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우리의 아름다움을 찾는 조용한 여행

이산저산구름 2008. 5. 20. 10:27
우리의 아름다움을 찾는 조용한 여행
양선희

  지구상 최대·최고의 고원인 티베트 고원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고산병이 없다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4000m가 넘는 고도에서 살아왔기에 몸이 적응을 했다는 단순한 이유 뿐만은 아니다.

조상 대대로 그 땅에 살아오면서 몇 백 년 동안 적응한 몸이 고산지대에 적합한 유전적 정보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미적 감각도 이 땅에 뿌리내리고 살아온 선조 적부터 유전적 정보로 기록되어 이어진 것은 아닐까.

  혜곡 최순우 선생, 그는 우리 전통의 미를 찾아내고 알리는데 앞장 서 온 미술사학자이다.
2007년 11월 10일,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명저로 나의 잠재된 미적 감각을 깨워준 혜곡 최순우 선생의 옛집을 찾아 발걸음은 성북동을 향했다.

  ‘최순우 옛집’이라는 자그마한 안내판이 보이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대문을 들어선 첫 느낌은 ‘수수하나 단아하다’였다.
첫 느낌 그대로 집을 한 번 돌아보니 작은 앞마당, 안채, 바깥채, 뒤뜰이 전부다. 특별하다랄 것도 빼어나다랄 것도 하나 없는 소박한 한옥집. 혜곡 최순우 선생께서 그러한 삶을 사셨기 때문일까. 가난하지만 기품있는, 선비의 아내가 삯바느질을 하고 있을 것 같은 집이다.

ㄱ자 형식의 안채
  ㄱ자 형의 안채는 은은한 멋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절제된 가운데 단조롭지 않고, 소박하나 밋밋하지 않다. 방 안에는 선생께서 쓰시던 가구와 소품들을 전시해놓았다. 집과 마찬가지로 가구도 소품도 필요한 것만 갖추어 놓아 모자람도 넘침도 없는 간결함과 조촐함이 멋스럽다. 집과 그 집에 살던 사람이 참 닮아있다. 정성을 들여 가꾼 집이기에 그 향취가 베어있는 것이다. 이 향취는 집 주인인 혜곡 선생의 향취이자 우리 전통미의 향취이다.
달항아리와 장독이 있는 뒷마당

  안채를 돌아 뒤뜰로 향하면 달 항아리, 장독들, 과일나무들, 석상들로 간소하게 꾸며진 공간이 나타난다.

선생께서 직접 심고 가꾸셨다는 모과나무, 감나무, 산수유나무는 고운 열매를 맺고 있었다. 바람이 댓가지 스치는 소리가 좋다. 한 쪽에는 모란과 장미가 아니라 들국화와 이름모르는 들꽃들이 피어있다. 다정하고 자연스러운 공간이다.

뒷마당에 탐스럽게 열린 모과

  우리 민족은 공작과 장미보다 학과 난초를 사랑했다. 우리 선조들은 난처럼 청초하고 학처럼 우아한 아름다움을 사랑했다.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닮은 사군자는 멋이요, 화려하고 뽐내기 좋아하는 장미와 모란은 맛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전통 미학은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보다 내면의 깊이에서 풍기는 아름다움을 즐겼다.

다분히 철학적이고 고매한 미학이다. 미와 진리는 하나라던 에밀리 디킨슨의 시구 이전부터 우리 민족에게는 미와 진리가 하나였고 참된 것이 아름다웠다. 우리 민족은 눈으로 보기보다 마음으로 볼 때 나타나는 정신적인 아름다움을 사랑했다.
선조부터 이어져 내려온 이토록 뛰어난 미적 감각이 요즘 점점 무디어 가는 것을 본다.

빠른 변화 속에 사는 이 시대의 사람들은 크고 화려한 아름다움을 좋아한다.

천천히 즐기기보다 쉽게 느낌이 오는 것을 좋아한다. 이것들은 서양의 사고이고 서양의 미학이다. 


  첫 눈을 사로잡는 아름다움은 누구나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예로부터 아름답다한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단순하지만 세련되고 특별한 장식이 없어도 빼어난 것의 아름다움을 우리는 즐겼다.

이는 관찰과 사색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아름다움이다.
이런 고상한 아름다움보다는 자극적인 아름다움에 익숙해져가는 시대가 안타깝고 아쉽던 중에 문득 들렀던 최순우 옛집,

그곳엔 난과 같이 청초하고 학과 같이 우아한 멋이 고졸하게 남아있었다.


  최순우 선생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이 집은 선생의 따님께서 20년 가까이 사시다가, 2000년 팔릴 뻔한 위기를 맞았다.

그때 내셔널트러스트에서 모금운동을 통해 이 집을 구입했고 지금까지 관리하고 있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비교적 최근인 2006년 9월의 일이니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는 이유는 조상 때부터 이어져 온 핏속에 흐르고 있는 유전적 감각 때문이다.

이 땅을 닮아있고 우리 정신을 담고 있는 아름다움이기에 우리 눈에는 우리 것이 아름답다.

허나 이런 우리의 아름다움이 요즘 자꾸 ‘전통’이라는 말, ‘고전’이라는 말 뒤로 가려지는 것이 못내 아쉽다.

아름다움이라는 감정은 하나인데 이를 ‘전통적 아름다움’과 ‘현대적 아름다움’으로 굳이 나누어 말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편리함과 신속함을 좇느라 타문화에 젖어 아름다움을 보는 우리 눈이 흐려진 것이라 생각한다.

크고 화려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시대를 살고 있기에 예스런 아름다움을 쉽게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치옹 윤오영은 그의 수필 <마고자>에서 이렇게 말했다.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예전엔 남의 문물이 해동(海東)에 들어오면 해동 문물로 변했다. 그러나 그것은 탱자가 아니라 진주였다. 그런데 근래에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남의 것이 들어오면 탱자가 될 뿐만 아니라, 내 귤까지 탱자가 되고 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
내 귤까지 탱자가 되고 마는 이 시대, 최순우 옛집 툇마루에 앉아보니 내 핏속에 기록된 미적 감각이 깨어남을 느꼈다.

홍차에 찍힌 한 조각의 마들렌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긴 여행이 시작되었듯이, 느린 발걸음으로 찾은 최순우 옛집에서 우리의 아름다움을 찾는 조용한 여행을 나는 다녀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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