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조선왕조의 결정체- 종묘

이산저산구름 2008. 12. 23. 10:59

조선왕조의 결정체- 종묘

 박지은


사상에 의해 세워진 나라가 있었다.

비록 외국의 사상이었지만 그것을 순전히 받아들이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 사상 덕분에 꿈을 꾸었고 사상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지금으로부터 600여 년 전.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길고 화려했던 고려시대의 귀족정치를 끝내고자 했던 성리학자들이 바로 조선개국의 진정한 주인공이었다.
비록 그들이 목숨을 걸고 만들어냈던 조선왕조는 고려왕조처럼 500여년 만에 막을 내렸지만 그 담박한 아름다움은 번잡한 21세기에 숨어있는 진주처럼 고요히 빛을 내고 있다. 그 진주가 많고도 많지만 그 중 하나를 뽑으라면 난 주저하지 않고 종묘를 꼽는다. 유네스코라는 서양의 문화단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까닭이 아니다. 한 나라를 이룬 왕조가 가장 중시했던 일이 종묘사직에 제사를 드리는 곳이었기 때문만도 아니다. 단촐한 맞배지붕, 거대한 나무들이 뒤엉켜 도심의 숲을 이루고 있는 곳, 지붕의 선이 산과 나무를 넘지 아니하고 자연 앞에 겸손히 엎드려 있는, 조선을 다스리던 사상이 공간과 시각적 효과로 구현되어 있는 곳이기에 그렇다.
종묘의 입구는 우리가 사는 21세기를 보여준다. 종로 3가에는 금은방들이 줄을 이어 서있다.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이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기 마련이다. 종묘 앞 광장에 이르면 노인들이 모여 남은 생을 지내는 모습이 펼쳐진다. 궁벽한 처지의 도연명이 국화를 사랑했다지만 이들은 도박에 몰두하고, 술을 마시고, 싸움을 한다. 퇴락했던 조선 말기의 모습을 당신들의 삶으로 재현하는듯하여 가슴이 아프다.
나무와 노인들의 숲 때문에 종묘의 문이 잘 보이지 않으니 눈을 크게 뜨고 찾을 일이다. 하마비를 겸허히 지나니 작은 문에 이른다. 문패조차 없는 이 문이 바로 종묘의 정문인 창엽문(蒼葉門)이다. 낯설다. 서울의 사대문을 비롯하여 궁궐의 작은 협문에 이르기 까지 문패 없는 문이 없고 이름 없는 건물이 없는데, 사묘도 아니요, 한 나라의 종묘인 이곳의 외대문에는 문패가 없다. 보통 경서에 의거해 짓는 이름의 유래도 알 수 없다.

종묘의 외대문인 창엽문.
계단이 아스팔트로 묻혀있다.

이 문의 이름을 지은 정도전에게 이 문의 의미를 묻고 싶다. 정도전, 한미한 가문, 서얼의 자식으로 태어나 성리학이라는 칼을 품고 이성계로 하여금 역성혁명을 하게 만든 조선 개국의 주역. 그가 바로 사상으로 나라를 만든 사람이다. 그 뿐인가? 북악산을 주산으로 하는 경복궁의 위치도 그가 정한 것이요, 그 안의 건물 하나하나, 마치 갓 난 자식의 이름을 짓듯 정한 것이다. 그야말로 조선이라는 교향곡의 설계자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권을 움켜쥔 자들은 정권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자신들이 죽인 정몽주는 불멸의 충신으로 문묘에 배향하고, 정전과 종묘사직을 배치한 정도전은 나라를 배반한 변절자로 매도하여 죽였다.
창엽문의 뜻과 그 유래는 무엇일까? 왕조의 후대가 푸르른 잎처럼 번성하라는 뜻이 있으리라는 추측 뿐. 결국 망국의 백성들은 창엽문의 ‘창엽’을 파자(破字)하여 창은?,八,君, 즉 28대의 왕을, 엽은?,世,十,八하여 28세에 끝날 왕정을 정도전이 예언한 것이라는 이야기만 떠돌게 하였다.
식민지 시대, 일본은 창엽문 앞길을 북돋워 계단을 묻어버렸다. 지대가 낮아 가산(假山)까지 조성했던 이곳의 지대를 낮춘 것이다. 사직단을 공원으로 전락시킨 것과 같은 행태이다. 엄숙함을 느낄 수 없어 너무 아쉽다. 하지만 문 안으로 들어서면 완전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생명력을 다해 하늘을 찌를 듯 뻗어있는 나무가 무엇보다도 인상적이다. 넓적한 잎이 떡갈나무가 눈에 많이 띄인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엔트들이 뿌리를 내린 것 같다. 땅으로 눈을 돌려 내가 밟은 곳을 살핀다. 헙수룩한 석공이 투덕투덕 다듬은 돌길. 구획이 셋으로 나눠져 있는 삼도이다. 가운데는 신, 왼편으로는 왕이, 오른편에는 세자가 가는 길이나 내 눈에는 혼령인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이 나란히 손잡고 가는 정다운 길로 보인다. 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삼도에 올라선다. 아이들은 신나게 달음질을 한다.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우주원리를 구현한 연못을 바라보는 망묘루가 있다. 임금님이 머물기엔 너무나도 죄송스러울 만치 소박한 건물이다. 하지만 단 하나 허락된 사치랄까? 누각의 창은 5월의 신록을 담고 있는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제를 올리기 전 임금이 머물며 종묘사직을 생각한다는 망묘루.
도서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임금님이 예를 올리기 위해 걸었던 길을 따라가 본다. 어숙실(御肅室). 왕과 세자가 삼가 자신을 정결케 하는 방이다. 참으로 검박하고 실용적인 공간이다. 건물 왼편에 장엄한 정전이 그림처럼 들어앉아 있다. 정전으로 통하는 작은 협문으로 다람쥐가 쪼르르 지나간다. 여기서 부터 임금님이 밟는 박석이 깔려있다. 길게 늘어선 정전 담을 끼고 걸어간다. 소나무들이 나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 같다. 소나무도 나도 엄숙한 맘은 하나다.

