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2)
지난 호에서는 고려 500년의 도읍지 개성의 고려성균관과 선죽교, 민속려관과 개성음식에 대해 둘러보았다. 이번호에서는 고려의 왕궁 만월대와 왕릉, 그리고 황진이와 서경덕의 사랑이 전해지는 박연폭포를 둘러보고자 한다.
해발 489m로 개성의 진산이라 불리는 송악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만월대는 고려 초기 건설하여 고려 전 기간 왕궁으로 이용되던 곳이나, 외적에 의해 불 타버리고 지금은 첨성대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원래는 정전(왕이 나와서 조회를 하던 궁전)이 회경전 부근에서 달을 바라보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망월대라고 불렸으나 이름이 전해 내려오는 사이에 만월대가 되었다고 한다. 건물배치는 크게 보아 회경전 중심의 외전 일곽, 장화전 중심의 내전 일곽과 서북쪽의 침전 일곽으로 구분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구릉지에 위치한 지형적 특성상 높은 축대를 쌓고 건물들을 세웠으며, 건물들의 배치 또한 자유롭게 구성했다는 점이다. 만월대 왼편에 자리잡고 있는 개성첨성대는 고려 때 천문기상에 대한 체계적인 관측이 진행되었으며 30여 차례의 태양흑점도 관측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관측 자료들은 고려박물관 내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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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태조 왕건의 무덤은 개성시 해선리에 위치하고 있다. 신혜왕후 류씨와의 합장묘로 원래 이름은 현릉(顯陵)이며, 왕건릉이라고도 한다. 현재의 능은 1994년에 복원하면서 대대적으로 재정비하였다. 3단 축조 형식의 웅장한 무덤과 왕건의 초상, 후삼국통일 시기의 문인 및 무인 석상이 서 있다. 무덤의 방위는 약간 서쪽으로 틀어진 남향이고 무덤 안은 돌방으로 되어 있다. 무덤 안의 동쪽 벽에는 매화·청룡이 그려져 있고, 서쪽 벽에는 노송과 백호가 그려져 있다. 북쪽 벽의 벽화는 도굴로 파괴되어 무엇이 그려져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청룡·백호 등의 벽화는 고구려 때부터 많이 그려져 왔으나 왕대와 매화·노송은 특이한 경우에 속한다. 왕건이 얻었던 29명 아내들의 집안을 상징하는 문장이거나 그 집안이 있는 고장의 특징적인 자생 수종들일지 모른다는 추측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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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고려 31대왕 공민왕릉은 왕비 노국대장공주의 무덤인 정릉(正陵)과 나란히 있는 쌍무덤으로, 동쪽의 것이 정릉이고 서쪽의 것이 공민왕릉인 현릉이다. 공민왕은 왕비가 죽자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감독하여 9년이라는 오랜 기간에 걸쳐 이 방대한 무덤 공사를 벌였다. 무덤구역, 문관상구역, 무관상구역, 무덤의 제당이 있는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고, 무덤구역에는 왕과 왕비의 무덤이 나란히 놓여 있는데 그 거리는 0.6m에 불과하다. 무덤 안 동, 서, 북 3면에는 공민왕 자신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십이지신상벽화가 각각 배치되어 있고 두 개의 무덤 사이에는 통로를 만들어 혼과 혼이 오고 갈 수 있게 했다. 고려 왕릉 가운데 가장 보존상태가 좋으나 1905년 이후 여러 차례 도굴되어 유물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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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폭포, 구룡폭포와 더불어 3대 폭포 중 하나인 박연폭포는 천마산과 성거산 사이에 있는 높이 37m의 폭포이다. 폭포 위에는 '박연'아라 불리는 연못이 있고 밑에는 고모담이 있다. 박연폭포는 또한 황진이와 서경덕과 더불어 송도삼절의 하나이기도 하다. 재색을 겸비한 여류시인 황진이는 "여행자여, 처산(중국의 명승)만 높이지 말고, 우리 해동미의 훌륭함을 알아야 한다"라는 시에서 박연폭포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이 곳에서 멀지 않은 오관산 기슭에는 황진이의 묘가 자리 잡고 있다. 그 건너편에는 서경덕의 묘가 자리 잡고 있는데 천년을 넘은 사랑이 호수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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