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안도현 시인과 함께하는 화암사 그 고즈넉한 향연 속으로...

이산저산구름 2009. 1. 15. 15:14

안도현 시인과 함께하는 화암사 그 고즈넉한 향연 속으로...
다가갈수록 생각이 깊어지는 화암사 가는 길
누군가가 손을 잡고 어디론가 데려 간다고만 한다면 그 길을 통해서는 어느 곳을 가는지를 알 수가 없다. 가만히 눈을 두리번거리면 아직까지 곶감을 잘 말려둔 시골의 정취가 눈에 들어오는 외길을 그저 마음 따라 발을 움직여 가는 것만 같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면 그 따뜻한 시골의 고요가 그저 그 고요 속으로 발길을 끄는 것만 같다.
1년간 하도 말을 많이 해서 12월에는 산으로 들어가 침묵한다는 인디언들처럼 시인은 화암사를 찾아 완주군의 불명산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말을 많이 해야만 하는 한 해의 시작이지만 아직까지 시인은 낙엽이 젖어있는 그 길을 걸으며 겨울과 시작, 그 만남에 대해 깊은 생각에라도 빠져있는 것 같았다.
하늘은 그다지 맑지 않았다. 오히려 안개와 구름이 자욱한 것이 화암사를 찾아가는 그 오묘함과 신비로움을 더해주고 있었다. 가도 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내는 그 절에 대해 시인은 ‘숨겨놓고 보고 싶은 애인’ 같은 절이라 한다. 그 애인은 숨겨져 있기에 차를 저 아래 두고, 사람 홀로 걸어가야 하며, 바위가 그대로 계단이 된 다듬어지지 않은 길을 스스로 만들며 가야 하는 길이었다. 그 길의 절정은 벼랑. 다행히 애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철제 계단이 있었으니 그 계단을 넘어서면 이제 기다리던 님을 만나게 된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화암사는 현재 조계종 제17교구의 말사이며 창건 시기는 694년(진성여왕3)으로 추정된다. 일교국사가 창건하여 1425년(세종7) 해총海聰이 부분적인 중건 중수를 했던 천년이 넘는 숨결을 지키고 있는 화암사. 그 안의 극락전은 1981년 해체 수리 시 발견된 종도리의 묵서명에 의해서 1605년(선조38)에 중건된 것으로 밝혀졌고, 우화루는 1611년(광해군3)에 세워졌다고 한다. 여기에서 수도했다던 원효, 의상대사, 설총의 흔적이 어딘가에 남아있을까? 그들에게 화암사는 어떠한 곳이었을까. 이제 막 태어난 잘 생긴 절이었을까? 이제는 세월에 따른 모진 인내의 시간을 지나 오늘까지 꼿꼿이 지조를 지키고 있는 화암사는 시인의 ‘잘 늙은 절’이라는 표현이 구성지게 맞아 떨어지고 있다.

