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문화유산 답사기] 가을에 옛집의 고요함을 담다<최순우 옛집>에서 | ||||||||||
2007 근대문화유산 답사기공모전 입선 수상작 가을에 옛집의 고요함을 담다<최순우 옛집>에서 글 : 김용태
한옥집....도시에서 태어나 도시를 떠나 살아본 적이 없는 내게 한옥은 그저 낯설고 불편한 공간으로 여겨졌다. 그러다 몇 년 전 친구가 살던 경기도의 한 한옥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느낀 한옥의 멋을 어찌 필설로 다 할 수 있을까..... 그 후 한옥에 살아보는 것이 내 로망이 되었고 인터넷이나 기사 등을 통해 멋스런 한옥집이 소개되면 반드시 찾아가는 것이 일상이자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 ‘최순우 옛집’ 사실 최순우 옛집은 우습지만 우연히 발견한 나만의 공간이었다. 그 전까지 “최순우”선생은 모 방송국에서 소개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을 지은 작가로 기억된 것이 고작이었는데 한 2년 전 성북동에 사는 학교 선배를 만나 이태준 선생의 ‘수연산방’에 가는 길에 무심코 들어선 골목에서 서양식 주택들 사이에 살포시 눈을 내민 것 같은 최순우 옛집을 보게 되었고 조용하고 한옥의 느림의 여유를 맛본 이후 가을이 되면 찾게 되는 가을의 중독과도 같은 곳이 되었다. 이 만추(晩秋)의 계절에 또 다시 찾은 최순우 옛집은 그 자리 그대로였다.
‘최순우 옛집’은 혜곡 최순우 선생이 돌아가실 때까지 지내신 곳으로 성북동의 개발로 모든 집들이 양옥이 되면서 이 곳 역시 허물어질 처지에 처했으나 시민들의 자발적인 기부, 모금 등을 통해 문화유산을 확보, 유지 보전하는 시민운동인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시민문화유산 제 1호로 지정된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요즘은 성북동이 사진이나 걷기운동, 문화재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각광받는 곳이 되어 버린 것이 참 다행이다 싶다. 이전에 다닌 성북동은 한쪽은 웅장하다싶을 정도의 저택이 서 있고 다른 한쪽에는 낮고 초라한 집들의 대비가 씁쓸하게 만들던 곳이었다. 또한 오래된 한옥집들과 근사한 서양식 집들의 조화역시 조금은 다채로운 곳이었다, 예전 예술인들이 많이 살았다던 성북동....월북작가 상허 이태준 선생의 집필공간이었던 ‘수연산방’, 이재준 선생이 살던 고색창연한 한옥집, 간송 전형택 선생의 ‘간송미술관’ , 만해 한용운 선생의 북향집 ‘심우장’ 등 발길 닿는 곳마다 문화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성북동을 그래서 나는 좋아한다.
혜곡(兮谷) 최순우 선생은 제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내시기까지 평생을 박물관의 발전과 한국의 美를 알리는데 힘쓰신 분이다. 이 옛집에서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등의 글을 집필하시고 1984년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몇 개의 계단을 올라섰다. ‘최순우 옛집’... “이리 오너라..” 외치면 누군가 버선발로 뛰어나와 반갑게 맞아줄 것만 같은 그 곳.. 대문으로 들어서면 작지만 단아한 한옥집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 옛집은 서울 지역에서 볼 수 있는 ‘ㅁ’ 자 형태로 뒤에 후원을 가지고 앞에 너른 마당을 둔 툭 터지게 구성된 집이다. 안채나 뒤채 모두 환하고 햇볕이 잘 드는 집이기는 쉽지 않은데 최순우 옛집은 안채와 후원이 아름답고 조화를 잘 이룬 곳이다. 내가 갔을 때는 마침 밝고 포근한 가을볕이 새악시 볼처럼 불그스름하게 들어올 무렵이었는데 이 볕을 맞으며 툇마루에 한없이 앉아 선생의 책이나 읽고 세월을 보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문객들이 많아서인지 유리창으로 된 방문을 닫아 두었는데 그 작은 방문을 열면 고색창연한 향내가 풍길 것만 같았다. 유리창을 통해 들여다 본 방안에는 선생이 사용하시던 책들과 펜, 작은 소지품들이 나란히 누워 선생의 소박함을 느끼게 한다. 국립박물관장을 지내셨던 분이 어쩜 이리 소박할 수 있는 것인지 소위 ‘한 자리’씩 하고 나면 재산이 늘어만 가는 요즘의 세태가 개탄스러워진다. 후원으로 돌아가면 크고 작은 나무들과 작은 석상들이 반갑게 맞이한다. 작은 풀들 사이로 선생이 아끼셨다는 달 항아리가 운치를 더하고 있다. 어쩜 이름이 이렇듯 딱 맞을 수 있을까 ‘달 항아리’라...아주 동그랗지는 않지만 비스듬하게 둥근 모양새가 더 정겹게 느껴진다. 또한 원형의 돌 탁자와 돌 의자, 보온병과 작은 찻잔들이 방문객들의 목을 축이게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은 차라리 감동이었다. 이 곳이 우리 집이라면 가족들과 또는 친구들과 동그랗게 둘러 앉아 낙엽비를 맞으며 밤새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워도 좋으련만.. 잠시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결코 크지 않은 규모지만 마음을 담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가득한 느낌이 드는 후원으로 한옥의 절제미와 단아함을 몸소 느끼게 하는 공간이다.
혜곡 선생은 봄이면 꽃나무를 바라보며 여름엔 신록을 즐기며, 가을엔 떨어지는 낙엽을, 겨울엔 후원에 쌓인 눈을 유유자적 바라보셨으리라. 우리의 옛집 한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여유와 절제된 자연스러움을 느끼셨을 것이다. 서양식 주택과는 달리 우리의 옛집은 절대로 조급해지지 않는다. 절로 편안해지고 느긋해지는 여유로움을 간직하게 된다. 또한 자연에서 나는 재료를 이용하기 때문에 건강을 중요시하는 요즘 우리 한옥에 대한 관심이 늘어감에 아파트를 지으면서도 한옥의 양식을 사용한다고 한다. 실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평생을 우리 것에 대한 아름다움에 일생을 바친 혜곡 선생이 살아계셨다면 ‘암! 마땅히 그래야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셨을 것이다.
우리 시민의 힘으로 지켜지는 최순우 옛집. 자원봉사자의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자발적 참여를 하리라 약속을 하고 옛집을 나섰다. 한 평생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란 얼마나 힘든 것이며 또한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최순우 선생의 우리 한국의 미에 대한 애정이 ‘옛집’ 구석구석에 간직되어 있음을 나는 느낀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라는 너무도 명백한 진리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애정이 앞으로 우리 미래세대에는 더 많은 ‘세계적인’ 유산으로 남을 것임을 나는 확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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