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동양제철화학의 창립자이었던 고 이회림 회장은 미술품애호가로서 일생동안 수집하였던 미술품을 사회에 환원하였다.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천이었다. 우리의 문화재를 사랑하여 오래전부터 수집하던 그분은 2001년 서울옥션을 통해 그분의 존재를 드러내셨다.
그날의 가장 하이라이트였던 출품작인 겸재 정선의 작품 「노송영지도」를 7억의 금액에 흔쾌히 낙찰 받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축하인사를 받으며 그 즉시 언론에 낙찰자 본인을 공개하였다. 큰 금액에 낙찰받는 경우 본인을 숨기는 것이 통례였던 시절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으며 평소에도 건강하고 투명한 정신을 가진 훌륭한 기업인으로 기억되었다. (겸재의 노송영지도 103×147cm)
4년 후 그는 그동안 애써 수집한 8000여점의 유물과 미술관을 기증하였다. 많은 이들의 칭송이 뒤따랐으나 인천시에서 대학교수와 박물관 연구원과 함께 실시한 평가에서 안타깝게도 상상치 못할 많은 양의 작품들이 위작으로 판명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용어가 우리의 미술시장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가짜에 너무 만연되어 범죄에 대한 죄의식마저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감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속고 속이고 살아가고 있는 현실 속에 양심적인 감식안을 가진 사람들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몇 년 전 이중섭 그림의 가짜 소동으로 세상은 또 한 번 떠들썩했었다.
그 당시 세미나에서 어느 감정가가 “나는 목숨을 걸고 감정을 합니다.” 라고한 말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갖가지 협박전화에 시달리던 어느 날은 “당신 딸이 참 예쁘더라” 라고 하는 심각한 협박까지 들었다는 비애 섞인 이야기를 하면서 감정가의 비애를 털어놓으며, 성실하고 양심적인 감정가들은 목숨과 명예를 담보로 해야 한다는 현실의 비정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이중섭의 물고기와 아이-진품) (위품)
비단 우리나라뿐 이겠는가?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가짜 사건들은 끊이지 않고 있어 왔다. 일본에서는 1865에서 2005년 사이에 발생했던 가짜 미술품 사건 중 큰 사건을 위주로 기록한 책이 발간되었을 정도이다.
與野冬彦의 『?物 年代記』에 ‘외화벌이 위조고도자’라는 소제목 하에 「나라이름만큼은 아주 멋 떨어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일본인 납치 등 국가적 범죄를 ...
(중략)... 이번에는 유구한 전통을 가진 요업을 악용하여 위조고도자기(분청사기. 조선백자. 청화백자 류)를 대량생산 하여 중국인 중개인들과 결탁하여 일본시장등지에 유통시키고 있으며 또한 북한계의 고요지로서 유명한 함경남도의 영흥(백자와 진사로 유명한 요지), 함경북도의 회령(회령.-같은 민간요로서 철분이 많이 함유된 태토로서 해삼색깔의 유약. 흑유로 매력적인 자기를 생산하였던 경원. 부령. 경성. 명천. 내점 등). 평안남도의 성천이나 평안북도의 희천(암록색의 청화백자로 이름이 알려진 가마)등의 위조자기를 제조하여 유통 시키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위조품의 제작, 유통과 관련되는 연결하는 위조 산업은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언제나 함께 동행 하리라고 본다. 또한 위조의 방법은 감정을 능가하기 위하여 부단히 발전(?)될 것이다.
1976년 신안 앞바다에서는 엄청난 양의 송?원대 자기들이 발굴, 인양되었다. 그 후 그 일이 세상에 공개되자 ‘해저 유물에 대한 인위적 경년변화’라는 새로운 위조 수법이 등장하게 되었다.
바다 속에 칠 팔 백 년이나 묻혀 있다가 발굴된 도자기 표면은 여러 가지 패각류들로 뒤덮혀 있었다. 위조 전문가들은 이러한 점을 착안하여 대만이나 홍콩 등지에서 송?원대의 방고작(신작)들을 구매하였다. 그리고는 신안 앞바다에서 인양되었던 도자기들과 같은 양식의 도자기 표면에 패류의 핵을 심어 한두 해 정도 양식 한 뒤 건져내었던 것이다. 도자기 표면에는 많은 조개껍질들이 엉켜 붙게 되었고 마치 수백 년 전의 유물인 것처럼 사람들의 눈을 속여 유통시켰다. 안타까운 일은 최근까지도 중국과 그리스에서는 이 같은 위조가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목포에서 인양된 수중유물 사진)
지금 미술시장은 여러가지 요소들이 서로 맞물리면서 끊임없이 달려가고 있는 형상이다. 미술품 수집가는 좋은 작품을 구하기 의해 전력을 쏟고, 불순한 위조자와 그 관련자는 이들의 욕구를 이용하기 위하여 불철주야로 뛰어 다니고 있다. 언제나 올바른 감정을 위해 노력하는 감정가들은 있다. 그러나 많은 부분, 성실한 감정가가 제 역할을 못한 채 순수한 수집가들은 금전적 손실과 모멸감을 느끼고 있다.
현재의 미술시장에서는 이처럼 수집과 감정의 역학 관계 속에서 최악의 感情을 낳게 된 사례는 수 없이 많다.
일본의 出川直樹는 『古陶磁 眞?鑑定と鑑賞』에서 ‘진품과 완전히 같은 위조품은 불가능 하다. 극히 적은 일부분에서라도 모순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 위조품의 본성’이라 하였다.
「한 점의 모순점도 없는 안품(가짜)은 있을 수 없다. 완전히 진본으로 보이는 안물(가짜)은 없다. 그것은 아직 거기에 존재하는 모순점을 발견하지 못하였을 뿐이다. 도자기는 수십 수백이라는 요소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으로 안작이 그것들 모두를 완전히 닮기는 불가능 하며 만약 99%까지 베꼈다 하드라도 100% 진품과 똑 같은 안품은 없다. 그러므로 어떤 때는 그 1%의 모순점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엄격한 상황에 놓이는 경우도 있다」라고 하였다.
간혹 조사차 중국의 유명한 골동시장에 가면 싸구려 가짜는 외부에 진열해 놓는다. 그러나 진짜 같은 가짜는 깊숙한 금고에서 꺼내 보여주곤 한다. 이처럼 한눈에 구별하기 쉽지 않은 가짜는 가격도 비싸다. 더러는 감정을 위한 자료로 쓰기 위해서는 가짜를 수집하기도 한다. 어느 수집가는 좋은 작품을 쓰다듬으며 즐긴다고 하지만 나는 가짜를 감상(?)하며 깨뜨려도 보고 때로는 더 진짜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변조해 보기도 한다.
백자상감 연당초문(진품) 백자상감 연당초문(변조품:중국에서구입) 부산시립박물관 소장품 진품백자에 상감을 변조하여 수리
우리의 미술사 인문학에서는 그 연구 대상이 진품에 국한되어 위작인 경우에는 연구대상에서 제외 되고 있다. 그러나 모순점이 1%도 없는 진품을 감정하려면 가품에 대한 1%의 모순점을 학술적으로 해명하기 위해 비교연구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鑑定이 感情을 낳는다는 악설은 추방되어야 한다. ‘나는 목숨을 걸고 감정을 합니다’ 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99%의 순금 같은 감정가들과 이러한 감정의 자세가 올바로 자리매김 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절실히 바래지는 시대이다. ▲ 문화재청 평택항국제여객터미널 문화재감정관실 김성한 감정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