승의 작품과 유사함을 볼 수 있다. 정선은 매화나무나 인물 등에 시선이 집중되도록 배경의 잡목 등을 생략해 구도를 단순화시켰고, 인물이나 매화 등에 채색을 가해 화면에 생기를 부여하였다. 속세의 더러움을 모두 덮어버린 설산에서 평생 청빈하게 살았던 임포의 모습을 통해 깨끗하게 살며 선비의 강직한 지조를 지키고 싶었던 마음을 담고자 했을 것이다. 우리는 속세를 초월한 듯 맑게 표현된 주인공의 모습에서 고아하게 살고자했던 선비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동양의 선비들은 관직에 종사하여 뜻을 펼치고 그렇지 못하면 초야에서 학문과 소양을 닦으며 자신의 지조를 지키고자 하였다. 그래서 상징성 강한 인물과 생물 등에 자신을 투영시켜 표현하길 좋아했다. 현실의 부조리를 다 덮어버린 추운 설산에서 군자의 모습을 드러내는 상징성 강한 매화와 평생 청빈한 모습으로 뜻을 펼친 은자의 모습을 결합해 자신의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 잘 드러나길 원했다. 이런 선비들의 바람이 잘 나타난 <고산방학도>는 초야에 은거하며 자신의 뜻을 지키고자했던 이상적인 은일도라고 할 수 있으며 선비들이 자신을 투영해 자신의 이상적인 삶의 방향성을 잘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문화재청 김포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실 이순미 감정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