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하고 대범하면서도 담담하고 조촐하다 - 최순우 옛집을 다녀와서 | ||||||||
2007 근대문화유산 답사기공모전 대상(1위) 수상작 글 : 임보윤 푸른 가을하늘이 유난히도 높았던 10월의 어느 날, 나는 수업이 늦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찍 집을 나섰다. 그러고는 조금 먼 정류장까지 단숨에 걸어가 성북구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그곳에 가는 느낌은 마치 너무나도 보고 싶었던 친구를 10년 만에 만나러 가는 듯 한 느낌이었다. 약 40분을 달린 버스가 한성대 입구에 멈춰 섰고 나는 재빨리 내려 횡단보도를 건넜다. 발걸음이 빨라졌다. 나는 ‘최순우 옛집’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한국인의 보편적인 그리움일까, 민속학을 전공하는 나의 특별한 관심 덕일까 최순우 옛집의 현판 밑에 서면 마치 정겨운 시골집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러고는 들어가볼까? 하는 준비도 없이 대문을 향해 빨려 들어가듯 계단을 오르게 된다. 그 날 따라 아침 일찍 방문한 탓인지 구경하는 관광객도 없이 단지 그림을 그리러 온 유치원생들 몇 명뿐이었고, 사무실 또한 조용해서 옛집 특유의 고즈넉함을 더욱 잘 느낄 수 있었다. 최순우 옛집은 한국미를 널리 알리신 혜곡 최순우 선생이 1976년부터 1984년까지 살았던 곳이다. 선생은 국립중앙박물관의 4대 관장을 역임한 분으로 한국 미술사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사실 나에게 있어 최순우 선생은 그의 저서인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와 「나는 내것이 아름답다」로 더 친숙한 존재였다. 옛집에 처음 들어서면 안채의 마루에 그의 저서 세 권이 놓여있다. 나는 그 중 가장 좋아하는 「나는 내것이 아름답다」를 집어 들고 집을 감상하기에 나섰다. 이 곳이 책의 산실인 탓일까? 책을 읽으며 옛집을 둘러보니 책 속에 나와 집이 하나 되어 녹아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선생의 글에 옛집을 하나하나 가꾸던 소박하고 단아한 그의 마음이 들어있었다.
옛집에는 선생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는 선생의 많은 소장품들이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선생의 친필이 담긴 현판이다. 그 속에 담긴 글자는 두문즉시심산[杜問卽是深山]으로 ‘문을 닫아걸면 곧 깊은 산중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 여섯 글자를 보며 선생의 소망과 아름다움의 기준이 모두 표현되어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무차별적으로 개발되어버리는 속세와 달리 자신만큼은, 이 집만큼은 한적함과 여유로움을 지키고 싶어했던 선생의 간절한 마음까지도 드러나는 것 같았다. 또 다른 선생의 소장품은 안방에 보관되어 있다. 방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한옥의 은근한 향기와 함께 작고 단아한 선생의 가구를 볼 수 있다. 또한 곳곳에 있는 흑백으로 된 선생의 가족사진은 지나가버린 옛 시대에 대한 어색함을 단숨에 날려버릴 정도로 내 것 같았다. 집 안의 모습을 보면 집 주인의 성품마저 느낄 수 있다고 하였다. 옛집의 내부는 선생의 정갈함과 소박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옛집의 뒤뜰에는 선생이 애지중지하게 가꾸던 정원이 있다. 마루에 앉아 본 정원의 모습은 정원이라 하기엔 너무나도 질서가 없는 모습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깎인듯한 반듯함과 정형화된 구석이 전혀 없어 낯설기만 했다. 하지만 나름대로 그들만의 질서가 느껴졌다. 마치 하늘을 나는 새인 마냥 발 없는 나무는 자유롭게 자라고 있었다. 그 나무들의 종류 또한 너무나 자유롭게 보였다. 인위적으로 누구에게 보여지기 위한 형형색색의 화려한 꽃들이 아닌 뒷산에 올랐을 때 옆에서 조용히 길을 내어주고 있는 나무들을 닮았다. 그리고 앞에 놓아둔 달 항아리는 보는 나로 하여금 색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하였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항아리와 나무, 그리고 그 위치까지 선생의 남다른 안목을 보여주는 단서라도 되는 듯 하였다. 옛집의 뒤 뜰은 일반인인 나에게 조차 많은 영감을 주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나는 언제나 옛집에 들어서면 아름답고 단아한 한옥에 흠뻑 취해 그 동안만큼은 타임머신을 타고 1930년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돌아서서 담을 바라보면 그 기분은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만다. 이전 우리의 전통 한옥과는 달리 옛집의 담 너머에는 햇빛을 가리는 개량된 양옥들만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옛집 또한 옆 건물처럼 개량될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뜻있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한국 내셔널트러스트의 노력 끝에 지켜낼 수 있었고, 말끔히 복원되어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이에 최순우 옛집은 시민유산 1호로 선정되어 문화재의 주체인 시민들에게 돌아왔다. 정부의 보호아래 관리되고 있는 문화재들 중에는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은 것도 많이 있다. 이는 물론 관리를 소홀히 한 정부의 책임도 있겠지만 시민들의 무관심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최순우 옛집은 온전히 시민들에 의해 지켜진 문화재라는 큰 의의를 갖는다.
어릴 적 가족여행의 코스는 언제나 박물관이었다. 나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참으로 여러 종류의 박물관을 관람했었다. 하지만 너무 어렸기 때문일까 민속박물관을 방문해도 한국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보단 단지 정해진 이동경로에 맞춰 유물하나 더 외우고 가겠다는 식의 관람만을 해왔던 것 같다. 현대화된 건축물 속에서 예쁜 조명을 받으며 제 자리가 아닌 듯한 자태로 놓여있는 놋그릇을 그 의미까지 이해한다는 건 어쩌면 어린 나로써는 무리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하지만 최순우 옛집은 마당과 나무, 석물과 안채 모두 제자리에 놓여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만약 박물관에 ‘물확’이 전시되어 있다면 그것이 어디에 놓았던 물건인지, 어떻게 물을 받았는지 정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야 제대로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옛집의 물확은 아직도 자신의 자리에서 제 기능을 하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최순우 선생을 비롯한 선조들의 지혜와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순우 옛집은 집 전체 모두가 살아있는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옛집을 뒤로하고 성북동을 떠나는 나의 등 뒤로 차디찬 바람이 불어왔다. 그 곳에서 마셨던 은은한 녹차의 향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옛집에서의 여운이 계속 이어지는 듯 했다. 언제나 그렇듯 옛집을 돌아보고 나올 때 아쉬움은 없다. 세상사에 지쳐 잠시 쉬고 싶을 때 나는 주저없이 옛집을 찾을 것이고 나의 후손들 또한 옛집을 방문하여 우리의 것을 한껏 만끽하고 갈 것이기 때문에, 최순우 옛집은 언제나 성북동 그자리에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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