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지리산 고찰 부도여행

이산저산구름 2008. 6. 3. 10:58
산은 깊고 세월은 묵어 부도에 꽃이 피네, 돌꽃 피네, 지리산 고찰 부도여행
여행자에게 지리산은 보고寶庫이다. 산과 강, 자연과 사람, 옛 것과 요즘 것이 공존하는 이 산자락을 돌아보는 일은 산의 골만큼이나 무궁무진한 흥미로움이다. 산자락 곳곳에 들어선 지리산의 고찰들은 랜드마크이자 지역문화의 발원으로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하동 쌍계사, 구례의 연곡사, 화엄사, 남원의 실상사까지 이르는 지리산자락의 사찰여정은 오랜 세월의 흔적들과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특히 이곳 산사에는 통일신라 말 변혁기에 새로운 불교사상을 전파한 선사들의 부도가 집중적으로 모여 있어 가히 부도 박물관이라 부를 만하다.

부도의 참멋과 마주하고 싶다면 연곡사로 가라 - 연곡사 동부도
한적하고 소탈한 느낌의 연곡사는 화엄사와 함께 지리산에 가장 먼저 들어선 사찰로 알려져 있다.
8세기 중엽 통일신라
경덕왕 때 연기조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데 현재 남아있는 유적들을 보면 신라 말 고려 초에 창건된 절로 추정된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등 전란을 겪으면서 절의 규모가 축소되었다. 고찰의 풍모는 조금 위축되었지만 이곳에는 우리나라 부도들 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기품 있는 부도가 자리하고 있다. 연곡사 동부도(국보 제53호)다. 대웅전 뒤편 고즈넉한 숲에 자리한 동부도는 신라말기에 만들어졌으나 누구의 탑인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다. 다만 도선국사(827~898)의 부도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동부도의 보존 상태는 천년이 넘는 세월을 무색케 할 정도로 온전하다. 상륜부에서 지붕돌을 거쳐 몸돌, 지대석에 이르기까지 조각 하나하나가 정교하고 섬세하게 살아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부도 중 화순의 쌍봉사 철감선사부도와 함께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동부도 옆 산길로 조금 오르면 또 다른 국보급 부도를 만날 수 있다. 북부도(국보 제54호)다. 구조나 형태, 크기, 조각의 내용 등이 동부도와 흡사하다. 조금 더 드라마틱한 관람순서를 매기자면 서부도, 북부도, 동부도 순이다. 북부도의 제작 시기는 동부도보다 약간 뒤인 고려초기로 추정되고 있다. 서부도(보물 제154호)는 절의 서쪽 숲, 북부도에서 약 100m 내려온 곳에 자리하고 있다. 서부도는 주인을 모르는 동부도, 북부도와 달리 주인이 명확하다. 몸돌에 새겨진 글귀 때문이다. 서산대사의 제자인 소요대사의 것으로, 역시 팔각원당형의 부도이지만 동부도나 북부도에 비해 둔탁한 느낌이다. 연곡사에는 부도 외에도 현각선사탑비(보물 제152호), 동부도비(보물 제153호), 삼층석탑(보물 제151호) 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호젓한 숲 속에서의 보물찾기 - 쌍계사 부도

쌍계사는 지리산 남쪽 하동 땅, 화개장터와 십리 벚꽃길로 유명한 화개동천의 안자락에 자리해 있다. 신라 성덕왕 23년(724) 의상대사 제자인 삼법화상이 창건했다. 삼법은 당나라에서 유학한 승려인데 어느 날 꿈에 “육조 혜능의 정상을 모셔 삼신산(금강산, 한라산, 지리산) 눈 쌓인 계곡 위 꽃피는 곳에 봉안하라” 는 꿈을 꾸고 귀국하여 지금 쌍계사자리에 사찰을 지었다. 그래서 쌍계사의 현판은 삼신산 쌍계사로 적혀있다. 쌍계사는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인조10년(1632) 벽암선사가 중건하면서 팔영루와 요사채, 대웅전이 중심을 이룬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조선시대 산지사찰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쌍계사 부도(보물 제380호)를 만나러 가는 길은 호젓한 산길을 따라 불일폭포 등산로로 이어진다. 부도는 기단 위에 탑신부, 상륜부를 차례로 올려놓은 통일신라 양식의 팔각원당형 부도이다. 대웅전 앞마당에 자리한 진감선사대공탑비(국보 제47호)와 짝을 이뤄 진감선사 부도로 알려져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고즈넉한 숲이 어우러져 산사부도의 운치를 제대로 느껴볼 수 있다.