화암사와 시인의 재회, 그 애틋한 만남
잘 늙은 절 ‘화암사’ 는 절이라는 분명한 ‘寺’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집만 덩그러니 남겨져 그 자취를 알 수도 없는, 흰둥이가 금방이라도 꼬리치며 나타날 것 같은 영락없는 외갓집의 정취이다. 절이라면 있을 법한 그 여러 문들도 없고 조금은 웅장하게 등장한 우화루 옆의 작은 구멍을 통하기만 하면 세상살이 걱정은 이미 오는 길의 폭포 속에 던져진 듯 맑은 기분으로 새로운 세상에 빠져든다.
입구를 통과하면 하늘만 보이는 작은 ‘ㅁ’자 모양의 절이 시인을 받아들인다. 그 동안 보고 싶었다는 인사라도 하듯 살랑 거리는 바람이 볼에 스치며 이야기를 건넨다. 조금은 폐쇄적인 듯한 화암사의 구조는 기묘하게 자연과 맞닥뜨려져 절의 어느 곳을 바라봐도 하늘을 바라보게 만든다. 시인은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詩’를 쓰는 일 외에 보낸 헛된 시간들을 이제 시간이 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화암사’에서 내려놓는다. 적묵당 툇마루에 앉아 우화루(보물 제662호)와, 극락전(보물 제663호)을 바라보는 눈길이 애인을 바라보듯 그저 사랑스럽고 따뜻하다. 때마침 지나가는 비로 나무에 톡톡 떨어지는 그 빗소리가 운치를 한 층 더해주고 있으니, 오늘 화암사와의 만남은 애틋하기 그지없다.
꽃이 비가 되어 내린다는 우화루의 목어도 소리 없이 시인을 반기고 있었다. 시인은 화암사를 천천히 둘러본다. 우화루의 1층 기둥은 세상과 연결되어 있지만 2층은 경내에서 그 속을 전부 드러내며 땅과 거의 같은 높이에 지어져 드나듦의 부담을 줄여주고 있다. 꽃비가 내리면 그것을 맞고만 있어도 행복할 것 같은 우화루의 매력은 화암사의 자랑이다. 시선을 돌려 극락전을 바라보니 빛깔이며 자태며 옛 숨결을 고스라니 간직하고 있다. 어디 내놓아도 빼어날 것을 이렇게 작은 절 안에서 보고 있자니, 시인은 그것이 내것 인양 자랑스럽다. 그중 시인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극락전의 처마 밑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우리나라 유일의 ‘하앙식’ 건축구조가 그것인데, 처마의 무게를 안정적으로 받치기 위해 부재를 하나 더 설치한 것이다. 그 끝에는 앙증맞은 용무늬 장식이 무척이나 정교하다. ‘하앙’ 구조는 중국과 일본에서는 흔한 구조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것이다. 일본은 화암사 극락전이 모습을 드러내니 그들이 직접 중국의 건축술을 수입했다는 주장을 덮어 두었다. ‘하앙’ 덕분에 처마가 훨씬 깊어진 극락전에 좀 전에 지나간 비를 보낸 따뜻한 햇살이 비추니 이곳이 극락정토는 아닐까.
경내를 벗어나 산신각을 넘어서 화암사의 유래가 적혀있는 중창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4호)를 만나러 가는 곳은 불명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명당자리였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니 산들이 어깨를 마주하고 있다. 시인에게 그곳은 해질녘을 바라보기 위해 찾았던 어린왕자의 그 장소와도 같은 느낌이었다. 시인에게 겨울의 화암사는 군불을 지피고 있는 따뜻한 안방이 기다릴 것만 같은 곳, 구들장에서 고구마를 먹으며 민화투를 치고 싶은 따뜻한 절집이란다. 얼레지꽃이 한창인 4월과, 단풍이 절경을 이루는 가을에 화암사의 매력이 넘치지만, 겨울의 화암사에는 이런 매력이 숨어있다.
시인은 멀찌감치서 화암사를 다시 바라보니 화암사 자체가 아주 커다란 바위 위에 한 장의 꽃잎 같다는 말을 내뱉는다. 비밀스러운 길을 따라 올라온 산 위에 갑자기 등장한 평지, 그 곳에 자리 잡은 평화로운 화암사. 이곳에 절을 어떻게 지었을까, 심히 기이하기까지 하다. 그야 말로 ‘불명산佛明山’ 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절절히 그리던 화암사와의 작별
시인에게 문화재는 오래되고 귀해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바쁜 세상 속의 사람들에게 오늘의 우리네가 살지 않았던 시간, 오랫동안 묵은 시간을 문득문득 떠올리게 하며, 옛 숨결을 느끼는 동시에 오늘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 우리 곁에 함께 존재하는 문화재라고. 문화재가 놓은 자리와 문화재 자체는 인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해도, 우리의 문화재는 자연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미가 있다고. 시인은 자신만의 화암사를 돌아보며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문화재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이야기했다. 오래도록 화암사 적묵당에 앉아 절도 바라보고 하늘도 바라보는 시인은 문화재를 삶의 일부로 보는 것 같았다.
다시금 애인과 작별하고 돌아서는 길. 이번엔 철제 계단이 아닌 옛 길로 돌아 내려가 본다. 시인의 『연어』에 등장하는 은빛연어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쉬운 길이 아닌 폭포를 넘어서서 가야하는 연어들만의 길을 가는 것처럼, 쉽게 만들어 놓은 길을 거부하고, 가파르고 미끄러운 옛길을 통해서 내려가면 시인만의 길을 찾으리라. 이 길로 세상에 내려간다면 이제 조금은 더 강해지리라. 언제든 다시 찾아와서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화암사는 시인의 등 뒤로 작별인사를 하며 시인을 세상에 내어준다.

시인 안도현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서 시 ‘낙동강’으로 데뷔해 올해로 문단 28년을 맞았다.
원광대 국문학과를 나온 그는 한 때 국어교사로 부임, 교직생활을 시작했으나 1996년 전업 작가로 돌아선 후 현재는 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에 있다.
주요 수상 내역으로는
1996년 제1회 시와 시학 젊은 시인상, 1998년 제13회 소월시문학상, 2000년 원광문학상, 2002년 제1회 노작문학상 등이 있으며, 주요작품으로 ‘서울로 가는 전봉준’(1985), ‘모닥불’(1989), ‘그대에게 가고 싶다’(1991),‘외롭고 높고 쓸쓸한’(1994), ‘그리운 여우’(1997), ‘바닷가 우체국’(1999),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2001) 등의 시집과 ‘연어’(1996), ‘짜장면’ 등 어른을 위한 동화집, 산문집 ‘외로울 때는 외로워하자’(1998), 동시집 ‘나무잎사귀 뒤쪽마을’(2007년) 등이 있다.
⊙ 글ㅣ김진희   ⊙ 사진ㅣ최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