박석이 곱게 깔려 있는 정전 입구.
나무들이 호위하는 것 같다.

발을 들어 정전으로 들어선다. 웅장한 입구, 붉은 열주의 회랑. 그 뒤에 가려진 모습이 궁금하다. 몸은 왼편으로 틀면 갑자기 터지는 시야에 엄숙함으로 눌러왔던 내 마음도 터진다. 이곳은 한바탕 돌로 이루어진 큰 마당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월대엔 아무런 장식이 없다. 눈을 돌리면 장엄하게 늘어선 붉은 열주가 다시 내 숨을 막는다. 우주의 무한한 공간 앞에 역사를 이어가는 왕조의 구성원들이 열을 지어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시공간의 상징과도 같은 이곳에 아이들이 뛰어다닌다. 그들의 천성일까, 아님 월대가 아이들을 뛰게 하는 걸까? 장엄한 우주와 역사의 경계에서 평범한 아이들이 뛰어논다.

다듬어 지지 않은 너른 월대,

붉게 늘어선 열주는 조선왕조의 시공간을 상징한다.


칠사당과 공신전을 지나 영녕전(永寧殿)으로 향한다. 정전에 비해 그 규모가 작고 위엄성이 떨어지는 영녕전은 제위기간에 문제가 있었던 왕들을 모시는 곳이다. 태조 이성계의 사대조(四代祖)를 포함하여, 실력자였던 동생 태종 이방원에게 정권을 이양한 정조, 호랑이 같았던 삼촌 세조에게 폐위당한 단종까지 온갖 정권의 뒤안길을 살았던 왕들의 영혼이 모셔져 있는 곳이다. 순탄치 않았던 삶을 살았던 그들. 그래서 오래 평안하시라고 영녕전인가보다. 정전에 비해 작고 아늑한 영녕전은 오래 머물고 싶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정전에 비해 규모와 위엄성이 떨어지는 영녕전.
하지만 그만큼 친숙한 공간이다.


하지만 내 자리가 아니기에 문을 나선다. 영녕전 뒤에 창경궁으로 통하는 문이 있다. 창경궁과 종묘는 하나로 이어진 공간이었지만 일본이 길을 내버려 다리를 건너 가야한다.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식민지 시대 일본이 별 해괴한 짓거리를 다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맥을 끊기 위해 뚫은 길을 율곡로라 이름 하였으니 이 길에 명칭을 붙인 사람은 율곡선생께서 얼마나 기분 나빠하실지 파주에 가서 여쭈어볼 일이다.
그 어떤 왕좌도, 그 어떤 왕조도 영원했던 적이 없다. 이곳이 아름답지만 내가 여기서 영원히 머물 수는 없다. 길을 나선다. 내가 영위하는 시공간으로 돌아간다.

다시 번잡한 세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