평지에 얹혀진 지리산 사찰 실상사, 증각대사와 수철화상의 부도
실상사는 신라 구산선문 중 가장 먼저 문을 연 사찰이다. 신라 흥덕왕3년(828) 증각대사가 창건하였는데 2대조인 수철화상을 거쳐 3대조 편운에 이르러 절이 중창되고 선풍을 크게 떨쳤다. 지리산의 고찰들 중 유일하게 평지에 터를 얹고 있다.
증각대사부도(보물 제38호)는 실상사를 창건한 증각대사의 부도이다. 9세기 후반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증각대사응료탑으로 불린다. 증각은 스님의 시호이고 응료는 부도의 이름이다. 극락전 뒤 켠 사찰의 가장 호젓한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 팔각원당형 부도로 탑신 몸돌에는 문비와 사천왕상이, 지붕돌 밑에는 비천상이 조각되었다. 전형적인 팔각원당형 부도의 조각과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단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수철화상부도(보물 제33호)는 증각대사에 이어 2대 조사였던 수철스님의 부도로 정식명칭은 수철화상능가보월탑이다. 수철이 시호이고 능가보월은 부도의 이름이다. 역시 전형적인 팔각원당을 기본형으로 만들어졌다. 하대석에는 멋진 운룡문이 조각되었고 중대석 안쪽에 사리함, 주악상 등이 화사하게 장식되어 있다. 몸돌에는 각 모서리마다 우주가 조각되어 있으며, 문비와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다. 상륜부가 남아있지 않아 수수해보이지만 거무스름한 돌의 색감과 부도의 형태 또한 안정되어 있어 다부진 느낌을 준다.
실상사 입구에서 왼쪽 담장을 따라 500m 더 들어가면 보물 제36호로 지정된 실상사 부도가 있다. 실상사 경내에서 떨어져 있어서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고려시대의 부도로 어느 스님의 사리를 모신 것인지 알 수 없다. 팔각원당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소박하고 간결하며, 고려시대의 부도로 알려져 있다.

사찰 문화재의 보고 - 화엄사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부도가 남아있지 않지만 화엄사는 지리산 사찰 중에서도 대찰의 위엄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신
라 진흥왕 5년(544) 인도 승려인 연기조사가 세웠고 선덕여왕11년(642) 자장이 중창했다. 억불정책이 펼쳐졌던 조선시대에도 성황을 이루었으며 인조8년(1630)에는 선종 대가람, 숙종28년(1702)에는 장륙전이 중건되면서 선종과 교종, 양종 대가람의 지위를 얻었다. 화엄사의 전각 중 각황전(국보 제67호)은 우리나라 사찰 전각 중 가장 큰 규모에 속하는데 거대한 규모임에도 안정된 비례와 엄격한 조화를 이루어 대찰전각의 위엄이 느껴진다. 각황전 앞석등(국보 제12호)또한 높이가 6.4m로 우리나라 석등 가운데 가장 큰 것이라고 한다. 이밖에도 화엄사에는 독특한 사자탑 두기가 있다. 원통전전사자탑(보물 제300호)과 각황전 뒤편 계단 위에 있는 사사자삼층석탑(국보 제35호)이다. 사사자삼층석탑은 네 마리의 사자가 탑의 몸돌을 받치고 있는데 그 중앙에 합장한 스님상을 세웠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스님은 연기조사의 어머니라고 한다. 효심이 깊은 연기조사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공양하는 자신의 모습을 석탑 앞 석등 밑에 조각하고 어머니의 모습을 석탑 안에 조각한 것이라고 한다.

오랜 세월을 함께해 온 산과 사찰, 그 속에 간직된 소중한 문화재들의 모습은 서로 닮아있다. 사찰들은 산자락에 의지해 더욱 그윽하고 산은 고찰들의 운치를 품어 더욱 깊다. 이 운치와 그윽함을 느낄 수 있다면 사람 또한 그와 같으리라. 지리산 숲 켠에 들어앉은 부도와 문화재들을 돌아보는 일은 시공을 넘나드는 초탈한 여정이다.

▶글·사진ㅡ 남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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